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은 성전 세를 면제받는다.”
오늘 복음에서 성전 세를 거두는 이들로부터
예수님께서 성전 세를 내시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으십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예수님께서 바로 성전이심을 아는 우리는 기가 막힌다고 할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전에 제가 관구 봉사자로 정동에 살 때는 더더욱
앞의 회관이나 회관 사무실들에 근무하는 분들이 저를 잘 몰랐습니다.
제가 그곳에 모습을 잘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곳에 볼 일이 있어 가더라도 티를 내지 않고 갔었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아주 오래 된 직원들은 저를 알기는 아는데
입사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분들은 저를 알지 못하기에
제가 주차장에 주차할 때 저에게 주차비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었지요.
그때 속으로 기가 막히면서도 몰라서 그러는 것이니
어쩔 수 없이 제가 그저 저 앞 수도원에 산다는 말만 합니다.
아마 예수님도 같은 심정일 것입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성전이심을 모르기에,
그래서 오히려 당신이 성전 세를 받아야 할 분임을 모르기에
사람들이 그러하는 것이니 헛웃음을 웃으시며 성전 세를 내자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당신만이 아니라
제자들까지도 성전 세를 안 내도 된다고 하시는데
그들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아들들이기 때문이라 하십니다.
이에 근거하여 지금도 성직자들이나 수도자들은
교무금이나 주일헌금을 내지 않고 교회로부터 생활까지 보장받지요.
그런데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저를 비롯한 성직자, 특히 수도자들이
나는 과연 하느님의 아들과 딸인지 자성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요즘 우리 가톨릭교회에 비판적인 신자들 가운데서
교무금이나 헌금 안/덜 내기 운동을 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것을 보면서 참으로 착잡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였습니다.
신자들이 보기에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가난하면 그러겠습니까?
부유해도 정말 신자들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면 그러겠습니까?
그리고 이분들이 교회를 사랑하지 않거나
성직자 수도자들을 미워해서 그러겠습니까?
오늘 복음 서두에 예수께서는 당신 수난에 대한 두 번째 예고를 하시는데
이에 제자들이 몹시 슬퍼하였다고 복음은 얘기합니다.
그런데 이 슬픔이 과연 어떤 슬픔일까요?
단순히 스승을 잃는 것에 대한 슬픔인지
가기 싫은 길을 같이 가야만 하는가에 대한 슬픔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슬픔이건 슬픔일 뿐이라면 제자답지 않은 것입니다.
주님의 길을 같이 가겠다는 각오에 찬 자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길을 같이 가지 않으려는 이런 성직자와 수도자들은
주님처럼 하느님 아들들이 아니기에 자신도 불행하고
성전 세를 내는 신자들에게도 짐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을 읽은 저는
성전에 살지만 성전에 합당치 않게 살며 성전 세나 축내는,
무늬만 하느님의 아들은 아닌지 말로만이라도 반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