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어제와 오늘 주님 말씀과 관련하여 저에 대해 말할 것 같으면
주님께 뽑히는 것은 좋지만 세상에서 뽑히는 것은 싫어합니다.
그야말로 저의 처세는 양다리 걸치기입니다.
주님도 사랑하고 세상도 사랑하는 것이며,
그래서 주님께도 속하고 세상에도 속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저의 처세와 처세술에 대해서 성찰해봤습니다.
처세(處世)란 한자어를 그대로 풀이하면 ‘세상에 머물며 사는’의 뜻이 되고,
처세술(處世術) 하면 ‘세상에 머물며 살아가는 기술’이라는 뜻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에는 약삭빠른 처세같이 나쁜 뜻도 있고,
처세를 잘해야 한다고 할 때처럼 그 자체로 나쁘지는 않은 뜻도 있습니다.
보통은 양다리 걸치기가 별로 좋은 말이 아니지만
저는 오늘 양다리 걸치기를 꼭 나쁜 뜻으로만 쓰지 않고
양다리 걸치기를 잘해야 한다는 쪽으로 말하고 싶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는 세상을 떠나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너무도 사랑하셔서
당신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고 주님도 말씀하셨지요.
주님께서 이 세상을 찾아오셨다는 말씀이니
우리도 염세주의자 마냥 떠날 생각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어제 우리를 뽑으셨다는 말씀과
오늘 이 세상에서 뽑으셨다는 말씀을 우리는 이중적으로 알아들어야 합니다.
어제 우리를 뽑으셨다는 것은 당신 제자로 뽑으신 것이고,
이 세상에 당신의 오심과 똑같은 이유로 곧 세상 구원을 위해
우리를 많은 사람 가운데서 뽑으시는 것이고 파견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의미는 많은 사람 가운데서 선택받은 것의 의미입니다.
그러니 매우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뽑혔다는 것은 천국으로 옮겨심기 위해
풀을 뽑듯이 주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서 뽑아내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여기서 의미는 저세상을 지향하는 그런 의미이고,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 살아야 하는 겁니다.
소속으로 말하면 우리는 천국 소속이지 세상 소속이 아니라는 말이고,
그래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미움과 배척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거룩한 양다리 걸치기는
세상 구원을 위해서는 이 세상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이고,
나의 구원을 위해서는 이 세상에서 빠져나와 천국을 향해가는 양다리 걸치깁니다.
그러니 어제와 오늘,
이 거룩한 양다리 걸치기 처세술을 주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배우는 우리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