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1680 추천 수 2 댓글 3
매일미사 말씀 보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우리가 불행한 이유.

 

어제에 이어 오늘도 주님께서는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불행하다 하시며

불행한 이유들을 대시는데 그것은 우리가 불행한 이유들이기도 합니다.

불행하여라. 너희가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불행하여라. 너희가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불행한 이유들입니다.

더 중요한 율법을 무시하는 것과 안에 탐욕과 방종이 가득한 것인데

먼저 더 중요한 율법을 무시하는 것에 대해 보겠습니다.

 

율법주의는 나쁘지만 율법이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이

주님의 가르침이고 우리도 이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율법주의/율법지상주의가 율법을 지나치게 중요시하여 문제라면

율법을 무시하는 것은 율법 자체를 무가치한 것으로 여길 뿐 아니라

율법을 주신 하느님마저 무시하는 것이기에 훨씬 더 문제이고 나쁩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께서는 율법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율법을 무시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이 덜 중요한 것은 무시하지 않고,

더 중요한 율법을 무시하고 있다는 말씀인데 그 이유가 뭐라는 겁니까?

 

구약을 보면 예언자들이 하느님께서 더 원하시는 것은 제물이 아니라

자비라고 거듭 거듭 얘기했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이 말을 무시해왔고,

그래서 오늘 주님께서도 십일조는 내면서 더 중요한

의로움, 자비, 신의는 무시한다고 말씀하시는 거지요.

 

왜 이것이 이들에게 더 중요하지 않습니까?

몰라서 더 중요하지 않은 걸까요?

 

수도원 들어와서 얼마 안 됐을 때 저는 가난을 사랑보다 더 중시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사랑이 첫째가는 계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같은 우를 범치 않으려했는데 이들도 이런 거였을까요?

 

주님은 그것이 아니라 탐욕과 방종이 가득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십일조를 강조하는 것이지

진정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봉헌하려는 것이 아니며

방종하기까지 하니 하느님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며,

자기 욕심대로 약탈이든 뭣이든 하려는 거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나쁘다, 악하다고 하지 않으시고,

위선자이며 불행하다고 하십니다.

왜 위선자라고 하고 왜 불행하다고 하십니까?

 

위선이란 선을 가장하는 것이지만 선이 없다는 반증이며,

탐욕이 가득하다는 것도 선의 결핍이 대단하다는 거지요.

선이 가득하다면 인자하고 자비로울 텐데

선이 없기에 악하고 악하기에 선으로 위장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욕심이나 탐욕이 많은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기보다는

불행한 사람이며 불행한 사람이기 이전에 불쌍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느님의 선으로 충만해본 적이 없으며

그러기에 하느님의 선이 아닌 다른 선으로 자기 배를 채우려는

매우 허기진 사람이요 허기가 대단하여 불쌍하고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허기졌기에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욕심을 부릴 수밖에 없으며,

욕심밖에 없기에 사랑할 수 없는 불쌍하고 불행한 사람입니다.

 

허기를 하느님의 선과 사랑으로 채우려하지 않고

사람에게 향하여 사람들이 채워주기를 바라는 가련한 사람,

사람들이 채워주지 않자 자기 욕심대로 채우려는 방종한 사람,

그런 불쌍하고 불행한 사람이 내가 아닌지 돌아보는 오늘입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 profile image
    홈페이지 민트 2018.08.29 07:45:12
    제가 행복한 이유를 성체 앞에서 숨을 길게~ !
    들숨과 날숨으로 순간마다 느껴봅니다.
  • ?
    홈페이지 Thomas 2018.08.28 21:04:47
    평화를 빕니다!

    하느님의 선과 사랑으로
    제 삶의 공간을 메꾸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과거의 욕심을 욕심이라고 하지 않는 방종한 사람으로...

    감사합니다.
  • profile image
    홈페이지 이필수다리아 2018.08.28 06:32:23
    감사합니다....^^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20Sep

    한국 순교 성인 대축일-순교자 축일에 하는 저의 반성과 봉헌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오늘도 일찍 일어나 제 작은 방 벽에 등을 기대고 오늘 축일의 독서와 ...
    Date2018.09.20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1606
    Read More
  2. No Image 19Sep

    연중 24주 수요일-스러져야 할 사랑

    이런 마음으로 강론을 쓰면 안 되는데 강론을 쓰고 나면 이런 마음이 바뀌기를 바라며 강론을 씁니다.   남자의 계절인 가을에 가을을 타기 때문인지 또는 기력이 떨어졌기 때문인지 요즘 왠지 기운이 없고 허무감 같은 것이 얼마간 있습니다.   그래...
    Date2018.09.19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3 Views1542
    Read More
  3. No Image 18Sep

    연중 제24주간 화요일

    과부에게 외아들은 그녀의 전부나 다름없었습니다. 유다 사회에서 여자들은 남편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살았고, 그래서 남편이 없는 과부들은 아들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외아들의 죽음이란 과부에게 있어서 스스로 ...
    Date2018.09.1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1 Views633
    Read More
  4. No Image 18Sep

    연중 24주 화요일-병의 치유가 곧 구원은 아니다.

    주님께서 오늘 과부의 외아들을 되살리신 얘기는 과부와 외아들에게 베풀어진 구원 사건으로만 볼 수 있고, 불쌍한 과부이니 구원을 베푸심은 마땅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이들의 구원을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보고 의미를 새겨야 할 사건입니다. ...
    Date2018.09.1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725
    Read More
  5. No Image 17Sep

    성 프란치스코 오상 축일-상처의 치유를 프란치스코에게 배우다.

    요즘 같이 상처를 받고 신음하는 사람이 많은 때에, 프란치스코의 오상 축일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의구심이 들면서 오늘은 이런 관점에서 묵상을 해봤습니다.   참으로 요즘은 상처 받았다는 사람이 많고 그래서 여기저기서 Hea...
    Date2018.09.1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3 Views2407
    Read More
  6. No Image 16Sep

    2018년 9월 16일 연중 24주일-터키 에페소 기도의 집

    2018년 9월 16일 연중 24주일 . 오늘 독서와 복음은 우리 자신의 정체성에 따른 행동과 결단을 요구합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초대 은수자와 수도자들이 근본적으로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입니다.  참된 나의 정체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나는 누구인...
    Date2018.09.16 Category말씀나누기 By고도미니코 Reply2 Views1065
    Read More
  7. No Image 15Sep

    고통의 성모 마리아-마음에 새기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가 서 계셨다.”   어제 성 십자가 현양 축일에 이어 바로 다음 날인 오늘 교회는 고통의 성모 마리아 축일을 지냅니다. 주님의 모든 축일에 짝을 이루는 성모님의 축일이 있는데 주님의 십자가 축일에 해당하는 성...
    Date2018.09.15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919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661 662 663 664 665 666 667 668 669 670 ... 1303 Next ›
/ 1303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