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오늘 강론의 주제는 “힘은 빼야 하지만 또 있어야 한다.”입니다.
사실 힘이 있어야 빼기도 하는 것이지 힘이 아예 없다면 뺄 필요도 없겠지요.
그런데 왜 강론 주제를 이것으로 잡았냐 하면
오늘 바오로 사도가 힘 얘기를 하기 때문이고,
저도 힘 얘기를 전보다 자주 하기 때문입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힘이 빠지기 때문이고,
그만큼 힘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난주 김장 배추와 무, 갓 등을 심었는데
밭고랑을 내고 퇴비를 밭에 뿌리는 일을 하면서
불과 5년 전과 비교해도 그 일들이 힘에 부치는 저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힘이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힘이 없는 것이 있는 것보다 좋다는 생각도 하고
오늘 바오로 사도에게도 같은 가르침을 우리는 받습니다.
코린토에 처음 갔을 때의 그는 약했으며 두렵고 떨리기까지 했지만
자기가 하는 일이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이 되게 하려 했다고 합니다.
“사실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나는 약했으며 두렵고 또 무척 떨렸습니다.
나의 말과 복음 선포는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아시다시피 바오로 사도는 매우 강했고 두려워 떨던 사람이 아니었지요.
그리고 매우 지혜로웠고 설득력도 대단한 분이었지요.
그러나 그럴 때는 성령의 힘과 지혜를 지니지 못했고,
자기의 힘과 지혜를 믿고 주님의 교회를 박해하는 데 그 힘을 썼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를 당신 도구로 쓰시기 위해
그의 힘을 꺾는 일을 먼저 하셨고 약해지게 하셨지요.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가 약해졌을 때 주님을 만나고 성령의 힘을 지니게 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의 야코는 죽이고 성령을 체험케 하심으로 그리된 것입니다.
보통 인간적으로는 힘이 약해졌을 때 마음도 약해지고,
마음이 약해졌을 때, 다시 말해서 심약해졌을 때
갖가지 마음 병과 정신병이 들게 되는 것으로 끝나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인이라면 힘이 약해졌을 때
그 힘이 약해진 것을 신앙적으로 받아들이고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나이 먹어 약해진 것도 나이 먹어서 약해진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이와 함께 약해지게 하신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약해진 것을 보약을 많이 먹어서 회춘하려고 들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강해지는 기회로 삼아야 하고
그래서 내 힘으로 하지 않고 성령의 힘으로 할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할 수 없게 되고,
마구잡이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하지 않고,
성령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만 하는 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오늘의 주제로 돌아가면
내 힘을 빼고 성령의 힘은 채우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