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은 다른 사람에게 옮기 쉬운 병이어서
구약 성경을 읽어보면
나병에 걸린 사람은 공동체에서 함께 살지 못했습니다.
당시 공동체서 같이 살지 못한다는 것은
사회적인 죽음을 뜻했습니다.
그는 살아있어도 한 사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단지 목숨만 붙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치유를 청합니다.
이 청은 단순한 병의 치유가 아니라
공동체로 돌아가는 것
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 달라는 원의가
담긴 청원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공동체로 돌아가기 위해서
율법은 나병이 치유되었음을
사제에게 확인 받으라고 말하고 있고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그를 사제에게 보내십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분부를
그는 지키지는 않았지만
세로운 생명을 받은 것에 대한 기쁨을
그는 널리 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자기가 경험한 구원
그 구원을 주신 그리스도를
세상 끝까지 알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하느님께서 계속해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이유는
처음에 우리에게 주신 생명을
끊임없이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타난 사람은
나병이라는 모습으로 자기의 한계를 경험했지만
우리 각자도 각자의 모습 안에서
인간이 지닌 한계를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한계는 인간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기에
하느님께서 함께해 주시려
우리가 영원히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시려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 처음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 넣어 주십니다.
복음의 나병환자처럼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그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힘으로
오늘을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의 고민으로 도저히 답이 나올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
불안과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하느님께서 함께해 주실 때
우리도 나병환자가 체험한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