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한국 교회의 수호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오늘 복음을 보면 요셉 성인의 변화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작정하는 사람”에서 “명령대로 하는 사람”으로의 변화입니다.

그는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합니다.
의로운 사람으로 불리던 그는
그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파혼한 사람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이웃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마리아가 돌로 쳐죽임을 당하는 것보다
자신이 파혼한 사람으로 사는 것을 스스로 택한 것입니다.
이런 사실만 해도 그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가 드러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작정을 했을 때는
아직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성모님에게서 일어난 일을, 오늘 복음에서 언급하듯이,
“마리아의 일”로, 즉 사람의 일로 밖에는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명령대로 하면서 그는
“마리아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임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마리아의 일”로 보고 있을 때 요셉은 마리아의 곁을 떠나고자 했습니다.
즉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일임을 알았을 때 그는 떠나려고 했던 그 자리에 머무릅니다.

그러나 ‘머무른다.’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존재감 없이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실상 우리도 다른 무엇보다 우리의 존재감이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일례로 요즘 사람들은 어디서나 핸드폰을 사용하는 것을 봅니다.
걸으면서, 신호등 앞에서, 상점에서 등등
여러 좋은 점도 있지만 한편으로 보면
그들은 혼자가 아님을 느끼고자 합니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사실 현대의 구조도 사람들을 머물러 있지 못하도록 이끌어갑니다.
가정에서 각 구성원은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그리고 자녀로서 설자리가 점점 사라져 갑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부단히 움직이고 있지만
자신들의 존재감은 더욱 더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자신의 자리에 머무르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있습니다.
또 남아 있는 사람들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합니다.

하지만 오늘 제2독서에서는
이런 존재감 없이 머무르는 그곳에서 우리가 참다운 존재가 됨을 말해 줍니다.
“아브라함은 죽은 이들을 다시 살리시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도록 불러내시는 하느님 앞에”
믿음으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또 “그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그럼으로써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그것은 머무름이었습니다.
십자가 밑에 계신 성모님, 그것 또한 머무름이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인은 참으로 복되신 동정녀의 배필로서,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서,
그리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보호자로서 자격을 갖추신 분이십니다.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것, 그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제1독서에서 다윗에서 약속하시는 많은 좋은 것들을 약속하십니다.
“나라, 왕권, 왕좌”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이것처럼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말씀이 있습니까?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 ?
    홈페이지 이대건 2009.03.19 11:58:10
    머무름은 관계를 지닐때 의미를 갖는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30Nov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초인이 아니라 성인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어제 저는 대림 1주 화요일 강론을 올렸지만 실은 어제가 프란치스칸 모든 성인의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얘기 중에 당연히 성인이란 어떤 존재이고, 어떻게 하면 성인이 될 수 있는지 얘기...
    Date2016.11.30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872
    Read More
  2. No Image 29Nov

    대림 1주 화요일-비구원의 상태에 있기에 오히려.

    “그는 주님을 경외함으로 흐뭇해하리라. 그는 힘없는 이들을 정의로 재판하고, 이 땅의 가련한 이들을 정당하게 심판하리라.”   이사야서는 메시아의 오심을 예고하는 예언서입니다. 그리고 메시아가 오시면 평화로운 세상이 될 터인데 오늘 독서는 이...
    Date2016.11.29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540
    Read More
  3. No Image 28Nov

    대림 제1주간 월요일-낙엽의 가르침-

    T.평화를 빕니다.   가을에는 바람이 불어오고 나무에서는 낙엽들이 많이 떨어집니다.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들은 길거리를 애워싸고 주변에 떨어진 낙엽들을 쓸어 모으기도 합니다. 그리고 전 떨어진 낙엽들에게서 자연의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의 진리를...
    Date2016.11.28 Category말씀나누기 By일어나는불꽃 Reply0 Views675
    Read More
  4. No Image 28Nov

    대림 1주 월요일-굳이 오시겠다는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오늘 복음에 나오는 주님과 백인대장의 관계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주님과의 관계가 이러하면 좋을 것입니다.   오늘 ...
    Date2016.11.2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514
    Read More
  5. No Image 27Nov

    대림 제1주일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사람들이 두려움에 떠는 방식으로,  남몰래 오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 날이 언제인지,  그 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버지만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
    Date2016.11.2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523
    Read More
  6. No Image 27Nov

    대림 제 1 주일-하느님을 잃지 않으려면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밤이 물러가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니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교회력으로 한 해가 지나고 새해를 맞이했고 그래서 대림절입니다. 그런데 한...
    Date2016.11.2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323
    Read More
  7. No Image 26Nov

    연중 제34주간 토요일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일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막연함 때문에  사람은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그 두려움은 우리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하는데,  엄청난 고통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그 고통을 참기 힘들어서  사람들이 자주 선택하는 것은  회피와 ...
    Date2016.11.26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531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765 766 767 768 769 770 771 772 773 774 ... 1299 Next ›
/ 1299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