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들은 오늘 복음에 앞서
천사들을 만났다는 비범한 체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체험은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이끌었고,
급기야 천사들이 그들에게 이야기한 것을
눈으로 직접 보게 되었습니다.
구원자가 탄생하셨는데,
그 표징은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였습니다.
쉽게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문외한일지라도
세상의 구원자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으리라는
상상은 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세상의 구원자라면
화려한 왕궁에서 태어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라는 생각이
그들에게도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베들레헴으로 갑니다.
복음은 그들이 서둘러 갔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이끌 수 있었을까요?
단순한 호기심이라기보다는
순수한 단순성이 그들을 이끌었다고 생각합니다.
때로 우리의 이성은,
우리의 머리는
너무 이것 저것을 재다보니,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하느님에 대해서 대화하면서도
각자의 체험마져도 옳으니, 그르니,
그 체험이 잘 되었느니, 잘못 되었느니
판단하면서 듣습니다.
순수하게 어린이처럼 다가오라고 하시지만,
단순하게 온전히 우리 자신을 맡겨 드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곤합니다.
그러나 목자들에게 단순성이 없었다면,
그들이 들은 것을 눈으로 확인할 기회도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의심에 가득 차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았을 것이고,
갔더라도 눈이 가려져 아기 예수를 알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단순함은
들은 그대로 보게 되면서
그들을 다시 한 번 놀라게 만들었고,
또 다시 그 이야기를 들은 이들도 놀라게 만듭니다.
즉 목자들의 단순성으로
하느님의 업적이 더 넓게 전해지고,
그렇게 하느님께 대한 찬미도 더 넓게 전해졌습니다.
아기 예수님께로의 초대는
우리를 우리 본래의 단순성으로 초대합니다.
단순한 눈만이
단순함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습니다.
작음 안으로, 소박함 안으로 들어 오시는 주님을
맞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도 작은 모습으로, 소박한 모습으로
일상을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