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1810 추천 수 2 댓글 1
매일미사 말씀 보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몇 년 전부터 저는 화살기도를 많이 강조합니다.

그것은 종종 기도를 잘한다거나 많이 한다고 젠체하는 것에 대한

은근히 부정적인 시각이랄까 반감의 표시로 그러할 때도 있지만

진정 영적인 의미로 화살기도가 좋은 기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불교의 원효대사가 당시 출가자들이나 할 수 있는

어려운 수행방법을 통하지 않고 범부들도 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으로

나무관세음보살을 반복하게 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저는 성당에 자리 잡고 앉아서 깊은 묵상을 하는 것보다

묵주를 늘 손에 들고 다니며 할 짓 다하면서도 기도하고,

분심하면서도 기도하는 것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기도는 또한 순간의 모든 것을 기도로 바꾸는 겁니다.

화나는 순간에도 그 화를 기도로 바꾸는 것이요,

미움의 순간에도 그 미움을 기도로 바꾸는 것이며,

저주와 욕이 튀어나는 그 순간에도 그것들을 기도로 바꾸는 겁니다.

 

예를 들어 운전을 하는데 다른 차가 갑자기 끼어들어

큰 사고가 날뻔하여 욕이 튀어나올 때 저런 빌어먹을 놈하지 않고,

저 빌어먹을 놈 혼 좀 내주세요.’하면 그것은 기도가 되겠지요.

 

제가 이렇게 생각하지만 오늘 주님을 보면

따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일상의 기도도 중요하지만 일상을 떠나는 기도도 중요하다는 가르침입니다.

사실 일상을 떠나는 기도는 중요한 것 이전에 필요한 것입니다.

일상을 떠남이 없이 일상을 늘 기도하고 순간을 기도로 바꾸겠다는 것은

영적으로 이미 높은 경지에 올라 있지 않는 한 자주 실패하게 됩니다.

 

근심이 생기면 눈을 들어 하늘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근심이 너무 크면 눈을 하늘로 돌릴 수 없을 정도로

근심에 사로잡히는 것이 우리이고

미움이나 분노는 더더욱 우리를 집어삼켜

정말 아무 것도 뵈는 것이 없게 만들지요.

 

근심 중에 있는 나,

미움과 분노 중에 있는 나를 볼 수만 있어도 하늘을 볼 수 있는데

그런 나를 볼 수 없을 정도로 근심과 분노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화가 너무 날 때는 고집스럽게 그 사람을 앞에 두고 있지 말고

그 사람을 잠시 떠나 있다가 돌아오는 것이 필요하듯

일상을 떠나는 기도는 그래서 필요하고 그래서 중요합니다.

 

그런데 저의 경우 떠난다고 떠나는데도 자주 실패하는 경우가 있는데

일상을 떠나 조용한 곳에 갔는데 장소를 옮겨 근심한다거나

장소를 옮겨 그 생각을 이어가는 저를 봅니다.

 

그래서 제가 요즘 하는 방법은 걷는 피정입니다.

걸으면서 이것저것을 보다보면

근심에서 풍경이나 사람들에게로 시선이 옮겨가고

일단 근심에서 시선이 다른 것으로 옮겨가고 나면

하늘도 보이고 하늘의 하느님도 보이며

하늘에서 근심하고 있는 나를 보고 나의 근심도 보게 됩니다.

 

이때 어디든 자리를 잡으면 이제 깊은 기도가 가능해지고

하느님과 장막 없이 만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것을 알지만 이곳 가리봉에 올 때 애초의 생각과 달리

역시 요즘 제가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바쁜 건데 이것이 실천적인 잘못이고 저를 망치는 것이기에

열일 제쳐 놓고 주님처럼 떠나야 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오늘입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03Nov

    연중 제30주간 토요일

    우리가 낮은 자리에 앉아야 하는 이유는 오늘 복음에 따르면, 우리가 자신을 낮출 때 우리가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즉 높아지기 위해서 오히려 낮은 자리를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습은 자신을 스스로 높이는 사람의 마음과 똑같다고 볼 수 있습니...
    Date2018.11.03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2 Views519
    Read More
  2. No Image 03Nov

    연중 30주간 토요일-사람들보다 낮아지지 않고 하느님 앞에서 낮아지는 우리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높은 사람과 높이는 사람은 다릅니다. 높은 사람은 높기에 높이지 않고 낮은 사람이 낮기에 높이는 거지요.   그러기에 우리 인간은 그 천박함 때문에 높이는 사람을 ...
    Date2018.11.03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4 Views1205
    Read More
  3. No Image 02Nov

    위령의 날-위로만 하지 말고 격려를 해야

    “내 살갗이 이토록 벗겨진 뒤에라도 이 내 몸으로 나는 하느님을 보리라. 내가 기어이 뵙고자 하는 분, 내 눈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보리라.”   전례력으로 마지막 달을 보내면서 교회는 위령성월을 지내지요. 그리고 어제 위령성월의 첫날을 ...
    Date2018.11.02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3 Views1444
    Read More
  4. No Image 01Nov

    모든 성인 대축일

    오늘 복음의 말씀을 우리는 진복 팔단이라고 부릅니다. '행복하여라'라는 단어가 총 9번 나오지만, 마지막 내용은 어덟번째 내용을 설명한 것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여덟까지 행복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 여덟까지 중에서 4가지는 하느님 혹은 하...
    Date2018.11.01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1 Views536
    Read More
  5. No Image 01Nov

    모든 성인의 날-성인의지聖人意志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바보 같은 질문인지 모르지만 교회는 왜 모든 성인의 날을...
    Date2018.11.01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1590
    Read More
  6. No Image 31Oct

    연중 30주 수요일-모두에게 주시지만 아무나 받지 못하는 구원

    오늘 주님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라는 물음에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라고 답하십니다.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받는 사람이 둘 다 있어야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그러니 주는 사람이 없으면 ...
    Date2018.10.31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1337
    Read More
  7. No Image 30Oct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겨자씨와 누룩에 비유하십니다. 겉으로는 작고 하찮게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엄청나게 커 있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자칫 환상에 빠지기도 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모습에 속아 작은 것은 놓치고 지나가는 경...
    Date2018.10.30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1 Views486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648 649 650 651 652 653 654 655 656 657 ... 1299 Next ›
/ 1299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