현대 이스라엘 유다인의 다양한 구성 성지정보 (Shrines)

1948년에 건국된 현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 안에는 다양한 민족적, 문화적, 종교적 스펙트럼이 존재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상남북도를 합친 크기에 불과한 작은 나라이지만 그들의 민족적, 문화적 다양성을 보고 있자면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현대 이스라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민족은 두말할 나위없이 유다인(Jewish)일 것이다. 이들은 지난 2,000여년간 역사속에서 사라졌던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다시 건국한 민족이다. 그리고 그 땅 안에는 유다인 뿐만 아니라 다양한 민족들이 긴장과 불안정 속에서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선언 훨씬 이전부터 자파(Jaffa) 해안으로 유다인 이민자들을 모아왔다. 이때부터 러시아, 동유럽, 북아메리카, 모로코, 예멘, 시리아, 에티오피아, 인도, 이라크, 영국 등지에 흩어져 살던 유다인들이 모국을 찾아 본격적으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대부분 역사적으로 박해 속에서 살아왔고, 새롭게 수립될 이스라엘이 그들을 위한 안식처가 될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있었다. 또한 해외에서 이주해온 유다인 이외에도 팔레스타인 땅에서 살아오던 본토박이 유다인들도 있는데 이들은 ‘사브라(Sabra)’라고 칭한다. ‘사브라’는 뜨거운 사막에서 자라나는 선인장 열매를 뜻한다.

유다인들은 지난 3세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전쟁, 안부 부재, 불안정 등을 생활 속에서 피부로 체험하며 살아와야 했다. 이러한 현실은 이스라엘 사람들 스스로가 자신들이 꽤 퉁명스러운 습성이 있다고 인정할 정도로 전국가적인 성격을 형성해 왔다. 실례로 공항에서의 보안 검사나 이스라엘 곳곳의 체크 포인트(Check-Point)를 단 한번만 체험하더라도 그들이 겪고 있는 불안정한 현실을 어떻게 소화하고 있는지, 그래서 그것이 유다인이 아닌 여행자나 순례자들에게는 어떠한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런데 같은 유다인들 안에서도 상당한 다양성이 엿보인다.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흑인-유다인, 아랍인을 닮은 유다인, 유럽인을 닮은 유다인 등에 대한 잔상이 남아 있을 것이다. 사실 같은 유다인이라고 불리우더라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 민족 구성이 상당히 다채로움을 볼 수 있다.

1. 아슈케나지, Ashkenazi


아인슈타인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고전 히브리어에 의하면, 아슈케나지는 독일 내부나 독일 주변 지역을 의미하는데 오늘날의 아슈케나지 유다인들은 중앙 유럽, 동유럽, 독일 등에서 유래한 이들을 뜻한다.. 또한 일부는 10세기에서 19세기 사이에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남아프리카, 호주 등지로 이주한 아슈케나지의 후손들로 구성되기도 한다.
아슈케나지에 대한 연구와 조사가 여전히 진행중이긴 하지만, 여러 문화적, 언어적, 유전적 근거에 의하면 9세기 즈음 중동에서 유럽으로 이주한 이들이 아슈케나지를 구성한다고 본다. 아슈케나지의 고어는 이디쉬어(Yiddish)인데 이는 중세 독일어에 히브리어를 섞어 히브리 문자로 쓰는 언어다. 이디쉬어 사용이 상당히 쇠퇴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년층은 이디쉬어로 대화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으며, 때로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손자들이 알아들을 수 없게 여기저기에 이상한 이디쉬 단어를 섞어 말하기도 한다.
1931년 유럽의 아슈케나지 유다인의 인구는 약 880만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나치의 유다인 대학살로 그 인구의 2/3 가량을 잃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슈케나지계 유다인들은 전세계 유다인 인구의 80% 가량을 차지한다. 또한 이들은 현대 이스라엘 정치 역사에서 다소 독점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는데, 이는 지금까지의 이스라엘 총리가 모두 아슈케나지계라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2. 세파르디, Sephardi


세파르디계의 여러 유다인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세파르디는 스페인을 뜻하는 히브리어이다. 세파르디계 유다인들은 15세기 또는 그 이전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쫓겨난 유다인의 후손들을 의미한다. 19세기까지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살아가던 유다인 대부분이 세파르디계였다. 그 외는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 암스테르담, 그리스, 발칸제국, 남아메리카, 모로코왕국 북부 등지에서 거주하였고 많은 세파르디들이 저명한 학자, 의사, 철학자가 되어 막강한 부와 영향력을 축적하였다. 또한 일부는 이베리아(스페인/포르투갈) 지역에 계속 머무르며 살아갔다. 미국유전학회저널에서 발표한 2008년 연구에 따르면 현재 스페인과 포르투갈 인구의 약 17.5%가 세파르디계 유다인 계통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대략 72만 5천명의 이스라엘 유다인이 세파르디이며 전세계 전체 유다인 인구의 15~2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세파르디의 전통적인 언어는 라디노어로 알려져 있고 이는 고대 스페인어와 고대 포르투갈어, 히브리어, 터키어, 그리스어, 아랍어, 프랑스어의 요소가 혼합된 언어이다. 라디노어는 오늘날 라디오 방송부터 지역 신문에 이르는 매체에까지 사용되는데 이스라엘에서도 여전히 실제 사용되고 있는 서방 세계의 언어이다.

3. 미즈라히, Mizrahi


파울라 압둘(Paula Abdul,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미즈라히라는 말은 동쪽에서 온 이들(Easterner)을 뜻하는데 예멘, 이라크, 페르시아(오늘날 이란), 아프가니스탄, 조르지아, 우즈베키스탄 등의 아랍과 중앙 아시아 나라에서 유래한 유대인들을 막연히 정의하는 말이다.
미즈라히계 유다인들은 대체로 1948년 이후 대규모로 이스라엘에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또 어떤 경우에는 그들이 강제로 이주되어야만 했을 때 이스라엘로 건너와 정착하기도 하였다. 일례로 1956년에 2만 5천명의 유다인들이 이집트에서 추방당했는데, 이때 추방당한 이들도 이스라엘로 건너와 정착하였다. 아슈케나지계에게는 이디쉬어가 있고 세파르디계가 라디노어로 소통하듯이 마즈라히계도 유다-아랍 방언의 한 유형인 마그레비(Maghrebi)어를 사용했다.
최근에는 미즈라히계가 사회의 주류에 진입하는 것이 허용되었지만, 이스라엘 건국 초기에 그들은 아슈케나지계 엘리트층에 의한 인종 차별로 고통 받았고 강제적으로 네게브(이스라엘 납부의 사막지대)나 머나먼 국경 지역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나아지고, 평등한 분위기가 조성되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슈케나지계 평균 수입이 35% 가량 더 높다. 오늘날 미즈라히계 유다인은 전체 이스라엘 유다인 인구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4. 베타 이스라엘, Beta Israel


숄모 몰라(Sholmo Molla,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베타 이스라엘계 유다인은 에티오피아계 유다인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때로는 약간의 조롱조의 표현인 팔라샤(Falasha) 또는 추방된이(exiles)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들의 인구는 약 13만명으로서, 1984년 모세 작전, 1985년 여호수아 작전, 1991년 솔로몬 작전이라는 각 세 번의 대규모 비밀 이스라엘 군사 작전으로 이스라엘로 호송되었다. 당시 이들은 에티오피아 등지에서 기아에 허덕이고 있었다. 1991년의 솔로몬 작전동안 14,000여명의 에티오피아계 유다인을 이스라엘로 36시간 안에 데려오기 위하여 34대의 항공기를 급파하기도 하였다. 새로운 이민자들은 지금도 계속해서 조금씩 모아지고 있다.
어떻게 유다인들인 에티오피아에 도달했는지는 그 누구도 장담하지는 못한다. 일각에서는 예멘의 유다인 상인들을 통하여 개종되된 이들이라는 주장을 내놓기도 하고, 또 다른 편에서는 셰바의 여왕과 긴밀한 관계를 가졌던 솔로몬 왕의 후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출애굽 당시 모세에게서 떨어져나와 남쪽에서 정착한 무리가 에티오피아계 유다인이라는 제안도 있다.
현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이들은 불행히도 가장 빈곤한 계층에 머물러 있다.

5. 아프리카계 히브리 이스라엘인, African Hebrew Israelites


디모나(Dimona)의 아프리카계 히브리 이스라엘인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아프리카계 히브리 이스라엘인들은 자신들이 이스라엘의 사라진 10지파의 후손이라 주장하는 흑인 미국인들이다. 19세기 말 여러 종교적인 그룹들이 미국에서 흑인 그리스도교도 집단을 중심으로 일어났을 때에 발전한 개념으로, 안식일과 성서에 나오는 다른 휴일 등의 준수를 포함해 전통적인 유다인의 풍습을 따르기 시작했다. 시카고 태생의 벤 카터가 1966년 자신도 이스라엘 사람들의 직계 후손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성지로 돌아가자고 설교하기 시작했다. 그의 신자들은 1969년 라이베리아를 통해 이스라엘에 당도하였고, 완전채식과 수행의 규율을 엄격하게 따르며 디모나(Dimona)에 본거지를 둬왔다. 오늘날 그들은 3천명 가까이 이르게 되었고 최근 영구적인 거주 지위를 인정받아 군대에 의무 입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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