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을 보아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하느님과 인간의 차이.
오늘 저는 하느님과 인간의 차이를 오늘 나눔의 주제로 잡아봤습니다.
인간은 겉모습을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과 인간의 차이를 천지 차이라고 묵상했습니다.
차이가 클 때 그것을 우리가 천지 차이라고 흔히 얘기하듯이
하느님과 우리 인간의 차이는 실로 천지 차이입니다.
사무엘기에서 사무엘을 선견자(先見者)라고 곧 앞을 내다보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런 그도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서 하느님께서 뽑으실 사람을 몰라보지 않습니까?
하느님은 마음을 보시는데 인간은 허우대를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허우대 좋기로는 사울이 최고였지요.
지난 토요일 독서에서 사무엘기는 사울의 허우대에 대해 이렇게 묘사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사울처럼 잘생긴 사람은 없었고,
키도 모든 사람보다 더 컸다.”
그런 그였지만 마음이 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하느님께서 그를 내치시고,
이제 다른 사람 곧 다윗을 당신의 기름부음받은이로 뽑으시려는 것 아닙니까?
사무엘도 그러니 우리가 하느님의 눈으로 보지 않으면
마찬가지로 마음을 보지 못하고 허우대만 볼 것이고,
욕심으로 보면 욕심내는 것만 보지 그 밖의 것은 하나도 보지 못할 것입니다.
하느님과 인간의 차이는 보는 것의 차이뿐이 아닙니다.
인간의 약함과 악함을 대하는 것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악함과 약함에 대해 슬퍼하고 비관적입니다.
사무엘도 사울이 악한 짓을 하고 하느님 눈에 벗어나자 슬퍼하고,
그래서 “언제까지 이렇게 슬퍼만 하고 있을 것이냐?”고 꾸지람을 듣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은 한 인간의 죄악과 약함 때문에 세상을 다 비관적으로 보고,
미래까지 다 비관적인 마음으로 보기에 희망이 없고 마음은 어둡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선견자인 사무엘조차 그러하니
우리 인간은 하느님을 보지 않으면 다시 말해서 인간만 보면,
그리고 인간을 보더라도 인간의 악함과 약함만 보면 이렇게 비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구원 계획과 섭리 안에서는 악도 선입니다.
인간의 선은 악에 걸려 넘어지는 선이요 악을 초월커나 극복하지 못하는 선이지만
시편 138편 말씀처럼 하느님께는 어둠은 그것마저 어둡지 않고 악마저도 선입니다.
그래서 오늘 베틀레헴 성읍의 원로들이 새로운 지도자를 뽑기 위해 오는
사무엘에게 “좋은 일로 오시는 겁니까?” 하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대답하는 겁니다.
하느님께는 언제나 사울보다 더 좋은 다윗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느님과 함께하는 우리에게도
사울만 있지 않고 다윗도 있을 것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