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말씀나누기
김명겸요한 2014.11.02 18:35

위령의 날

조회 수 774 추천 수 0 댓글 0
매일미사 말씀 보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마태 25,13)

 오늘 주님께서는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해서 준비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은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르기 때문에, 여분의 기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처녀들은 여분의 기름 없이 신랑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다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가지고 있던 기름도 바닥이 나서,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고, 다시 돌아온 다섯 처녀들은 결국 혼인 잔치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고, 또한 우리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에게 죽음이 있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문제는, 비유에서의 신랑이 언제 올지 모르는 것처럼, 우리의 죽음이 어느 순간, 어떻게 찾아올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죽음을 잘 준비하라는 의미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인가요?

 유교의 영향으로 우리의 문화에 있어서 죽음은 멀리해야 할 것이 되었습니다. 무덤은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아닌, 산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게 되었고, 우리 동네 안에 화장터가 들어온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 되었습니다. 살아있을 때는 그토록 곁에 있고 싶어 하지만, 죽고 나서는 더 이상 곁에 머물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곁에 있는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다는 것은 엄청난 고통입니다. 또한 죽음 앞에 있는 사람도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고,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도 그것은 고통을 안겨줍니다. 고통을 멀리하고 싶기 때문에 죽음을 멀리하고 싶지만,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우리는 언젠가는 죽어야 할 존재이기 때문에, 죽음을 멀리할 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죽음과 우리와의 관계는 가까이하기도, 멀리하기도 어려운, 그런 관계입니다.

 그러나 어차피 한 번은 겪어야 할 죽음이라면, 그리고 주위 사람들을 통해서 수 없이 경험해야할 죽음이라면, 죽음과 친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은 죽음에 대해서 감정이 무뎌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죽음은 멀리해야 할 그 무엇이 아니라, 프란치스코가 표현한 것처럼, 형제 죽음으로서 받아들여야 할 그 무엇입니다.


 죽음이 인간이 약한 존재임을 드러내는 가장 강한 표현이라면, 죽음을 받아들이기에 앞서서, 인간의 약함, 인간의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은 과학이라는 이름을 통해서 인간의 고통을 없애려고, 적어도 줄이려고 노력하지만, 고통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고, 단지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마비시키는 방법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간에게 죽음이 있다는 것은, 인간이 신이 아니라 진정한 인간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과학이 인간의 죽음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됩니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고통 역시 우리가 진정한 인간, 진정한 피조물이기 때문에 경험하는 것이라면, 과학이 인간의 고통 역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기에 고통 속에서, 그러한 고통을 주시는 하느님을 원망하기보다는, 내가 진정한 하느님의 피조물임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엄청난 고통 앞에서 그것을 생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또한 고통에서 하느님이 원망스러운 이유 중 하나는, 고통이 하느님의 벌로 느껴지고, 하느님께서 나를 버리셨다고, 나를 더 이상 보고 계시지 않는다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 고통 속에서도 당연히 우리와 함께 하시고, 당신의 십자가를 지고 우리 고통의 길에 동참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고통은 하느님께서 지금 나와 함께 하심을 깨달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됩니다.


 하느님께서도 인간의 고통, 인간의 죽음을 원하지 않으신다고 구약은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전지전능하신 분이 그렇다면 왜 인간의 고통, 인간의 죽음을 만들었느냐고, 전지전능하다면 인간의 고통, 인간의 죽음을 없앨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물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인간의 머리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고통이나 죽음에서 벗어나는 것에 집중하기 보다는, 고통과 죽음을 통해서 하느님의 함께 하심을 깨닫고, 그렇게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성경이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에게 부활이 있다는 것인데, 그 부활은 죽음을 통해서만 우리가 도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은,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부활로 이어졌다는 것이 우리의 신앙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죽음은, 우리의 부활로 넘어가는 통로, 지금은 어렴풋하게 느끼는 하느님을 얼굴을 맞대고 볼 수 있는 기회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요?

 오늘의 일상 속에서, 우리에게 찾아오는 고통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서 느끼는 약함들, 약점들을 하느님과 함께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고통 받고, 하느님과 함께 죽고, 하느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느님과 항상 함께 한다면, 죽음이 갑자기 다가와도 형제 죽음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마태 5,4)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22Dec

    12월 22일-나는 구원받았는가?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어제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믿음에 대해 칭송을 하자 오늘 마리아는 이에 대한 응답으로 찬미가를 노래하는데 이 ...
    Date2014.12.22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2167
    Read More
  2. No Image 21Dec

    대림 제4주일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인사를 합니다. '은총을 받은 이'라는 칭호와 함께. 그리고 이어서 천사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마리아에게 합니다. 처녀의 몸으로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주님께서 마리아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Date2014.12.21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1091
    Read More
  3. No Image 21Dec

    대림 제 4 주일-주님께서 세우기를 진정 바라시는 것은?

    오늘 제 1 독서 사무엘 하권의 얘기는 다윗 생애 말년의 얘깁니다. 적들을 모두 물리치고 잘 지은 궁전에서 평안히 살게 된 다윗이 이제야 눈을 돌려 하느님께서 계실 성전을 짓겠다고 제의합니다. 하느님 집은 초라한데 자기 집은 화려한 것이 마음에 걸린...
    Date2014.12.21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577
    Read More
  4. No Image 20Dec

    12월 20일-마리아처럼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려면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칠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요 며칠, 복음에 매번 등장하는 존재가 천사 가르리엘과 성령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그제는 요셉...
    Date2014.12.20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2082
    Read More
  5. No Image 19Dec

    12월 19일-축성과 축복 중에 나는 무엇을?

    “그 아이는 이미 모태에서부터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 될 것이다.”   나는 모태에서부터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 되기를 바랄까? 여러분은 모태에서부터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고프십니까?   저는 일찍 수도원에 들어왔습니다. 수도생활...
    Date2014.12.19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2627
    Read More
  6. No Image 18Dec

    대림 3주 목요일-인격적인 운명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어제 족보에 이어 마태오복음은 요셉이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다윗의 자손 요셉아”하고 불렸을 때 요...
    Date2014.12.1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2244
    Read More
  7. No Image 17Dec

    대림 3주 수요일-하느님의 족보에서는 아무 것도 빼지 마라!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하느님의 족보에서는 아무 것도 빼지 마라! 어떻게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닌 우리에게는 별로 관심도 없는 이스라엘의 족보를 마태오복음은 길게 그리고 정성들여 들려줍니다....
    Date2014.12.1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2278
    Read More
  8. No Image 16Dec

    대림 3주 화요일-주님 말씀의 맏이들

    “불행하여라. 반항하는 도성, 더렵혀진 도성, 억압을 일삼는 도성. 말을 듣지 않고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는구나.”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오시기를 기다리는 시기가 바로 대림절이라고 우리는 얘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말씀...
    Date2014.12.16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3 Views2284
    Read More
  9. No Image 15Dec

    대림 3주 월요일-교회 안에 특권층이란 없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그리고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오늘 복음에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성전을 정화하시고 거기서 가르치시는 주님께 무슨 권한으로 그리 하시는지 따집니다.   이들의 눈에는 갈...
    Date2014.12.15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2287
    Read More
  10. No Image 14Dec

    대림 제 3 주일-우리도 기뻐하자!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대림 3 주는 <기뻐하라> 주일입니다. 그래서 1, 2 독서는 물론 입당송, 본기도, 화답송, 복음 전 환호송까지 모두 기뻐하라고 우리를 격려하고 재촉합니다.   그러므...
    Date2014.12.14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2213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618 619 620 621 622 623 624 625 626 627 ... 716 Next ›
/ 716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