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어제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 주님께서 오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정확히 말하면 두려워해야 할 한 분 외엔 아무도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모든 두려움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나쁜 두려움과
두려워해야 할 좋은 두려움에 대해 오늘은 묵상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준이 무엇일까요?
행복하게 하고 살게 하면 좋은 두려움이고
불행하게 하고 죽게 하면 나쁜 두려움이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나쁜 두려움은 불안과 함께 우리를 불행하게 하고 죽게 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에 휩싸이고 사로잡힌다는 말처럼 두려워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요,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는 말처럼 아무 자유도 없고
어떤 사랑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유와 사랑,
이 가장 위대한 것들을 허용치 않고 불가능케 하는 두려움은
어떻게 해서든지 극복해야 하고 초월해야만 할 두려움입니다.
인간적으로는 의지로,
신앙적으로는 기도로,
둘을 합쳐 의지와 기도로 극복하고 초월해야 합니다.
내가 살려면 그리고 행복하게 살려고 하면
자유와 사랑이 없으면 안 된다는 깨달음에
행복 의지와 생존 의지가 더해져야 하고,
거기에 간절한 기도가 더 더해져야 하겠지요.
이것이 프란치스코가 보여준 방법입니다.
먼저 애착하던 것들을 다 버림으로써 그것들로부터는 자유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너무도 싫어하고 그래서 두려워하던 나병환자는 계속 두려워했는데
좋아하는 것을 버리는 것보다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것을 극복하는 것이 인간적으로는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재물을 포기하는 것보다 십자가 지는 것이 더 어렵고 힘들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린 이 지점에서 이 힘든 것을 거들어 줄 분에게 눈을 돌려야 하고,
이 눈을 돌리는 것으로부터 우리의 관상과 기도가 시작되고 힘을 얻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가 몸소 이 좋은 두려움을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하느님께서 그렇게 하게 해주신 것이지만
그리 피해 다니던 나병환자를 외길에서 만나게 되었을 때
나병환자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야겠다는 의지를 세우고,
그러나 아직 그럴 용기가 없음에 주님께 용기를 주십사 기도하였지요.
그렇게 프란치스코는 두려움을 극복하였고,
싫어하고 두려워하던 나병환자를 통해서 주님을 만났으며
싫어하고 두려워하던 나병환자가 곧 주님임을 깨닫게 되었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나병환자가 아니라
주님과 주님의 사랑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임을 깨달아야 하고,
주님과 주님의 사랑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튼 좋은 두려움은 이렇게 오히려 주님을 만나게 하는 두려움이고,
나쁜 두려움은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우리를 사로잡고
그럼으로써 주님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두려움임을 묵상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