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오늘은 성지주일과 수난주일이 합쳐진 주일입니다.

풀어서 얘기하면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성대하게 입성하신 것과

예루살렘에서 처참하게 돌아가신 것을 함께 기념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정 반대되는 두 가지를 한꺼번에 기념하는 것인데

요즘 사람들이 웃기면서 슬프다는 뜻의 <웃픈>과 같은 맥락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주님을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면서 환영하는데 호산나라는 말의 뜻이

구원하소서!’라는 뜻이고 그러기에 이 환호는 주님께서

다윗의 후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러 오셨다고 환호하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러 오시는 분이심이 분명하고,

그러므로 그분의 오심을 환영하고 환호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구원이 무엇인지가 사람에 따라 사뭇 다르고

당시 사람들이 생각한 구원과 주님께서 생각한 구원이 사뭇 다릅니다.

 

당시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구원은 구출의 성격이 크고,

구출이라는 것도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으로서

가난으로 인한 고통,

질병으로 인한 고통,

억압으로 인한 고통

온갖 관계적인 고통,

심리적인 고통과 같이 이 세상의 모든 고통에서 끄집어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생각하신 구원은 이런 것과 어떻게 다른 걸까요?

주님께서는 이런 구원은 도무지 생각지 않으신 걸까요?

주님께서 온갖 질병을 치유해주시고,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을 구해주시고,

원수관계를 극복하는 법을 알려주심으로 고통에서 구출해주신 얘기가

복음에 숱하게 나오는데 고통으로부터의 구출을 도외시했다할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이런 구원을 도외시하신 것은 물론 아니고

그래서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크게 환호한 것도

기적을 숱하게 봤고 로마의 억압에서 구해줄 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구원이 주님께서 궁극적으로 생각하신 구원은 아닙니다.

만일 이런 구원이 궁극적인 구원이라면 주님도 구원에 실패하셨고,

가톨릭은 불교보다도 구원에 있어서 뒤떨어진 종교입니다.

 

불교는 마음의 고통과 마음의 평화에 있어서 확실히 답을 주지 않습니까?

이에 비해 주님도 그렇고 우리 가톨릭은 오히려 수난을 얘기하고 있고

오늘 수난주일을 지내듯이 수난, 곧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을 중시합니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껴안으라고 얘기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주시는 구원은 우리를 고통에서 건져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나 광야의 고통을 거쳐 가나안 복지에 도달하듯

고통과 죽음을 넘어 부활의 행복에로 가는 것, 곧 파스카의 구원이고,

이렇게 부활의 행복에로 인도해주실 주 하느님을 만나는 구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은 고통은 곧 불행이라는 등식을 깨고,

오히려 고통은 행복에로 가는 징검다리이고,

하느님 나라, 곧 천국에 오르게 하는 사다리이며,

거기에 계신 하느님을 만나게 하는 다리라고 가르치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지내는 수난 성지 주일의 가르침도 당연히

당시 예루살렘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을 이 세상 모든 고통에서 구해주실 분으로 맞아들이지 않고

우리를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로 인도하여 하느님을 만나게 하실 분이요,

이 세상 온갖 고통과 죽음을 넘어 영원한 생명과 행복에로 인도하실 분으로 

주님을 환영하고 환호하라고 가르치는 주일임을 명심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28Apr

    성녀 가타리나 동정 기념일

    2019.04.29.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기념일 - http://altaban.egloos.com/2235357
    Date2019.04.28 Category말씀나누기 By오바오로 Reply0 Views455 file
    Read More
  2. No Image 28Apr

    부활 제2주일

     부활하신 주님을 뵈었다는 제자들의 말을 토마스는 믿지 못합니다.  그러자 여드레 뒤에  예수님께서 다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지만 이 말은  이어지는 말과  서...
    Date2019.04.2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1 Views431
    Read More
  3. No Image 28Apr

    부활 제 2 주일-여드레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부활 8부 축일은 오늘 부활 제 2 주일까지 거행됩니다. 우...
    Date2019.04.2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273
    Read More
  4. No Image 28Apr

    2019년 4월 28일 부활 2주일 -터키 에페소 기도의 집

     2019년 4월 28일 부활 2주일  오늘 복음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제자들에게 건네는 평화의 메시지와 함께 성령과 믿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의 증언을 듣고도 제자들은 무서워서 어떤 집에 모여 문을 모두 ...
    Date2019.04.28 Category말씀나누기 By고도미니코 Reply1 Views382
    Read More
  5. 27Apr

    부활 제2주일

    2019.04.28. 부활 제2주일 - http://altaban.egloos.com/2235342
    Date2019.04.27 Category말씀나누기 By오바오로 Reply0 Views421 file
    Read More
  6. No Image 27Apr

    부활 팔일 축제 토요일

     한 주간의 부활 팔일 축제를 지내면서  우리는 주님께서 부활하시어  사람들에게 나타나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마르코복음은  짧지만, 그 안에 여러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서 떠나시기 전...
    Date2019.04.2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1 Views385
    Read More
  7. No Image 27Apr

    부활 8부 토요일-완고함에서 확고함으로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되살아난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하여라.”   오늘 복음은 마르코복음의 아주 간략한 부활사건 기술입니다. 다...
    Date2019.04.2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154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611 612 613 614 615 616 617 618 619 620 ... 1306 Next ›
/ 1306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