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얼마 전에 저와 저의 형제를 같이 아는 어린 자매가 말하기를
저의 형제가 저를 노인네 취급하며 자기에게 말해서
그 자매가 낯설게 느꼈다고 하는 거였습니다.
제가 젊다고 생각했거나 젊기를 바랐기에 그리 느꼈을 것 같은데
덕분에 그때 저는 어떤 존재인가? 정말 노인네인가? 아닌가 생각해봤습니다.
저도 제가 노인네 또는 늙은이는 아직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젊은이도 아니니 굳이 늙은이라고 해야 한다면 중늙은이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신기한 것은 제가 설사 중늙은이일지라도
그것이 저에게 그리 슬픈 일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자기 위안인지 모르지만 저는 정말 지금 이 나이가 딱 좋습니다.
웬만한 슬픔이나 고통은 다 받아들여지고,
웬만해서는 미움이나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도 일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잔가지를 가지치기한 나무처럼
거의 모든 잔가지가 치어져 아주 단순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제 사랑만 할 수 있는 제가 너무 행복하다고 얘기했는데
이제 사랑만 할 수 있게 되어 지금이 제게는 황금기입니다.
그런데 지금이 제게 참으로 좋은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어렸을 때나 지금보다 젊었을 때는 제힘으로 하려다가 실패하고 넘어졌는데
이제는 저의 힘이 없다고 생각하니 하느님의 힘으로 하려 하고 그래서 좋습니다.
제힘으로 하려고 하지 않으니 그렇게 편하고 좋을 수가 없고,
하느님의 힘으로 하니 잘될 뿐만 아니라 안 돼도 괜찮습니다.
이런 묵상을 오늘 길게 한 것은 하느님께서 늙은 부부들을 통해
당신의 구원사업을 하시는 얘기를 독서와 복음에서 읽었기 때문입니다.
제힘으로 할 수 없기에 하느님께 내어드릴 수 있는 것은
젊은이보다는 늙은이들이 할 수 있는 특권임을 묵상하는 오늘 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