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주님은 우리가 생각하기에 가끔 너무 심한 말씀을 하십니다.

특히 루카복음의 주님은 더 그러하신 편입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코라진과 벳사이다에게 심한 말을 하십니다.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라고.

 

저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주님의 그 거룩한 입에서

어떻게 저런 심한 말, 아니 험한 말이 나올까 생각이 드는데 그것이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가 아니라 불행하여라, 너 김찬선아!’라고

저에게도 똑같이 말씀하신다고 생각을 하게 되면 더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코라진, 벳사이다뿐 아니라

저에게도 저주를 퍼부으시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런 것입니까? 정말 저주를 퍼부으시는 것입니까?

 

주님께서 그럴 리 없으시지요.

아무리 코라진이 잘못하고 제가 잘못한다고 저주를 퍼부으시겠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자세히 잘 보면

불행하여라!’이지 불행해져라!’가 아닙니다.

불행해지라는 것은 저주이지만 불행하다는 것은 저주가 아니지요.

 

그러면 저주가 아니면 무엇입니까?

 

그것은 저주가 아니라 정확한 상태를 진단하고 알려주시는 고언苦言이며

이런 상태를 빨리 고치지 않으면 진짜 불행해질 거라는 경고이고,

그러니 빨리 고치라는 충고이며 애원입니다.

 

이는 초기 암 상태에 누가 있는데 아직도 술 담배를 먹고 있으면

그 상태를 정확하게 알려주고 고치라고 하는 의사의 말과 같은 것이지요.

그러니까 주님의 모든 불행선언은 미움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온 말이며

저주가 아니라 경고성 충고요 애원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뭐가 잘못이라 하시고 뭐를 고치라고 하시는 겁니까?

복음서 전체를 놓고 볼 때 잘못을 했는데도 그것을 모르는 잘못이고,

그것을 고치려고 하기보다는 감추거나 오히려 위선하는 잘못이며,

더 나아가 자기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잘못하게 하는 잘못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오늘 좀 특별한 지적을 끝에 덧붙여 하십니다.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며,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주님의 불행선언은 회개하지 않는 것,

기적을 보고서도 회개치 않는 완고함에 대한 것인데

오늘은 받아들이지 않음에 대해서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의 말이건 하느님의 말이건 아무 말도 받아들이지 않고,

사람이건 하느님이건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는 잘못입니다.

 

그런데 왜 못 받아들이고 이것이 왜 불행입니까?

어떤 사람이 못 받아들이고 어째서 불행한 것입니까?

 

못 받아들이는 사람은 받아들일 여백이랄까 공간이 없기 때문이고

그래서 불행하기도 하고 어찌 보면 불쌍하기도 합니다.

 

오직 자기로만 가득 차 있고 자기만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말이나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인데

특히 아픈 말이나 충고를 하는 사람은 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 아픈 말과 충고를 사랑으로 바꿔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이며,

그래서 사랑 때문에 아파하며 해주는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고,

그래서 영혼의 병을 고치고 건강해질 수 있는 기회를 노치는 것이며,

그래서 불행한 것입니다.

 

불행한 줄도 모르는, ! 안타까운 불행.

주님은 오늘 이것을 안타까워하시고 한탄하시는 겁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04Dec

    대림 제 2 주일-또 회개? 무슨 회개?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 말씀과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회개하여라.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들으며 불경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회개?”   정말 우리교회는 수도 없이 회개를 얘기합니다. 사순절에도 회...
    Date2016.12.04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453
    Read More
  2. No Image 03Dec

    선교의 주보인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대축일-행복하다면

    오늘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의 축일입니다. 그런데 이 성인의 축일을 왜 대축일로 지내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고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들로부터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이 성 프란치스코보다 더 위대하기에 대축일로 지내는 거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Date2016.12.03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397
    Read More
  3. No Image 02Dec

    대림 제1주간 금요일

     오늘 복음에 나타나는 눈먼 사람 둘은  예수가 다윗의 자손, 즉 메시아라고  믿고 고백함으로써 다시 보게 됩니다.  '믿는 대로 되어라'라는 말씀은  예수가 나를 다시 보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다시 보게 된다는 말씀이고,  즉 ...
    Date2016.12.02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769
    Read More
  4. No Image 02Dec

    대림 1주 금요일-자비를 볼 수 있는 눈

    오늘은 눈 먼 두 사람이 보게 되는 얘기입니다. 대림과 성탄과 연결시켜 오늘 얘기를 이해하면 오신 주님을 알아 뵙게 되는 것인데 보게 되기까지 그 과정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끝부분에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다.”라는 묘사가 있는데 <그러자>...
    Date2016.12.02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491
    Read More
  5. No Image 01Dec

    대림 제1주간 목요일

     하느님과 진정한 관계를 맺지 않고서도  하느님을 주님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를 보자면 대부분  내가 원하는 것이 있을 때는 하느님을 찾지만,  내가 의무감을 가지고 무엇인가 할 때에는  하느님을 멀리하고 싶습니다.  아버지의 ...
    Date2016.12.01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593
    Read More
  6. No Image 01Dec

    대림 1주 목요일-마음의 사랑이 신체화하면

    “나의 이 말을 듣고 실천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대림절에 이 말씀을 듣습니다. 그런데 대림절은 성탄을 준비하는 시기, 곧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시기이기에 말씀으로 오시는 주님...
    Date2016.12.01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618
    Read More
  7. No Image 30Nov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나를 따라오너라'라는 예수님의 한 마디에  첫 제자 네 명은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그들은 어부였는데,  복음은 그들이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문자 그대로 읽으면,  제자들이 너무 쉽게 모든 것...
    Date2016.11.30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842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765 766 767 768 769 770 771 772 773 774 ... 1300 Next ›
/ 1300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