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2169 추천 수 1 댓글 0
매일미사 말씀 보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어제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믿음에 대해 칭송을 하자

오늘 마리아는 이에 대한 응답으로 찬미가를 노래하는데

이 찬미가는 마리아가 자신의 구원을 노래하는 부분과

이스라엘 공동체의 구원을 노래하는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진짜 마리아가 노래한 것이라기보다

루카복음이 쓰일 당시 교회가 노래하던 찬미가였을 것이고,

오늘 1독서에 나오는 한나의 찬미가와 많이 닮았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긴 하지만 우리는 오늘 마리아의 찬가에서 나의 구원자 하느님이나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 보셨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을

사무엘의 엄마 한나가 말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마리아가 나의 구원자 하느님을 얘기하고 자신을 비천하다고 할 때

그것이 한나와 같은 처지에서 하는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비구원의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니고

적어도 한나처럼 돌계집이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한 것은 아닙니다.

 

한나가 아이를 낳게 된 것은 비구원에서 구원되는 사건이 되겠지만

처녀인 마리아가 아이를 낳게 되는 것은

도리어 마리아를 곤경에 빠트리는 사건이 되겠지요.

 

그러므로 이 찬미가에서 얘기되는 비구원과 비천함이란

당시 아이 못 낳던 여인들이 무시당하고 천대 받았는데,

그랬던 한나나 엘리사벳의 비구원이나 비천함이 아니고,

또 당시 아나윔으로 불리던 비천한 자나 굶주리는 자들,

곧 사회적 약자들의 비구원이나 비천함도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의

비구원이나 비천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마리아의 찬미가에는 당시 최하층에 속했던 사람들,

그중에서도 그리스도교인들에게 강한 희망을 주는 메시지도 있지만

그렇다고 구원이라는 것이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고,

억눌리던 이가 이제 다른 사람 위에 서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요.

 

구원은 하느님께서 함께 계심 그 자체입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느냐 계시지 않냐가 구원과 비구원을 가르는 기준이고,

그러므로 참된 구원은 임마누엘 주님에 의해서만 이뤄진다는 얘기입니다.

 

부자도 권력자도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으면 그게 비구원입니다.

가난하고 억눌리는 이들도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면 그게 구원입니다.

그런데 가난하고 억눌리는 이들에게 하느님마저 안 계시면 어떨까요?

 

그것은 2중의 비구원이고 최악의 비구원입니다.

그러나 다행이도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보다 하느님을 더 찾고,

억눌리는 이들이 권력자들보다 더 하느님을 찾지요.

 

그러므로 오늘 마리아가 구원자이신 하느님을 찬미함은 천사가

주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다고 한 말과 통하는 것이고,

태중에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였기에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후반부에 나오는 아나윔의 복됨도

영으로 가난한 사람이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기에 행복하다는,

산상수훈의 그 영적인 행복과 같은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이렇게 자문해봅시다.

나는 구원받았는가?

나는 마리아처럼 나의 구원과 공동체의 구원을 노래할 수 있을까?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07Apr

    부활 8부 화요일-얼마나 사랑할까 나는?

      오늘 복음은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누구보다 먼저, 그리고 주님의 애제자라고 불리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보다도 먼저 뵙는 얘깁니다.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애제자보다 먼저 마리아에게 나타내 보이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어...
    Date2015.04.0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573
    Read More
  2. No Image 06Apr

    부활 8부 월요일-승화된 두려움, 승화된 기쁨

      “그때에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다.”   오늘 복음의 여인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을 때 두려움과 기쁨을 동시에 느끼는데 하느님을 만날 때 우리 인간이 느끼는 두 감정이 ...
    Date2015.04.06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1651
    Read More
  3. No Image 05Apr

    주님 부활 대축일-부활의 시차

      사도신경을 바칠 때 우리는 이렇게 믿음을 고백합니다. “본시오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 부활하시고.”   이 신앙 고백을 할 때마다 저는 이런 생각이...
    Date2015.04.05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7 Views1791
    Read More
  4. No Image 29Mar

    수난 성지 주일-사랑의 수동태

    사회 일반적인 통념에 수동적인 태도는 좋은 태도가 아니라고 얘기합니다. 무엇 하나 스스로 하지 못하고 시켜야만 한다면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 힘들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 의해서 인생이 좌지우지되고 짓밟히기도 할 것입니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
    Date2015.03.29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5 Views2018
    Read More
  5. No Image 29Mar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사람들이 환호합니다.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 우리를 해방시킬, 우리의 왕이, 왕의 도시인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십니다.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해방이 눈앞에 다가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시는 그리스도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겟...
    Date2015.03.29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1 Views928
    Read More
  6. No Image 28Mar

    사순 5주 토요일-우리도 가야파가 아니라 예수님처럼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해 죽는 것이 낫다.”   민주화가 되기 전 우리나라나 전체주의 독재 국가에서 “대를 위해 소가 희생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주 당연한 말이었고, 그래서 어렸을 때 이 말을 들은 저는 당연한 말이라고...
    Date2015.03.2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3 Views1620
    Read More
  7. No Image 27Mar

    사순 5주 금요일-우리도 신이 되려면

        “폐기될 수 없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을 신이라고 하였다.”   어제 미사 중 강론에서 저희 형제가 지나가는 말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나는 예수님께서 어려서부터 당신의 신적 정체성을 갖지 않으셨다고 믿는다.   이 말은 ...
    Date2015.03.2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405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881 882 883 884 885 886 887 888 889 890 ... 1317 Next ›
/ 1317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