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오늘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면서 바로 드는 생각은
정신을 차리고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상황이 내외적으로 매우 혼란하고 뒤숭숭하여
이 나라가 어떻게 될지, 이 세상이 어떻게 될지 걱정만 가득합니다.
밖이 소란스러우니 안도 소란스러운 것이고,
세상이 혼란스러우니 저도 같이 혼란스러운 것입니다.
이런 저를 보면서 신앙인이요 수도자인 저마저
이러면 되겠는가 생각되며 정신이 퍼뜩 들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세상을 넋 놓고 볼 것이 아니라
나를 봐야 하고 더 나아가 하느님을 봐야 신앙인답다 할 것입니다.
시선을 뺏기지 않고 곧 보이는 대로 보지 않고,
내 시선을 내가 챙겨 봐야 할 것을 봐야 신앙인이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인의 눈 곧 관상의 눈이요 믿음의 눈을 챙겨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 세상을 뒤흔드는 트럼프나 푸틴이나 시진핑이나
이런 자들에게 눈을 뺏기고 마음이 혼란으로 가득 차면 안 됩니다.
이런 자들이 아무리 커 보이고 세상을 흔들어도 하느님이 더 크십니다.
바람이 아무리 거세고 파도가 집채같아도 바다가 더 큰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가 이런 상황을 맞닥뜨린 적이 있지요.
제자들이 호수를 건널 때 주님께서는 부러 제자들만 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엄청난 풍랑을 만나 제자들은 죽을 지경이 됩니다.
그때야 주님께서는 제자들 앞에 나타나셔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는데
뭔 생각인지 물 위를 건너오라고 말씀해 달라고 베드로 사도는 청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에게 물 위를 건너오라고 하셨고 그 말씀에 힘입어
베드로 사도는 건너가고 있었는데 주님만 보고 갔을 때는 잘 건너가던
그가 거센 풍랑을 보자 그만 물에 빠지고 맙니다.
그런 법입니다.
풍랑을 보면 풍랑에 빠지고,
주님을 보면 풍랑을 밟고 갑니다.
오늘 하바꾹 예언자는 돌아가는 세상을 한탄하며 주님께 투덜거립니다.
“주님, 당신께서 듣지 않으시는데,
제가 언제까지 살려 달라고 부르짖어야 합니까?
당신께서 구해주지 않으시는데,
제가 언제까지 ‘폭력이다!’ 하고 소리쳐야 합니까?
어찌하여 제가 불의를 보게 하십니까?”
이에 주님께서 이렇게 응답하십니다.
“늦어지는 듯 하더라도 너는 기다려라.
그것은 오고야 만다, 지체하지 않는다.”
이것을 믿어야 하고 복음의 제자들은 믿음을 주님께 청합니다.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이에 주님께서는 믿음만 있으면 안 될 것이 없다고 격려하십니다.
주님은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게다가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이런 주님을 보면 곧 관상하면 우리에게 믿음이 생길 것이고,
그 믿음으로 마음만 먹으면 어떤 어려움도 돌파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어지러운 세상 때문에 마음이 어지럽다면
어지러운 세상을 보지 말고 주님을 관상하면서 제자들처럼
주님께 믿음을 더해 주십사고 청하는 우리가 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