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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의 임재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갔다.”


저는 지금 수련자들 사회 복지 체험을 위해
진주에 있는 노인 요양 시설에 와 있습니다.
아름다운 진주의 남강 가에 위치해 있어서
어제 밤에는 거기서 마라톤 연습을 하였고,
오늘 새벽 다시 어두운 강가로 나갔습니다.
 
제 딴에는 조금이라도 비슷한 분위기에서
오늘 복음을 묵상해보고자 함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머릿속에서 상황 극을 한 셈인데,
새벽으로 향하는 밤 남강에서
새벽으로 향하는 갈릴래아 호수를 보고,
밤새도록 풍랑과 사투를 하는 제자들 보며
이곳에서 체험 중인 저희 수련 형제들 보고,
그 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어찌 하셨는지를 보며
저는 어찌하고 있고 어찌해야 할지를 생각해봤습니다.
 
오늘 복음의 상황은 이러합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오천 명이나 먹이는 그 엄청난 일을 치룬 다음
주님께서는 제자들만 따로 호수를 건너가게 하십니다.
 
같이 가지 않으시고 왜 주님은 제자들만 따로 가게 하셨을까?
제자들을 재촉하셨다고 하는데 왜 재촉을 하셨고,
호수 건너편이라고 하는데 건너편 어디일까?
 
우선 제자들만 따로 가게 한 것은 왜일까?
제자들을 먼저 보내고 당신은 군중을 돌려보내신 것을 보면
피곤한 제자들을 쉬게 하시려 뒤처리는 당신이 하신 것 같은데,
제자들이 배를 저어 갈 때
당신은 산으로 가시어 혼자 기도를 하셨다는 것을 보면
당신의 기도를 위해 제자들을 방치하신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저와 같은 예수님이었다면
피곤한 제자들을 위해 당신이 혼자 피곤한 일을 감당하고,
그리고 피곤한 당신의 심신을 재충전하기 위해
홀로 아버지 하느님과 함께 있는 시간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저 같은 주님이 아니시니 그 이상이실 것입니다.
그 이상의 뜻이 분명 있으셨을 것입니다.
 
복음을 보면 먼저 가게 하신 것이 쉬게 하려 하신 것이 아닙니다.
당신 없이 제자들끼리만 풍랑과 싸우게 하신 것입니다.
이는 부모가 어린 자식들만 남기고 어디 간 것과 같은 거지만
의도적이라는 얘깁니다.
 
그렇다면 그 의도는?
주님 없이도 풍랑을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을 키우라는?
인간적인 면에서 저도 저희 수련자들에게 그렇게 하긴 합니다.
부모가 언제까지 자식과 함께 살 수 없는 노릇이고,
스승인 언제까지 제자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는 것이니
실수를 하더라도 혼자 해결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저는 특히 프란치스칸 형제애를 키우기 위해 수련 형제들에게
어떤 어려운 문제를 같이 풀어가라고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주님도?
 
제 생각에 주님의 의도는 이런 인간적인 의도가 아닙니다.
신적인 의도, 아니면 신적 갈망의 의도랄까요,
뭐 그런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제자들도 주님 없이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부재가 제자들에게 너무도 혹독한 고통이 되기도 할 거고,
주님의 부재로 제자들이 그래서 주님을 더욱 갈망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부재가 제자들의 고통을 더욱 크게 하고
주님의 부재가 제자들의 갈망을 더욱 크게 하지만
그러나 주님의 더 큰 의도는
당신이 부재하시는 제자들의 고통과 갈망 거기에
당신이 임재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
부재不在의 임재臨在를 믿으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오십니다.
제자들 생각엔 좀 더 일찍 오셨으면 좋았겠지만 아무튼 새벽에 오셨고,
그것은 물론 갈망을 더 간절하게 하려는 주님의 의도였지요.
 
이렇게 오신 주님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이 재미있습니다.
주님이 유령인 줄 알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밤새도록 생사를 오가며 파도와 싸운 제자들에게
물위를 걸어오시는 주님은 유령과 같았을 것이고
어스름 새벽이라 그 모습도 분간이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나서서 말합니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주님께서 오셨으니 이제 자기가 가면 되는데
오라고 명령을 하라고 하는 베드로가 재미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여기에도 뜻이 있습니다.
주님께로 다가가는 것,
그것도 죽음을 무릅쓰고 물 위를 걸어 다가가는 것은
베드로 자기의 원의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원의와 허락이 있어야 되는 것이고
주님의 능력과 사랑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다가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 가고자 하는 우리의 갈망과 열망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초대하시는 주님의 은총이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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