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제가 자주 비교하며 차이를 생각하는 것이

<좋아하는 것><사랑하는 것>의 비교이고

<싫어하는 것><미워하는 것>의 비교인데

그 차이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싫어하면 버리고, 미워하면 죽입니다.

 

물론 이에 대해 지나친 표현이라고 생각하실 분이 많고,

실제로 싫어한다고 다 버리고 미워한다고 다 죽이지는 않지요.

 

물건은 싫어하면 버리고 애완동물도 싫어지면 버리지만

싫어하는 사람이라 하여 그를 버릴 사람은 없을 것이고,

버릴 수 없기에 버리는 대신 무관심할 사람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미움은 그리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불완전한 사랑으로서의 미움이 있고,

사랑이 전혀 없는 완전한 미움도 있지요.

 

불완전한 사랑으로서의 미움이란 애증이 엇갈리는,

다시 말해서 미움과 사랑이 같이 있는 미움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랑은 뒤집어 보면 사랑하고 있거나

적어도 사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전혀 사랑이 없어서 무관심하기까지 한다면

무엇하러 그렇게 괴로워하면서까지 미워하겠습니까?

 

실제로 미움의 고통이 두려워 무관심해버리는 사람이 많은데

이런 사람은 사랑할 힘이 너무도 없어서 미워할 힘도 없으며

고통이 두려워 미워하지도 못하는 겁쟁이들입니다.

 

헌데 사랑이 전혀 없어서 미워하지도 못하고 무관심해버리는 사람도 있지만

사랑도 전혀 없고 그렇다고 무관심할 수도 없기에 정말로 미워하는 사람,

곧 완전히 미움밖에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미워하는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데

죽이지 못할 경우 어떻게든 그를 파괴하려고 합니다.

그만 파괴할 수 없을 경우 자신을 파괴하면서도 파괴하려고 하지요.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정적政敵에 대한 미움입니다.

옛날 이승만 대통령이 김구, 신익희, 조봉암을 정적이기에 제거하고

박정희, 전두환 같은 대통령이 정적인 김대중 대통령을 죽이려 했으며,

지금도 이와 비슷한 미움의 광기와 살기가 느껴집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의 얘기에서도 이런 비교를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에 대한 시기 질투 때문에

죽이고 싶어 할 정도로 미워하고 그래서 죽일 음모도 꾸미지만

그래도 사랑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어서 팔아버리는 거로 생각을 바꿉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께서 비유를 들려준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은

일말의 사랑도 없고 자신들의 정적인 예수님을 살해할 겁니다.

 

이들은 예수님 이전에 예언자들을 그렇게 했는데 그것은

예수님은 말할 것도 없고 예언자들도 그들을 정적으로 생각지 않았지만

자기들이 그저 예수님과 예언자들을 정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 나라를 얘기한 것이

그들의 이 지상 기득권을 무너트린다고 위협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비유에서 말씀하신 대로

하느님의 포도밭인 이스라엘을 자기들의 포도밭으로 만들려는데

주님과 예언자들이 이 포도밭은 하느님 소유라고 하니 위협을 느낀 겁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것을 강탈하여 내 것으로 소유하는 작은 도둑들은 아닌지

성찰하는 오늘입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19Mar

    성요셉 대축일-가난하고 의로운 요셉

    성 요셉 대축일이지만 어제에 이어 정체성 얘기를 하겠습니다. 복음은 요셉을 어떤 분으로 얘기하는지, 그런 얘깁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한 마디로 요셉의 정체성을 압축합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다.”   하나는 관계적 정체...
    Date2016.03.19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805
    Read More
  2. No Image 18Mar

    사순 5주 금요일-나는 나를 누구라고 자처하는가?

    어제 “당신은 누구로 자처하는 것이오?”라고 질문한 사람들이 오늘은 “당신은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하고 있소.”라고 아주 나쁜 사람, 신성모독자로 주님을 몰아세웁니다.   자처란 무엇입니까? 사전에서는 이렇게 정의합니다. ‘자기를 어떤 사람...
    Date2016.03.1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660
    Read More
  3. No Image 17Mar

    사순 제5주간 목요일

     우리가 아는 논리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결국 죽게 됩니다.  그 논리는 어제 오늘의 논리가 아니기에  유다인들 역시 그 논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
    Date2016.03.1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527
    Read More
  4. No Image 17Mar

    사순 5주 목요일-신비적으로도 알고, 경험적으로도 안다.

    “당신은 누구라고 자처하는 것이오?”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누구신지 밝히라고 이렇게 요구하자 예수께서는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한 다음, 그러니까 당신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한 다음, 하느님을 아는 분이라고도 하십니다. “너희는 그분을 ...
    Date2016.03.1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465
    Read More
  5. No Image 16Mar

    사순 제5주간 수요일

     세상은 점점 거짓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거짓된 것을 아무 의식 없이 행동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그것이 거짓인지도 모르고 그대로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처...
    Date2016.03.16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515
    Read More
  6. No Image 16Mar

    사순 5주 수요일-나의 자유는?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오늘 독서와 복음의 주제는 자유입니다. 하느님 안에서의 자유, 하느님 말씀, 하느님 진리 안에서의 자...
    Date2016.03.16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772
    Read More
  7. No Image 15Mar

    사순 5주 화요일-어느 형제의 강론

    평화를 빕니다.   작년에 학교에서 구약입문을 배우며 앤더슨의 구약성서의 이해라는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세 권으로 이루어진 내용 가운데 한권을 탈출기에 할애하고 있을 만큼 모세와 히브리인들의의 탈출사건은 구약 전체를 꿰뚫고 있으며 이스라...
    Date2016.03.15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605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814 815 816 817 818 819 820 821 822 823 ... 1302 Next ›
/ 1302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