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우리에게는 두 종류의 길이 있습니다.
그저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과 목적지로 가는 길이요,
이미 나 있는 길과 내가 만들어가는 길입니다.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이미 나 있는 길은 집이나 논밭이 아니고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곳이라는 일반적인 의미의 길이며,
굳이 목적지를 향해가는 그런 특정한 길이 아닙니다.
그래서 길을 걷고 있지만 목적지 없이 그저 길을 갈 수 있으며
이렇게 길을 걸을 때 정처 없이 걷는다거나 방황한다고 합니다.
이에 비해 목적지를 향하여 가는 특정한 길이 있으며,
이럴 경우 그 목적지를 향하여 가면 길을 통하여 가든
들판을 가로 질러 가든 그곳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고,
<나는 그곳으로 가는 길>이라고 합니다.
내가 그곳으로 가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옛날 제가 지금보다 겁이 없었을 때
등산을 가면 가끔 만용을 부렸습니다.
이미 나 있는 안전한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제가 만들려고 했던 것인데,
그때 제가 자주 한 말이 <내가 가면 그것이 길>이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때는 그렇게 목적지만 정해 놓고
산길을 가기도 하고, 인생길을 만들어 가기도 하였으니
매우 도전적이고 창의적으로 길을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 나이를 먹으면서 그리고 몇 번 죽을뻔하면서
이미 나 있는 안전한 길을 겸손하게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인생길뿐 아니라 천국 길도 안전하게 가고 싶은데,
오늘 주님께서는 고맙게도 당신이 그 길이라고 말씀하시며
당신을 통하여 아버지께서 계신 곳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수도생활 문헌, “Vita Consecrata(축성생활)”는
우리의 수도생활을 하나의 여정으로 표현하는데,
그 여정을 “A Patre ad Patrem”이라고 요약합니다.
직역하면 “아버지께로부터 아버지께로”라는 뜻이고,
풀이하면 아버지께로부터 와서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은 아버지께로부터 와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여정인데
이 여정을 먼저 가신 분이 고맙게도 예수 그리스도이시기에
우리는 그분을 길 삼아 편히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 문헌은 이어서 또 다른 길을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타볼산으로부터 해골산으로”라는 길입니다.
아버지로부터 오셔서 아버지께로 가시는 주님을 뒤따라 가다보면
타볼산에서 내려오시어 해골산으로 오르신 그 길도 따라야 한다는 겁니다.
하느님 아버지께로 가는 길을 내가 만들어 갈 필요 없이
주님께서 가신 길을 편하고 안전하게 따라갈 수 있기는 한데
그 길에 타볼산에서 내려오는 길도 있고,
해골산으로 오르는 길도 있으니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전에도 한 번 말씀드렸듯이
같이 이 길을 가야 할 동반자가 필요합니다.
쉬운 길, 가까운 길은 혼자 갈 수 있고,
혼자 가는 것이 더 편하지만
힘든 길, 먼 길은 혼자 갈 수 없고,
아예 엄두조차 내지 못하지요.
그런데 주님은 이 길을 앞서 가시는 인도자이시고,
우리는 이 길을 같이 가는 도반이요 동반자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 감사드리고
이 길을 같이 가는 우리 도반들에게도 감사하는 오늘이고 나날입니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 확인되지 않은 길을 먼저 간다는 것은 위험을 무릅쓴
모험이 아닐수 없기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신기함에서 믿음이 생기고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못 믿게거든 내가 하는 이 일을 보아서라도 믿어라."라고 하신 말씀처럼 말입니다.
그런 누군가가 현실에 존재한다는 것이 기적이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 아닐까.
그 선물이 바로 성직자와 수도자의 삶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첫 마음 처럼 때론 살지 못할 때 누구보다도 스스로 마음 아플 거라는.....
그 마음까지도 이 시대에 귀한 선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은 문득 이런 시가 떠오르네요.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김남주>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사랑 속에 형제 모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형제의 손 맞잡고
가로 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 어차 넘어 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 어차 건너 주자
해 떨어져 어두운 길을 서로 일으켜주고
가다 못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마침내 하나 됨을 위하여"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