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5-26)
믿는 이들은 영원히 산다
여기서 주님께서는 믿는 이들은 영원히 죽지 않고 산다고 히십니다. 그들의 육체는 죽더라도 다시 생명으로 돌아옵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라는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그분을 믿는 사람은 라자로처럼 죽었더라도 산다는 뜻입니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래전에 죽은 선조들,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 관한 유대인들의 물음에 대한 그분의 대답이었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마태 22,32; 루카 20,37-38). 그러니 여러분이 비록 죽더라도 다시 살리라는 것을 믿으십시오. 그것을 믿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비록 살아 있더라도 죽은 것입니다. 그분을 따르기를 미루며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마태 8,21) 하고 말하는 이에게 주님께서는 “너는 나를 따라라.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마태 8,22) 하셨습니다. 장사를 치러야 하는 죽은 이가 있고, 죽은 이들을 장사지낼 죽은 이들도 있었습니다. 앞의 사람은 육체가 죽은 이고, 뒤의 사람들은 영혼이 죽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영혼의 죽음은 언제 옵니까? 믿음이 없을 때 옵니다. 육체의 죽음은 어떻게 옵니까? 영혼이 없을 때 옵니다. 믿음은 영혼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셋째 오솔길】
돌파하여 자기 하느님을 낳기
설교 21
세가지 탄생
우리의 탄생, 하느님의 탄생, 하느님 자녀인 우리의 탄생
평화로운 침묵이 온 세상을 덮고 밤이 달려서 한고비에 다다랐을 때(지혜 18,14).
이교의 한 대가가 다른 한 대가에게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훌륭한 말을 했습니다. “나는 무언가가 내 안에서 번쩍이고 있음을 압니다. 그것은 나의 이성 속에서 번쩍입니다. 나는 그것이 있다는 것을 느끼기는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나는 그것을 붙잡을 수만 있다면 모든 진리를 알게 될 텐데 하며 상상만 할 따름입니다" 이 말을 들은 상대방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멋진 일이군요! 그것을 구하십시오! 당신이 그것을 붙잡을 수만 있다면, 당신은 모든 선의 본질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까지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도 이와 동일한 말을 했습니다. “나는 내 안에 무언가가 있어서 내 영혼 앞에서 반짝이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것을 내 안에 온전히 그리고 영구히 간직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영원한 생명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숨어 있다가도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그것은 마치 도둑처럼 다가와서 영혼에게서 모든 것을 훔치려고 한다. 그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어 알리려고 한다. 그것이 영혼을 유혹하여 자신을 따르게 하고, 영혼을 빼앗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예언자는 이렇게 말했습나다 “당신께서 ... 숨을 거두어들이시면 죽어서 먼지로 돌아가지만, 당신께서 입김을 불러 넣으시면 다시 소생합니다”(시편 104,29-30). (아가서에 등장하는) 신부의 말도 그런 뜻입니다. “내 사랑하는 임께서 말씀하실 때, 나의 넋은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아가 5,6). 말씀이 안으로 들어오면, 나는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이것을 염두에 두고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무언가를 포기하는 사람은 백 배로 돌려받을 것이다. 나를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여의어야 할 것이고, 나를 섬기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관심사를 따를 것이 아니라 나를 따라야 할 것이다"(참조: 마르 10,29; 마태 16,24; 19,29; 요한 12,26).(436)


<금주간 성서읽기> 콜로 1-4장 / 필레 1장 / 1베드 1-2장
<생태 문화 주간> 음악/미술/독서 등. 생태 품앗이


거룩한 성심에 대한 묵상, 요셉 맥도넬 신부
성심에 대한 묵상
첫 번째 시리즈
첫 금요일 신심
VI.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의 이미지
제3 묵상. 십자가, 열린 상처
VII. 우리 각자를 향한 예수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성심의 사랑에 대하여
제2 묵상
나는 누구이며, 어떤 존재이기에 그분의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1. 나는 철저히 하찮은 존재입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 나는 어떤 존재입니까?
지구상의 인류가, 천상의 무수한 천사들과 성인들에 비해 어떤 의미를 가집니까?
천국과 땅과 지옥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 앞에서 어떤 존재일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나는 하느님과 비교할 때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일까요?
(성 이냐시오의 『영신 수련』 참조)
그러나 바로 그 하느님께서,
바닷가의 모래알보다도 작게 여겨질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셨고,
고통을 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지금도 미사 안에서 나를 위한 희생 제물로 매일 바쳐지고 계시며,
감실 안에 기꺼이 머무르시는 감금된 분,
성체 안에서 내 영혼을 위한 하늘의 양식과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2. 나는 큰 죄인입니다.
내 영혼은 더럽고 혐오스러운 악창 같아서
각양각색의 독과 부패가 끊임없이 솟아납니다.
나의 죄는 마치 소름 끼치는 나병과 같아,
존엄한 하느님의 형상을 파괴하고,
내 존재의 가장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그분의 모상을 일그러뜨립니다.
적용
그런데도,
이토록 비참하고 사악한 내 모습에도 불구하고,
은총에 대한 수많은 배신과,
반복된 약속의 파기,
성심께서 나를 일으키시고 용서하신 후에도 다시 죄에 빠진 그 모든 순간에도
주님께서는 결코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지치지 않으시고,
늘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며 기다리고 계셨으며,
애틋한 사랑의 음성으로 나직이 속삭이십니다:
“얘야, 너의 마음을 내게 다오.”
애정과 결심
“주님, 제가 당신을 알게 하소서.
그리고 저 자신도 알게 하소서.”
(성 아우구스티노)
오, 예수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성심이여,
저로 하여금 당신의 사랑을 깨닫게 하소서.
그리고 제 안에 있는 지극한 부적합함, 감사 없음, 죄된 실상을 보게 하소서.
사랑으로 가득하신 성심이여,
제 가난한 마음을 당신을 향한 사랑으로 채워주소서.
다시는 당신을 거스르지 않음으로써
당신을 사랑함을 드러내게 하소서.(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