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말씀나누기
김명겸요한 2019.04.16 23:38

성주간 수요일

조회 수 540 추천 수 2 댓글 1
매일미사 말씀 보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엇그제 우리는
마리아가 예수님께
삼백 데나리온어치 향유를 사용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리아는 그것이 결코 아깝지 않았으며,
그녀가 할 수 있었다면
더 비싼 향유도 아낌없이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만큼 그녀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분이었고,
그만큼 그녀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유다는
수석 사제들에게 가서 흥정을 합니다.
예수님을 넘겨 주기로 결정하면서
그가 받은 돈은 결국 은돈 서른 닢이었습니다.
이것은 율법에서
소가 이웃의 종을 뿔로 받아서 죽었을 때
배상금으로 물게 되는 금액이었습니다.
즉 유다가 생각할 때
예수라는 존재는
겨우 종의 신분 정도인 셈입니다.
그 이야기는,
유다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의 크기는,
주인이 종을,
그것도 자신에게 속한 종이 아니라
이웃의 종을 사랑하는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사랑하시는 것과
유다를 사랑하시는 것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가 자신을 팔아넘길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그것을 막지 않으십니다.
물론 당신께서 가시려는 길에
충실하시기 위해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유다가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그것을 멈추기를 기다리고 계셨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강압에 의한 것이 아닌,
유다 스스로의 자유 의지에 의해서
행동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주인과 종의 관계가 아닌,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서로 사랑을 주고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유다는 사랑의 관계가 아니라
주인과 종의 관계에 머물렀고,
그것도 예수님이 주인이 아니라
자기가 주인인 관계에 있었습니다.

물론 유다는 예수님의 사형 선고를 보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여전히
유다는 주인과 종의 관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물론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주인인 상황입니다.
종으로서 유다는
주인님께 용서를 청하지 못합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사랑의 관계가 아니기에,
사랑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용서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결과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나요?
물론 하느님이라는 존재가
우리와 동등한 존재라고만은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제자보다 스승이 높은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우리보다 위대한 분이십니다.
하지만 그 위대하심을
우리가 다가갈 수 없는,
그래서 두렵고 떨리기만 한 존재로 생각할 때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우리는
그분을 사랑할 수도,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결국 하느님과의 관계는
깨지고 말 것입니다.

아버지로서의 사랑,
우리보다 더 넓은 품이기에
우리를 다 감싸 안아주시면서,
그 사랑이 우리와 지금 여기에서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다고 생각할 때,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고,
우리의 부족함에도
우리의 모든 것을
그분께 열어 보여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26Apr

    부활 제4주간 금요일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느님께 가는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구약의 하느님은 보이지 않고, 직접 만날 수 없다는 것을 통해서 인간이 가까이 할 수 없는 분, 그렇게 전지전능하신 분으...
    Date2024.04.26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22 new
    Read More
  2. No Image 26Apr

    부활 4주 금요일-살아 행복하고, 죽어 구원 받는

    옛날 형제들을 양성할 때 많이 얘기한 것이 성숙입니다. 양성이란 미성숙한 형제를 성숙한 형제로 키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성숙과 미성숙을 얘기하면서 제일 먼저 얘기하는 것이 바로 인생의 목적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있느냐, 있다면 뭐...
    Date2024.04.26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5 Views394 new
    Read More
  3. No Image 26Apr

    2024년 4월 26일 금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
    Date2024.04.26 Category말씀나누기 By고도미니코 Reply0 Views26 new
    Read More
  4. No Image 25Apr

    성 마르코 복음 사가 축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사명을 주십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오늘 복음의 끝에서는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라고 전합니다. 이 단락은 복음 선포로 시작해서 복음 선...
    Date2024.04.25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82
    Read More
  5. No Image 25Apr

    마르코 복음 사가 축일-영적 성장은 멈출 수 없다

    베드로 사도는 오늘 축일로 지내는 마르코 복음사가를 ‘나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여러분과 함께 선택된 바빌론 교회와 나의 아들 마르코가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   이것으로 봐 둘 사이는 영적 부자 관계였던 것 같은데 둘 사이에는 인간적으로도 나이 차...
    Date2024.04.25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0 Views512
    Read More
  6. No Image 25Apr

    2024년 4월 25일 목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
    Date2024.04.25 Category말씀나누기 By고도미니코 Reply0 Views45
    Read More
  7. No Image 24Apr

    부활 제4주간 수요일

    빛으로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모든 사람을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십니다. 심판을 통해 영원한 어둠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빛으로 영원한 생명을 주려고 하십니다. 오늘의 이 말씀은 요한복음 12장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요한복음을 ...
    Date2024.04.24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54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 1298 Next ›
/ 1298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