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오늘 복음은 예리코의 눈먼 이가 자비를 받아 구원되는 얘기인데
자비를 청하는 그의 부르짖음이 사람들에 의해 저지당하자
그는 더 큰 소리로 자비를 청하는 것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사람들의 저지에 주눅 들어 죽어 가는 소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소리로 외칩니다.
제가 고백성사 줄 때 고통스러운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죽어 가는 소리로 죄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뭐가 들려야 훈화도 하고 보속도 줄 텐데 죽어 가는 소리니
더 집중해야 하고 초집중해야 하니 빨리 피곤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죄를 고백하면서 큰 소리로 고백할 사람 거의 없고,
자비를 마치 맡겨놓은 것 달라듯이 달라고 할 사람 없지요.
그러니 자신만만한 바리사이와 달리 세리가 주님 앞에 나오지도 못하고
멀찍이서 불쌍히 여겨달라고 한 것처럼 그렇게 청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자비를 청하는 태도로는 이것이 맞지 않을까요?
뭐가 그리 당당하다고 큰 소리로 외치겠습니까?
그런데 경우가 다른 것 같습니다.
죄인은 그렇게 자비를 청함이 맞을 것입니다.
부끄럽고 죄스러워 겸손한 태도가 맞을 것입니다.
그러나 눈먼 이의 경우는 겸손 떨 계제가 아닙니다.
절실하고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쳐서는 아니 됩니다.
사실 우리도 자비를 입기 위해서는 이렇게 절실해야 합니다.
절실해야 이 소경처럼 간절히 청할 것이기 때문이고,
그래야 어떤 사람도 제지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가 사람에 의해 좌절당하지 않겠지만
사람 때문에 내가 포기함으로써 놓쳐서는 안 되겠지요.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가 사람에 의해 좌절되거나 방해받아서는 아니 됩니다.
그것을 허락지 말아야 하고 그렇기에 반작용으로 더 큰 소리를 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가만히 있으라는 말보다 더 큰 소리로 외쳐야 합니다.
자비는 하느님께 받는 것이지 인간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내가 진정 주님의 치유와 자비가 필요한 자라면
오늘 소경처럼 인간의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주님께 초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 복음의 소경처럼
하느님의 자비가 절실히 필요한 사람인지,
그만큼 간절하게 청하는 사람인지 반성하는 오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