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주님께서는 오늘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내 속에 담긴 것, 내 안에 있는 것은 무얼까 생각해봤습니다.

 

속이나 안, 곧 내면에 있는 것은 대략 이렇게 구별될 것입니다.

의지로 치면 선의이거나 악의이고,

생각으로 치면 좋은 생각과 나쁜 생각이며

감정으로 치면 나쁜 감정이거나 좋은 감정이고,

정신으로 치면 육의 정신이거나 기도와 헌신의 정신일 것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구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것이 사랑인가, 욕망인가.

 

물론 내 안에 있는 것이 사랑인가, 미움인가,

사랑인가, 무관심인가, 이런 구별도 가능하지만

사랑과 욕망으로 구별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사랑과 욕망은 어떻게 구별되는 겁니까?

그것은 충만과 결핍의 관계이고 그런 구별입니다.

 

사랑의 충만이 없을 때 욕망이 가득하게 되지요.

왜냐면 욕망은 결핍을 채우려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렇잖습니까?

배부른 사람에게 무슨 식욕이 있겠습니까?

배고픈 사람에게 식욕이 있고 배고플수록 욕구가 댕기는 거 아닙니까?

 

반대로 욕구가 있고 욕구가 욕망과 욕심으로 발전할 때

사랑이 있을 자리가 없지요.

그래서 사랑이 우리 안에 자리하기 위해 욕망을 버리고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도 하고 얘기도 합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경우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욕망과 욕심은 버리기가 쉽지 않고 그래서 대부분 실패합니다.

 

그러니 욕망과 욕심을 버린 다음 사랑이 들어차게 하려고 해서는 안 되고

그 전에 그러니까 욕구가 욕망과 욕심으로 발전하기 전에

욕구를 사랑으로 바꿔야 합니다.

 

욕구는 결핍의 존재에게 어쩌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는데

욕구는 그러나 얼마든지 사랑으로 바꿀 수가 있습니다.

식욕과 식탐을 가지고 한 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인간인 이상 식욕이 없을 수 없고, 없어서도 안 되겠지요.

그러나 식욕과 식탐은 거의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식욕은 유한한 인간의 조건일 뿐이지만

식탐은 유한한 인간이 조건에 굴욕적으로 굴복하고

더 나아가 사랑이 들어올 수 없도록 욕망과 욕심에 자기를 포기한 것이지요.

 

그러니 욕구 단계에서 빨리 욕구를 사랑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식욕이 댕길 때 원하는 것을 원하는 대로 먹음으로써

거기에서 오는 만족으로 대리만족을 할 수도 있지만

음식에 대한 욕구를 하느님 사랑에 대한 욕구로 바꿈으로써

욕구가 욕망이 아니라 갈망이 되고 사랑이 되게 할 수도 있지요.

 

우리는 겉의 손을 씻는 것보다 이렇게 안에 있는 욕망과 욕심을

사랑으로 바꾸는 내면 씻기가 진정한 정결례라고 믿어야 하겠고

이미 들어찬 욕망과 욕심을 씻어내는 정결례보다

욕구 단계에서 사랑이 차게 하거나 한 걸을 더 나아가

아예 사랑으로 욕망이나 욕심이 자리할 수 없게 해야겠습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31Dec

    성가정 주일-동거가 아니라 사랑이다.

    사실 지금 우리 세대의 현실 안에서 성가정 축일 운운하는 것은 현실과의 괴리가 너무도 크기에 참으로 난감하기만 합니다.   요즘 혼족이란 말이 흔하고, 혼족 가정, 혼족 문화, 혼족 여행 등 혼족이 앞에 붙은 말들이 부지기수입니다. 혼족이란 혼밥과...
    Date2017.12.31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9883
    Read More
  2. No Image 30Dec

    성탄 팔일 축제 제6일

     우리가 희망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이 단어를 과거형으로 사용하지 않고,  미래형으로 사용합니다.  즉 어떤 것을 희망한다고 할 때,  그것은 이미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사건과 연관이 있습니다.  즉 아직 벌어지지 않은 것을 희...
    Date2017.12.30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10273
    Read More
  3. No Image 30Dec

    12월 30일-바람직하고 효과적인 격려의 방법

    오늘의 편지는 요한이 편지를 쓰는 까닭을 얘기하는 앞부분이 있고 편지를 받는 이들에 대한 권고의 뒷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편지를 쓰는 까닭을 얘기하며 오해를 살만한 얘기를 합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하느님을 알...
    Date2017.12.30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10015
    Read More
  4. No Image 29Dec

    12월 29일-의지가 없는 앎

    영어에서 “Truth”라는 말은 우리말로 두 가지로 번역됩니다. 진실/사실과 진리라는 뜻 두 가지입니다.   그리고 오늘 요한의 편지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나는 그분을 안다.’ 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쟁이고, 그에게는 진리가 ...
    Date2017.12.29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27433
    Read More
  5. No Image 28Dec

    무죄한 어린의 순교 축일-벌이 아니라 동참이다.

    “헤로데는 예루살렘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줍니다.”   고분고분하지 않는 마음으로 오늘 축일을 따지고 들면 시비꺼리가 없지 않습니다.   아기 순교자...
    Date2017.12.2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17516
    Read More
  6. No Image 27Dec

    성 요한 축일-비관의 습관에서 벗어나야!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그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그 생명을 보고 증언합니다.”   우리의 교회의 전례는 아시다시피 의도를 가지고 있습...
    Date2017.12.2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4 Views1585
    Read More
  7. No Image 19Dec

    12월 19일-삼손과 요한만이 아니다.

    “그 아이는 이미 모태에서부터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 될 것이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돌계집에게서 태어난 사람들의 얘기이고, 하느님의 계획과 섭리에 의해서 태어난 사람들의 얘기이며, 이스라엘과 인류의 구원을 위해 봉헌된 사람들의 얘기입...
    Date2017.12.19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4 Views9991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706 707 708 709 710 711 712 713 714 715 ... 1300 Next ›
/ 1300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