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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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루카 10,21)
아이들이 구원받을 준비가 더 잘 되어 있다
죄를 회개하고 사악함을 버리고 세례를 받아 정결해지고 나면, 아이들이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듯 우리는 영원한 빛으로 돌아갑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시를드립니다.’”
스승님께서는 우리를 ‘철부지들’이라고 표현하십니다. 이는 스스로를 지혜롭다 여기며 제 눈을 가린, 세상에서 지혜롭다는 자들보다 우리가 구원받을 준비가 더 잘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분은 어린아이처럼 기쁨에 넘쳐 큰 소리로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분께서 세상에서 아는 것 많고 지혜롭다는 자들에게 감추어진 것을 작은 이들에게 드러내 보이신 까닭
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알렉신드리아의 클레멘스-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셋째 오솔길】
돌파하여 자기 하느님을 낳기
그렇게 되기만 한다면 나는 참된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고, 슬픔도 고통도 내게서 그 기쁨을 앗아 가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슬픔이 도무지 끼어들 수 없는 신적인 본질 속으로 들어간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안에는 노여움이라든가 고통과 같은 것이 없고 오로지 사랑과 기쁨만이 있다는 것을 알아 두시기 바랍니다. 때때로 하느님께서 죄인들 때문에 화를 내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노여움이 아닙니다. 하느님이 그들을 징계하시는 것은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며”(1요한 4,16) 성령이십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의 노여움은 사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분은 화를 내시되 아무런 슬픔도 느끼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일에도 슬픔이나 불안을 전혀 느끼지 않고, 슬픔이 더 이상 여러분에게 슬픔이 되지 않고, 여러분이 모든 것 속에서 평화를 누리는 그 지점에 이를 때, 아이가 실제로 태어날 것입니다. 아들은 하느님 안에서 끊임없이 태어나시며, 끊임없이 태어나실 것입니다. 그러니 “아이”가 태어나고 있는 중인지, 아니면 아이가 이미 태어났는지에 관심을 기울이십시오. 하느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셔서, 이런 일이 우리에게서도 일어나기를!
아멘.(480)


<금주간 성서읽기> 루카 22-24장 / 1코린 1-2장
<생태 문화 주간> 음악/미술/독서 등. 생태 품앗이


이름 없는 하느님, 김경재
종교다원론과 해석학적 이론들
농부는 접촉을 통해서 더 좋은 과일을 생산한다
기독교도 마친가지이다. 팔레스타인에서 발생한 원시 기독교 신앙과 신학은 지중해 문명권과 유럽의 게르만이나 라틴 문화, 앵글로색슨 문화, 슬라브 문화 등을 거치면서 다양한 색깔을 덧쓰먼서 풍요롭게 발전되어 갔다. 현생하는 지구의 생물 종들이 지구 환경에 적응해 가면서 ‘자연 선택' 을 통해 가장 우수한 종만 살아남아 진화해 왔듯이, 종교와 철학, 이념과 기치 체계도 창조적 만남을 통해서 발전해 간다는 것이 과정 철학의 지론이다
창조적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종교 다원론 담론의 둘째 통찰은 개인이건 집단이건 간에 인간은 그 고유한 문화적 . 언어적 . 역사적 전통속에서 형성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타자에게 발견할 수 없는 새로운 것, 특징적인 것, 고유한 것을 지닐 수밖에 없다는 것과, 그것을 귀중하게 여기고 서로 스며들면서 풍요롭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인간은 ‘해석학적 존재' 이며 해석학적 맥락.구조속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존재, 따라서 해석학적 패러다임에 의존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한인철은 존 캅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정리힌다.
“존캅이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듯이 사람들은…..자기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그래서 기존의 견해나 인식과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어떤 것이 들려오고 있다고 생각하기 전에는...... 다른 사람이 말하는 내용에 귀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차이가 철저해지면 철저해질수록, 대화는 그만큼 더 생산적일 것이다. 요컨대, 대회.의 내적 힘은 배움에 있으며 , 배움은 차이로부터 오는 것이다."(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