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일흔두 제자를 뽑으시어
둘씩 파견하십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당신께서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파견하셨다고 전합니다.
이 모습은 마치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께서 가실 길을 닦기 위해서
먼저 왔던 것과 비슷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잘 맞이할 수 있도록
예수님에 앞서 사람들에게 갑니다.
그 길을 닦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리 떼 가운데로 가는 양들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예수님께서는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제자들을 더 어렵게 만드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제자들의 부담을 덜어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러한 것들이 필요없기에
가지고 다니면 짐만 되기에
힘들게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당신의 길을 마련하기 위해 파견하시기 때문에
그 일에 필요한 것들도 당신께서 다 채워주실 것이며
제자들은 그러한 걱정보다는
맡은 임무에 충실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리 떼와 같은 위협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제자들의 일을 막을 수도, 방해할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옛날의 일흔두 제자처럼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우리를 통해 세상이 하느님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하게 하십니다.
그 일은 옛날보다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세상은 하느님의 존재를 생각하기보다는
인간의 힘을 더 믿으며
인간이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재산이 하느님의 자리에 올라가 있기에
돈이 삶의 중심이 되었기에
하느님을 말하는 것이 이상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그런 세상 속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외칩니다.
그 외침은 이제 우리의 삶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느님을 말하는 것이 어리석어 보여도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행복으로 드러날 때
세상은 하느님의 존재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말로서 하느님을 전하기에 앞서
우리가 먼저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살아갈 수 있다면
하느님 덕분에 세상의 어려움을 딛고 나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우리의 역할은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