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14,22-33
주님께서는 먼저 ‘산에 올라 홀로 기도’하십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바쁜 하루 끝에도
아버지와 머무는 그 시간을 거르지 않으십니다.
이 ‘기도의 산’이 있었기에,
주님께서는 곧이어 닥친 폭풍 위를
평온히 걸으실 수 있었습니다.
오리게네스는
이 장면을 깊은 영적 그림으로 읽습니다.
물결에 시달리는 ‘배’는 세상의 폭풍 속을 가는
교회이며, 또 우리 각자의 영혼입니다.
주님께서는 ‘밤 사경’ ― 가장 깊은 어둠의 때 ―에
오시어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하십니다.
오리게네스는 일깨웁니다.
폭풍이 문제가 아니라,
폭풍 속에서 ‘무엇을 바라보느냐’가 문제라고.
베드로는 주님께 눈을 두는 동안 물 위를 걷습니다.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는’ 순간 가라앉습니다.
시선이 주님에게서 위협으로 옮겨 간 것입니다.
성실이란
바로 이 ‘시선의 한결같음’입니다.
바람이 불어도 주님께 눈을 떼지 않는 것,
그것이 폭풍을 건너는 길입니다.
그런데 가라앉는 베드로가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하고 외치자,
주님께서는 ‘곧’ 손을 내밀어 붙잡으십니다.
나무라기보다 먼저 붙드시는 그 ‘즉시’ 안에
주님의 온유가 있습니다.
그분의 부드러운 책망 ― “왜 의심하였느냐?” ―도
이미 손으로 붙잡으신 ‘다음’에 옵니다.
먼저 구하시고, 그다음에 가르치십니다.
영적 열매의 관점에서 보면
두려움에 휩쓸리지 않고 마음을 다스려
“주님!” 하고 부르는 그 한마디가 ‘절제’입니다.
가라앉는 순간에도
비명이 아니라 ‘기도’를 택하는 것,
그것이 자신을 다스리는 힘입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바쁜 하루 끝에도 ‘기도의 산’에 오르는가?
나는 바람이 아니라 주님께 눈을 두는가?
나는 가라앉을 때 비명 대신 ‘기도’를 택하는가?
나는 주님께서 ‘곧’ 붙들어 주심을 믿는가?
주님,
바쁜 하루에도 기도의 산에 오르게 하소서.
거센 바람이 아니라 당신께 눈을 두게 하시고,
가라앉을 때에도 ‘주님!’ 하고 부르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