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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h21.hani.co.kr/section-021011000/2006/03/021011000200603170601038.html“회의 많은 회사는 망한다”


회의문화 개혁에 나선 회사들, 문제는 횟수가 아니라 소통의 방법
‘111캠페인’부터 불필요한 보고서 없애기, 비공식적 대화 활용까지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망하는 회사일수록 회의가 많다?” 회사가 망하기 직전 자금난을 겪는 등 이런저런 어려움에 닥치면 회의가 많아지고 또 길어질 게 뻔하다. 그런데 이 말은 부도 위기에 몰리지 않은 정상 기업이라도 ‘회의가 많은 기업은 망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으로 읽힌다. 물론 무슨 일이든 예외는 있게 마련이고, 회의를 많이 또 잘해서 잘나가는 기업도 있을 수 있다. 분명한 건 최근 기업 내에서 회의문화를 바꾸는 새바람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기업은 ‘회의, 이렇게 바꾸자’거나 ‘회의시간에 꼭 이런 사람 있다’는 자체 설문조사를 벌이기도 한다. 새바람이 일어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 중요한 것은 회의 횟수가 아니라 의사소통 방식이다. SK텔레콤 직원들이 알람시계를 갖다놓고 회의를 하고 있다.(사진/ 류우종 기자)


“회의는 많은데 왜 소통이 잘 안 될까?” 알람시계 두고 1시간 안에 끝내기


LG전자는 지난해부터 ‘111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 ‘회의자료는 1시간 전까지 공유, 회의시간은 1시간 이내, 회의 결과는 1시간 이내 공유’가 원칙이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자는 것인데, LG전자 임직원은 본인 노트북에 타임벨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회의를 진행할 때마다 회의시간을 1시간 이내로 설정해두고 있다. ‘회파라치’(111캠페인 위반사례 신고) 활동도 벌이고 있다.

SK텔레콤도 회의문화 개혁에 나섰다. 회의실에 알람시계를 두고 25분, 50분마다 울리도록 해서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1시간 안에 회의를 끝내도록 하고 있다. SK텔레콤 쪽은 “통계적으로 봐도 회의를 길게 한다고 생산적인 성과가 나온 사례는 흔하지 않다. 회의에 5명이 참가할 때 10분만 회의가 길어져도 전체적으로 50분의 업무시간이 날아가는 셈이 된다”고 말했다. 사실 기업에서 이뤄지는 상당수 회의는 서로 핑퐁 치는 논리싸움으로 끝날 때가 많다. 제품기획부서는 이렇게 말하고, 생산부서는 다르게 주장하고, 판매부서는 또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등 제각각 다른 논리를 펴기 일쑤다. 그래서는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 차라리 자동판매기 앞에서 동료들끼리 커피를 잠깐 마시면서 나누는 대화에서, 또 점심을 먹으면서 나누는 대화에서 공식 회의 때보다 더 창조적이고 통찰력 있는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회의로 대표되는 의사소통의 횟수가 아니라 의사소통의 ‘방법’이다. LG경제연구원 강승훈 선임연구원은 “별다른 내용이 없는 상사의 강의나 훈계식 회의도 없애야 하는데, 사실 각종 회의와 간담회 등 대화의 장이 늘고 있어도 이것이 오히려 새로운 업무 부담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LG생활건강의 회의문화 개혁은 한발 더 나아간다. 월례조회도 없고, 회의를 하더라도 정해진 형식이 없다. 그야말로 ‘유연한 회의’다. 2005년 1월 신임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한 LG생활건강 차석용 사장은 “회의를 오래 한다고 더 좋은 결정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회의는 간결할수록 좋다.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면 회의에 들어가지 말고 그 시간에 차라리 명상을 하라”고 말한다.

물론 의사소통은 중요하다. 그러나 꼭 다 불러놓고 공식 회의를 많이 해야 의사소통이 잘되는 것도 아니다. 삼성전자 쪽은 “인트라넷 그룹 게시판과 사내 게시판도 있고, 사내 메신저도 있고 다른 여러 핫라인도 있다. 정보통신의 눈부신 발달에 따라 의사소통은 회의가 아닌 다른 형태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삼성전자는 동호인 모임 성격의 다양한 사내 커뮤니티를 지원해 구성원들 간의 소통을 활성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림과 그래프에 시간 뺏기지 말라

공식 회의에 반드시 결부되는 것이 ‘보고서’다. 따라서 회의문화 개혁은 보고서 문화 개혁으로 이어진다. LG생활건강은 ‘보고서 없는 사무실’을 만들고 있는데, 대리나 과장급들이 보고서를 만드느라 온종일 시간을 빼앗겨온 관행을 없애고 있다. 반드시 기록해야 할 내용이 아니라면 굳이 문서 보고서를 만들 필요가 없다.


△ 불필요한 회의에는 들어가지 말라. LG생활건강 차석용 사장과 직원들의 만남.


말로 해서 통할 것 같으면 보고서 없이 한두 마디로 정리해 회의에 들어가면 된다. LG생활건강 오강국 과장은 “그전에는 회의에서 오래 얘기해야 서로 만나는 듯하고 회의도 하는 듯했다. 그래서 보고서 없는 회의에 잘 적응이 안 됐는데, 이제는 완성된 보고서를 준비하는 데 시간을 쓸데없이 묶이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고 말했다. 사실 ‘한눈에 들어오는 보기 좋은 보고서’를 강조하는 상급자일수록 “핵심만 말하라”고 종용하지만 정작 직원들이 싸안고 있는 고민은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치열한 ‘시장 경쟁’에 고민해야 할 아까운 시간에 직원들은 보고서에 그림을 그리고 색깔을 집어넣는 등 보고서 치장에 시간을 허비해왔다.

이제는 공식 회의보다는 ‘비공식적인 대화’나 모임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바이올린을 보관할 때는 현을 반음 정도 풀어놓는 것이 원칙이다. 언제나 팽팽한 상태로 보관하면 금세 현을 못쓰게 된다는 게 그 이유다. 기업의 딱딱한 공식 회의에서는 개인의 역량과 품성이 다 드러나게 되고, 그래서 오히려 동료들 간의 신뢰성을 떨어뜨릴 가능성도 있다. 이럴 경우 공식 회의 테이블에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숨어버리게 된다. 반면에 비공식적인 만남과 대화에서 종종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고 전략과 문제해결 방법이 툭 튀어나온다. 요즘에는 놀라운 히트 상품이 출시되더라도 단 몇 개월 반짝하는 데 그칠 뿐, 금방 시장이 ‘피바다’(레드오션·뺏고 뺏기는 경쟁이 치열한 시장)로 물들고 만다. 이런 환경일수록 문제점도 해결책도 표준화된 매뉴얼 형태로 미리 나와 있지 않다. 따라서 팀 동료들과 빈번하고 비공식적인 대화를 통해 갑자기 통찰력 있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이끌어낼 수 있다.

수많은 혁신 제품들을 개발한 3M에는 직급이나 부서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인원을 결집할 수 있는 리쿠르트 시스템이 있다. 프로젝트팀을 목적에 따라 자유롭게 구성하고 일이 끝나면 금방 해체한다. 이런 기업문화가 다양한 발명품을 만들어낸 토대가 되었다. 미국 애플사는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를 ‘CEO’라고 부르지 않는다. 대신 ‘최고경청자’라는 뜻의 ‘top-listener’라고 부른다. 경영학 교과서에 나오는 이론은 점점 쓸모가 없어지고 대신 사원들의 신선한 생각과 아이디어를 경영에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물렀거라, 디자인 납신다

여러 부서 팀원들이 다 같이 모여 난상토론을 벌이고 ‘끝장토론’까지 가는 회의는, 적어도 기업에서는 더 이상 효율적이지 못하다. 대기업일수록 부서별로 덩치도 크고 인원도 많은데, 이에 따라 부서 간에 업무를 놓고 갈등이 빚어지곤 한다. 디자인 부서가 혁신적인 제품 기획안을 내놓으면, 생산부서 쪽은 “기술적 한계로 그건 어렵다”고 반대하고 마케팅 부서는 “생산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고 불평한다. 중간에서 타협을 본다면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제품이 나오게 된다. 세계적인 MP3 제품 ‘아이리버’를 생산하는 기업인 레인콤은 ‘디자인 경영’을 외치면서 제품 회의 때마다 ‘디자인 우위’를 강조하고 있다. 레인콤 쪽은 “PM3는 휴대용이고 주로 젊은 층이 고객이라서 전략목표를 디자인에 두고 있다”며 “디자인이 일단 정해지면 기술 엔지니어들이 거기에 맞춰 전자회로판을 ‘구겨넣거나’ 재배치해서라도 제품을 만들도록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레인콤은 특히 디자인 작업부서를 사내에 두지 않고 아웃소싱으로 받고 있다. 사내에 두면 생산부서 등 기존 조직의 위계에 눌려 디자인이 힘을 발휘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의를 회의하는 창조적전문가


업무는 공식적 직책과 관련없고 상사보다는 파트너가 중요


기업들이 공식 회의를 짧게 줄이고 비공식적인 대화와 만남을 강조하는 건 거기에 ‘고부가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노동부 장관을 지냈던 로버트 라이시는 1991년에 펴낸 <국가의 일>에서 이미 비공식적 대화의 중요성을 갈파했다. 그에 따르면, 미래의 세 가지 직업은 △단순생산직 △대인서비스직 △창조적 전문가(상징 분석가·symbolic analyst)다. 단순생산직은 전통적인 블루칼라 노동인데, 정보혁명 시대에도 많은 정보처리 직업이 단순생산직 범주에 해당된다. 신용카드 구매와 지불, 고객 계좌, 통신, 급여, 병원비, 진료기록과 법원기록, 고객 명단 같은 자료를 기계적으로 반복 입출력하는 일이 거기에 속한다. 대인서비스직은 소매상 점원, 웨이터, 호텔 종업원, 가사 보조원, 건강관리 보조원, 택시 운전기사, 미용사, 자동차 정비공, 부동산업자, 경호원 등의 직업으로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면서 서비스가 이뤄진다.

반면, 창조적 전문직은 문제의 인식과 해결, 전략적 중개를 포함하는데, 옛날처럼 두꺼운 책 속에 기록된 표준화된 절차나 코드화된 규칙에 따라 일을 하지 않고 대신 디자인·자문·언어적, 시각적 표현 같은 상징조작을 다루는 직업이다. 리서치 학자·설계 엔지니어·소프트웨어 엔지니어·홍보 담당자·투자은행가·법률가·경영 컨설턴트·금융 및 재정 전문가·시스템 분석가·마케팅 전략가·건축가·제품 디자이너 등이 해당된다. 창조적 전문가들은 상사·감독자보다는 파트너나 동료와 함께 일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수입은 투입한 시간이나 최종 산출물의 양과는 직접 관련이 없고, 독창성·명석함과 얼마나 빨리 문제를 파악해 해결하고 중개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들은 또 계층 구조에 따라 단계적으로 많은 책임과 소득이 보장되는 높은 자리로 올라가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일은 공식적 지위나 직책과는 별 관계가 없고 기업 내에서 실제로 수행하는 역할도 모호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이 하는 일 중 많은 것은 전통적 의미에서는 일로 간주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창조적 전문가들은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고, 단순생산직과 대인서비스직에 비해 젊은 나이에도 훨씬 많은 임금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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