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러 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당연하다는 듯 쓰곤 하지만

사실은 논쟁의 소지가 있기에 새겨들어야 합니다.

 

이 말이 죄인 아닌 사람은 구원하러 오지 않으셨다는 말이나

인간이 죄를 짓지 않았다면 오시지 않으셨을 거라는 말로

알아들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이 말은 의인만을 구원하실 거라는 인간의 얕은 생각과 다른,

내 마음에 드는 선인만을 사랑하는 인간의 얕은 사랑과 다른

하느님의 크신 사랑과 자비를 나타내는 말로 알아들어야지요.

 

실로 사람이 죄짓지 않을 리도 없고,

죄인이 아닌 사람도 없는데도

다른 사람은 죄인이고 나는 죄인이 아니라는 듯,

자기의 죄를 인정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더 큰 죄인이라는 듯

그렇게 사는데 그것은 큰 착각이고 자기 최면인 것입니다.

 

이런 우리에 비해 바오로 사도는

죄인들 중에 첫째가는 죄인이 자기라고 하고,

그럼에도 주님께서 자기에게 자비를 베푸셨으며,

그렇기에 주님께서 자기를 세상 구원의 도구로 삼으셨다고 합니다.

 

이런 말이 전에는 진심이 아닌 말처럼,

겸손을 가장한 말처럼 제게 들리곤 했습니다.

프란치스코도 같은 뜻의 말을 한 적이 있지요.

 

언젠가 기도를 마치고 나오는 프란치스코에게 맛세오 형제가

농담조로 왜 당신을... 왜 당신을...왜 당신을하고 말을 건네니

그것이 무슨 뜻이냐고 묻는 프란치스코에게 다시

귀족도, 미남도 아니고, 학식도 없는 당신을 왜 세상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고, 왜 당신 말을 들으려하냐고 묻지요.

 

이에 프란치스코는 이 세상 죄인들 가운데 자기보다

더 천하고, 더 부족하고, 더 큰 죄인을 보지 못하셨기에

하느님께서 자기를 뽑아 잘나고 지혜롭다는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만선만덕은 하느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라고 답하지요.

 

이 일화를 들을 때마다 저는 프란치스코가 정말 이렇게 생각했을까,

내숭을 떠는 것, 겸손을 떠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곤 하였습니다.

지금도, 오늘도 저의 겸손의 수준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지만

그러면서도 겸손이 바오로 사도나 프란치스코와 같은 경지에 도달하면

정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합니다.

 

성인들의 겸손은 하느님 앞에 있는 겸손이지요.

성인들은 사람들 앞에 있지 않고 사람들과 비교도 하지 않으며

오로지 하느님 앞에 있고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바라볼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다.

하느님 앞에 있으면서 누가 눈을 옆으로 돌려 다른 사람을 보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내가 이 사람보다 낫다 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내 죄가 크지 않을 수 있지만

지극히 거룩하신 분 앞에서 죄인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으며,

죄인일 뿐 아니라 내 죄 너무도 큼을 느끼지 않을 사람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 하느님 앞에 서고

그러나 하느님 자비 앞에 서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런 바람을 가져보는 오늘입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18Nov

    연중 33주 수요일-우리가 빠지기 쉬운 두 가지 절망

    이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입성을 앞두고 비유 하나를 말씀하십니다. 종 열 사람에게 각기 한 미나를 주고 왕위를 받으러 멀리 떠난 귀족과 똑같이 한 미나를 받았지만 각기 다른 결실을 맺은 종들의 비유입니다.   그런데 같은 비유가 마태오복음에도 ...
    Date2015.11.1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793
    Read More
  2. No Image 17Nov

    연중 33주 화요일-나의 행복은 구원받은 사람의 행복일까?

      어제 오늘의 복음은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전 예리코를 중심으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얘기이고, 둘 다 주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사람들의 얘기입니다.   그런데 둘 다 구원받은 사람들의 얘기이긴 하지만 어제 얘기는 다른 공관복음에도 ...
    Date2015.11.1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598
    Read More
  3. No Image 16Nov

    연중 33주 월요일-나도 하느님 자비를 못보는 영적 맹인이 아닐까?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무자비하다는 말이 있고, 그 사람 참 무자비하다는 말도 합니다. 그런데 무자비無慈悲는 말 그대로 자비가 없는 것이고 자비가 없기에 다른 사람에게 무자비하...
    Date2015.11.16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594
    Read More
  4. No Image 15Nov

    연중 제 33 주일-모든 것이 사라질 때 오시고 보이는 주님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종말에 대한 묘사가 옛날 어린 저에게는 너무 으스스하고 무서웠습니다. 해와 달은 빛을 잃고 하늘에서 별들이 떨어진다니 말입니다.   그야말로 그것들의...
    Date2015.11.15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416
    Read More
  5. No Image 14Nov

    연중 32주 토요일-지상의 옷을 벗고 천상의 옷으로

      우리는 한 주간 지혜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부분으로서 제가 보기에 재창조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계절들의 거의 끝자락에 와 있고 전례적으로도 연중시기의 끝에 와 있기에 이 말씀을 듣는 것이겠지요.   창세기의 창조를 보면 ...
    Date2015.11.14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515
    Read More
  6. No Image 13Nov

    연중 32주 금요일-아름다움을 통해 아름다움이신 하느님 본다

      오늘의 지혜서의 말씀은 제가 아주 공감을 많이 하는 말씀,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지혜서 말씀 중의 하나로서 정결을 우리가 왜 잘 살기 어려운지를 얘기해주는 말씀입니다.   오늘의 지혜서는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들 때문에 정작 그것을 만드신 하...
    Date2015.11.13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603
    Read More
  7. No Image 12Nov

    연중 32주 목요일-지혜에도 급이 있다.

    오늘의 지혜서는 지혜 찬가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무릇 모든 종교는 지혜를 중시하고 찬미합니다. 특히 불교는 깨달음을 중시하여 부처도 깨달은 자이고, 하여 어리석음이나 무지 또는 무명無明을 가장 경계하지요.   우리가 잘 알다시피 지혜가 많은...
    Date2015.11.12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537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850 851 852 853 854 855 856 857 858 859 ... 1319 Next ›
/ 1319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