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
아시다시피 복음 가운데서 마태오복음은 예수님이
구약의 예언을 실현하신 분이라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마태오복음은 유대인을 대상으로 쓴 복음이기에 그런 것인데,
오늘 복음은 오늘 독서 이사야서가 예언한 것이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예언은 천대받던 고장 즈불룬과 납달리가
빛을 보고 영광스럽게 되리라는 내용이고 어떻게 그리되느냐 하면
주님께서 다른 곳보다 먼저 이곳에 가심으로써 그리된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공생활의 첫 번째 활동 지역으로
이사야가 얘기한 고장을 유대 고장보다 먼저 택하셨습니다.
심지어 제자들을 뽑기 전에 먼저 이곳으로 가셨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왜 이곳에 먼저 가셨을까요?
이걸 알려면 그다음 말씀을 보면 되겠습니다.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
그러니까 마태오복음은 주님께서 천대받고 어둠 속에 있던 이방인의 고장
즈불룬과 납달리를 가셨음을 얘기한 다음
예수님과 함께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얘기하는 것이고,
천대받는 사람이 없는 곳이 하늘나라라는 것을 얘기하려는 것입니다.
이 말을 우리 공동체에 그대로 적용하면
우리 공동체에 천대받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때 그것이 하느님 나라라는 말입니다.
우리 속담에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라는 말이 있는데
주님께서 쥐구멍 같은 즈불룬과 납달리까지 찾아오시어
천대받고 어둠 속에 있던 그들도 빛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점에 있어서 마태오복음은 요한복음과 같습니다.
요한복음 1장이 한처음 말씀이 계셨으며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셨고 빛이 되어 오셨다고 얘기하는데
마태오복음도 예수께서 세상의 빛으로 오셨다고 얘기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빛이 되어 오신 지금 빛이 없어 어둡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어둡다면 그 빛이 그에게 없는 것이고,
그가 빛 가운데로 나아가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
다시 쥐구멍에 빗대어 우리 어둠을 얘기한다면
쥐구멍에 있는 우리가 쥐구멍을 막지만 않으면 되고,
더 나아가 쥐구멍에서 나오기만 하면 되는데 그러지 않는 것입니다.
이전까지는 사람들이 천대하여 쥐구멍 속으로 숨어 들어갔을지라도
이제는 주님께서 거기까지 찾아와 볕도 주시고 빛도 주시려고 하니
그 따듯한 볕과 환한 빛을 우리가 거부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어두운 것은 우리 공동체가 어두워서 어둡거나
공동체가 나를 어둡게 해서 어두운 것이 아니라
나와 공동체 안에 빛이신 주님께서 아니 계시기에 어두운 것이고,
주님께서 우리 안에 아니 계신 것은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어두우면 내가 빛이신 주님을 모셔 들이면 되고,
우리 공동체가 어두우면 너 때문에 어둡다고 서로 탓하지 말고
같이 주님을 모셔 들이지 못했음을 뉘우치고 같이 주님을 모셔 들이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