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성지들의 관할권 다툼(Status Quo:현상유지법)에 관하여 성지정보 (Shrines)


예루살렘에는 거의 모든 그리스도교 종파가 함께 현존하고 있다.

주님의 거룩한 무덤 성지나 주님 탄생 성당을 순례 하다 보면, 좀 의아한 광경을 흔치 않게 보게 되는데, 그것은 곧 한 성지를 여러 그리스도교 종파가 시간과 공간으로 나누어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성지 역사에 대한 이해나 지식이 부족한 순례자들에게는 이러한 성지의 현실이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고, 심지어는 비그리스도인적인 모습으로까지 비추어 지곤 한다.
예를 들어 주님의 거룩한 무덤 성지는 주로 그리스 정교회가 주도권을 가지긴 하지만 총 여섯 개의 그리스도교 종파가 함께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는 성당의 벽면에 어떤 그림에 걸려있거나 그려져 있느냐에 따라 벽면들의 소유까지도 정해져 있을 정도로 보이지 않는 관할권 다툼이 심한 곳이다. 또한 베들레헴의 주님 탄생 성당 지하에 위치한 주님 탄생 동굴 제대는 그리스 정교회 소유이나 그 제대 아래에 위치한 탄생 동굴의 14각 십자가 별만은 작은형제회, 즉 가톨릭 소유이다.


주님 탄생 동굴: 탄생터를 둘러싸고 있는 제대는 그리스 정교회 소유이나 바닥의 14각 은별은 작은형제회, 즉 가톨릭 소유이다.


무덤경당 정면의 초들: 성지의 관할권 문제를 잘 드러낸다: 맨 아래쪽 초들은 그리스 정교회, 중간은 아르메니안 정교회, 맨 윗쪽은 가톨릭 소유이다.

이런 현상은 주로 매우 중요한 성지들 안에서 발생하고 있는데, 이는 각 그리스도교 종파들의 다툼과 유럽 정치 세력의 역학 관계에 기인한다. 현재 주님의 거룩한 무덤 성지, 주님 탄생 성지, 성모님 무덤 성지, 주님 승천 성지는 1852년에 발효된 Status Quo(현상유지법)에 묶여 있는 형편이다. 즉 위의 네 성지의 성당들에서 존재하던 각 그리스도교 종파의 전통, 전례 및 성지 관할권이 현상유지법이 발효되던 시점의 상태로 묶여 버린 것이다. 따라서 위의 네 성지의 성당들에서는 1852년 현상유지법이 발효되던 시점에 각 종파들이 행하던 전례 활동, 전통, 관할권이 변동없이 쭉 이어져 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베들레헴의 주님 탄생 성지에서 생활하는 작은형제들은 매일 정오시간에 카타리나 성당에서부터 주님탄생동굴까지 장엄 행렬을 하고 있는데, 현상유지법(Status Quo)에 규정된 대로 매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방법으로 실시하여야 하면 만일 이 행렬을 3일간 행하지 아니할 경우 이 권리를 자동적으로 박탈당하게 된다. 또한 무덤 성지의 경우, 노후한 공동 화장실 시설을 보수하려고 해도 함께 현존하고 있는 다른 종파의 반대로 인해서 아직까지도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바로 이런 모습들이 관할권 다툼에서 오는 대표적인 모습이라 하겠다.
그런데 1852년에 발효된 현상유지법, 즉 Status Quo는 이스라엘 성지에서 라틴 가톨릭을 대표하는 작은형제들이 이전에 누리던 성지들에 대한 권리를 다시는 회복하지 못하도록 만든 불합리한 처사라는 것이 우리 작은형제들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주님 탄생 동굴과 구유 동굴: 정면이 그리스 정교회 관할의 탄생 동굴이고 커튼에 가려진 오른쪽이 가톨릭(작은형제회) 소유의 구유 동굴이다.

성지들의 관할권 다툼에 대하여 보다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십자군 원정 당시 성지의 상황에 대하여 보다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실 십자군 원정 자체는 비판적으로 다루어야 할 문제이며, 이미 많은 역사가들에 의하여 비판적으로 다루어졌다.
십자군 원정 당시 이스라엘 성지에서의 전례적 주도권은 라틴 가톨릭이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함께 현존하던 동방의 정교회 종파들 역시 라틴 가톨릭과 함께 평화롭게 전례를 거행하고 살아갔다. 그리고 이러한 라틴 가톨릭 교회의 주도권은 주로 프란치스칸들에 의하여 1517년까지 별 무리 없이 이어지게 된다.

십자군 전쟁 당시 프란치스코 성인은 스스로 성지를 방문하였으며, 또한 형제들을 성지로 파견하여 가톨릭 교회의 성지 보호 사명을 살아가게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십자군 원정은 1291년 실패로 끝나게 되었다. 십자군은 패퇴하였지만, 각 성지에서 묵묵히 교회의 이름으로 봉사를 수행하던 작은형제들은 여전히 성지에 남아 있거나 혹은 성지에 되돌아 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성지를 지키게 되었으며, 십자군들의 깃발은 이제 순교로 성지를 지키는 작은형제들의 깃발이 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몇 백년간 이스라엘 성지의 교회 역사는 곧 프란치스칸들의 역사와 동일한 것이 되었다.


십자군이 패퇴한 후 이제 그들의 깃발은 목숨으로 성지를 수호하던 작은형제들의 깃발이 되었다.

십자군들이 패퇴한 이후에도 작은형제들은 이슬람 술탄들과의 대화와 협의를 통하여 무덤 성지 등에 남아 성지 봉사를 이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1335년에는 시온산 주님 만찬 성지에 작은형제들의 첫번째 수도원이 설립되기에 이르고, 1342년 교황 클레멘스 6세는 프란치스칸들을 가톨릭 교회 전체를 대표하는 이스라엘 성지의 수호자들로 확인하게 되었다.

1335년 이후 1662년까지의 3세기에 이르는 시간 동안 작은형제들은 주님 만찬 성지, 거룩한 무덤 성지, 성모님 무덤 성지, 주님 탄생 성지의 유일한 관리자였다.
이 시기의 성지 복원 작업 역시 작은형제들의 주도 하에 이루어지게 되었다. 또한 성지에서 이 시대를 함께 살던 동방 정교회들의 성직자들 역시 프란치스칸들과의 평화로운 관계에 있었다. 이들은 그리스 정교회, 죠지안 정교회, 아르메니안 정교회, 콥트 정교회, 네스토리안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은 베들레헴이나 예루살렘에서 프란치스칸들이 행하던 전례에 평화롭게 참여하였으며, 프란치스칸들의 허락 아래 자신들 고유의 전례를 거행하기도 하였다.


프란치스칸들은 현재에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동방의 그리스도교 종파들과 평화로운 관계를 가지고자 노력하였다.

그런데 1517년 오스만 터키가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이후 성지를 보호하던 프란치스칸들에게 직접적인 심각한 타격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성지 관할권에도 변화가 오게 되었다. 오스만 터키 제국은 예루살렘을 함락한 뒤 전리품을 획득할 목적으로 무덤 성지에 있는 작은형제들에게 촛대, 성작 등의 귀중한 물건들을 건네 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형제들이 이를 거절하자 그들을 모두 투옥시키기도 하였다. 또한 1537년 베네치아의 상인들이 터키의 상선과 범선 20여척을 빼앗자 터키 술탄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성지의 작은형제들을 대량 학살하였다. 1571년에는 셀림(Selim) 2세가 사이프러스를 점령하여 수도원을 부수고 형제들을 살해하였으며, 당시 관구 봉사자 형제를 대중 앞에서 노예로 팔아버렸다.
또한 당시 오스만 터키 제국은 우리 프란치스칸들을 유럽 군주들에게 속한자들로 간주하였다. 반면 동방 정교회 종파들은 오스만 터키 제국에 속한 이들로 대하였고, 따라서 서방 가톨릭을 대표하던 작은형제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호의로 동방 정교회 종파들을 대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성지에서의 정교회 종파들의 영향력은 날로 확장 되었고, 작은형제들은 오스만 터기 제국에 의해 자행된 투옥과 살해 속에서 자연스레 그 영향력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1537년에 시작된 오스만 터키 제국의 성지의 작은형제들에 대한 살해와 박해 감금이 1540년 프랑스왕의 중재로 끝났지만, 이미 성지의 많은 소중한 유품들이 약탈당하거나 파괴되었다. 더 나아가 죠지아니 정교회 수도자들은 작은형제들이 관할하던 골고타 전체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며 소송을 걸어왔다. 또한 1551년 6월 2일에는 작은형제들이 성지에 첫번째 설립한 수도원인 최후 만찬 성지에서 추방당하기에 이른다. 지금은 이곳이 유다인들에 의하여 다윗의 무덤이라는 유다인들의 성지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옛 수도원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 수도원은 팔레스타나에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프란치스칸 수도원이다. 그후 프란치스칸들은 줄곧 이 성지와 수도원의 회복을 위하여 노력하였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1936년 최후만찬성지 인근의 집을 매입하여 현재의 최후만찬 성당을 건립하게 되었다.


오스만 터키제국 이전까지 작은형제들이 생활하였던 시온산 최후만찬성지 수도원의 회랑

이후 세 곳의 중요한 성지, 즉 거룩한 무덤 성지, 주님 탄생 성지, 성모님 무덤 성지들의 관할권에 대한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게 되었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한 당사자들은 가톨릭을 대표하는 작은형제들과 여러 동방 정교회 종파들이었다. 더 나아가 주요 성지들의 관할권이 뒤바뀌는 현상도 잇따라 발생하게 되었다. 오스만 터키 제국은 자신들에게 속해있던 동방 정교회 종파들에게 보다 더 호의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팔레스티나의 성지들을 제국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많은 돈을 제공하는 쪽에게 넘겨주곤 했던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그리스 정교회와 아르메니아 정교회는 여러 성지들에서 작은형제들을 추방하였던 것이다. 이런 싸움이 계속되던 중에 베들레헴의 주님 탄생 동굴, 무덤 성지의 골고타, 겟세마니의 성모님 무덤 성지, 베들레헴 주님 탄생 성당을 그리스 정교회에 빼앗기게 된다 (1757년). 또한 작은형제들이 독자적으로 관할하던 예수님 무덤 경당까지도 그리스 정교회와 공동으로 관할하기에 이르렀다.


겟세마니의 성모님 무덤 성지: 작은형제들이 관할하던 성지였으나, 1757년 그리스 정교회가 오스만 터키 제국을 매수하여 자신들의 소유로 만들었다.


베들레헴 주님 탄생 대성당: 이 곳 역시 1757년 이전에는 작은형제들이 관할하였으나, 1757년 이후로는 그리스 정교회가 관할하고 있다.

이후 이러한 성지들의 관할권에 대한 문제는 가톨릭(작은형제회)을 대표하는 프랑스 정부와 정교회를 대변하는 러시아 정부 사이의 정치적인 문제가 되었다. 1757년에 벌어진 그리스 정교회의 성지 찬탈 이전인 1740년에 이미 프랑스 정부는 터키 정부와의 체결을 통하여 이전에 작은형제들이 누리던 권리의 회복을 약속받았으나, 현실에서는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오히려 터키 황제의 입맛에 따라 상황은 더욱 더 복잡해지고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1808년에는 아르메니안 정교회 수도자의 실수로 무덤 경당이 화재에 휩싸이는데, 이 때 그리스 정교회는 터키 황제의 허락을 받아 독자적으로 성전 전체를 수리하고 현재의 무덤 경당을 신축하기에 이른다. 또한 1829년부터는 오스만 터키 제국의 일정 부분을 형성하고 있던 아르메니안 정교회 역시 성지들에서 자신들의 권리 행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1847년에는 그리스 정교회가 주님 탄생 동굴 아래에 박혀있던 14각 별을 강탈하였다. 이 14각 별 위에는 라틴어로 예수가 탄생했던 장소임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 문양이 이 장소가 프란치스칸 소유임을 증명하는 것이기에 그리스 정교회 입장에서 보자면 당연히 빼앗아야 하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그리스 정교회의 행위는 많은 서방 국가들의 반발을 사게 되어, 결국 14각 은별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었다.


주님 탄생 동굴: 그리스 정교회가 바로 저 14각 은별을 강탈했던 것이다...

이후 서방 세계는 프란치스칸들이 예전에 가졌던 성지 관할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대처하였고, 1740년의 협약대로 빼앗긴 모든 성지들에 대한 소유권을 작은형제들에게 돌려달라고 요구하였다. 이러한 압력에 못이겨 터키 정부는 프랑스 대표자들과 함께 위원회를 구성하여 이전에 프란치스칸들이 누리던 권리를 회복하는 듯 했으나, 러시아가 이 문제에 개입하면서 상황이 반전되고 말았다. 러시아는 터키 제국이 프랑스의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대사관을 철수시키겠다고 협박하며, 현재의 성지 상황을 그대로 놔 둘 것을 요구하였다.
결국 터키 정부는 이 위원회를 해산하고 러시아의 유고대로 1852년 2월 Status Quo(현상유지법)을 공포하게 되었다. Status Quo에 의하면 Status Quo가 발효되는 순간의 성지들의 전통, 전례, 관할권이 그대로 유지된다. 즉, 그리스 정교회와 다른 종파들이 1757년과 그 이전에 터키 정부를 매수하여 혹은 다른 방법으로 획득한 소유권이 그대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더 나아가 주요 성지들에 대한 프란치스칸들의 권리 회복 주장 역시 불가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Status Quo인 것이다.
이로써 작은형제들이 이전에 단독으로 관할하던 거룩한 무덤 성지, 주님 탄생 성지, 성모님 무덤 성지에 대한 관할권이 1757년의 상태, 즉 그리스 정교회 및 여러 다른 정교회 종파들과 그 관할권을 함께 나누거나 혹은 아예 빼앗겨 버린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거룩한 무덤 성지와 주님 탄생 성지는 주로 그리스 정교회의 주도권 아래 성지 관할이 이루어 지고 있으며 성모님 무덤 성지에서는 작은형제들에게 그 어떤 권리도 보장되지 않는 상태이다.
사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합법적인 합의와 절차 아래 이루어 졌다면 별 문제가 안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혹자는 Status Quo(현상유지법)을 통하여 1757년에 자행된 그리스 정교회의 성지 찬탈이 합법적으로 승인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적절하거나, 적법하거나, 정당한 처사는 아니었음이 분명하며, 성지의 프란치스칸들은 바로 이런 이유로 Status Quo에 대하여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는 성지의 관할권 확보를 위한 치열한 암투나 폭력은 사라졌고, 사안이 발생할때마다 더디고 느리긴 하지만 평화적이고 건설적인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하여 서로 노력하고 있다.


주님 탄생 동굴: 그리스 정교회 소유의 제대 아래 박혀 있는 가톨릭 소유의 은별


거룩한 무덤 성지의 가톨릭 전례


거룩한 무덤 성지의 가톨릭(작은형제회) 제의실


베들레헴의 가톨릭 소유 구유 동굴: 오른쪽으로는 그리스 정교회 소유의 주님 탄생 동굴이 위치하고 있다.


거룩한 무덤 성지 내부: 그리스 정교회 소유의 예수님 감옥 경당


거룩한 무덤 성지 내부: 아르메니아 정교회 소속의 예수님 옷 분배 경당


거룩한 무덤 성지 내부: 공동 소유의 예수님을 염한 돌


주님 무덤 경당의 콥트 정교회 소유의 조그마한 경당: 오른쪽으로 튀어 나온 곳이 경당이다.


위의 콥트 경당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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