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러한 일을 저지르는 자!”
지난 주말 대전-서울-부산-대전으로 이어지는 기차를 10시간 넘게 탔는데
주말이라서 기차는 정말 완전히 만원이었고 또 공간은 완전히 열려있었기에
모든 소리와 모든 모습이 그대로 귀와 눈에 들어왔고,
그래서 요즘 우리 사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우선 한 기차를 탔기에 어딘가 한 방향으로 가고 있었지만
앞만 보고 가지 옆 사람과 아무런 나눔이 없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옛날 기차를 타면 생판 모르는 사람끼리 인사를 하고
얘기도 나누고 먹는 것이 있으면 권해도 보고 하면서 갔는데
요즘은 일체 그런 모습을 볼 수 없고, 저도 그러는 것이 편했습니다.
두 번째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화면으로 뭔가를 보고,
자기 귀에만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뭘 하는지 신경 쓰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해도 들리지 않고, 듣지도 않습니다.
세 번째로 볼 수 있는 것이 원거리 통화입니다.
바로 옆 사람과는 아무런 통화가 없는데
멀리 있는 친한 사람과는 계속 뭔가를 주고받습니다.
멀리 있는 사람에 의해 가까이 있는 사람은 완전히 소외를 받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아는 사람과 같이 기차를 탔는데도
옆 사람과는 얘기하지 않고 각기 먼 데 사람과 얘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네 번째로 볼 수 있는 것이 그런데도 한 공간에 같이 있음으로
서로는 서로를 괴롭히고, 서로는 서로에 의해 괴롭힘을 당합니다.
그러니까 친교니 나눔이니 사랑이니 이런 좋은 것은 발생하지 않고,
불쾌함과 짜증스러움과 같은 안 좋은 것만 발생을 합니다.
철야 기도회에서 강의를 하고, 미사까지 드린 다음
새벽 첫차로 부산에서 대전으로 올라오는 기차 안이었습니다.
제 뒤에는 청년이 타고 그 뒤에 60대 남성이 탔습니다.
청년은 잠이 부족했고, 60대는 아침잠이 없어서 생생했습니다.
그런데 이 60대 남성이 모두들 조용한 중에 혼자 큰 소리로 전화를 하는데
아침부터 이 전화, 저 전화 무슨 얘기가 그리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예전 같으면 제가 화가 나서 조용히 전화하라고 한 마디 하였을 테지만
요즘은 그런 것으로 영향 받지 않고 수덕의 기회로 삼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런 것으로 화내지 않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밤을 새워 피곤했음에도
그 사람 때문에 화가 나지 않고 평온한 마음으로 계속 가는데
제 뒤의 젊은이가 어른이라 말은 못하고 계속 궁시렁거리는 거였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사는 모습입니다.
둘 사이에 아무런 티격태격은 없었고, 저는 죄짓지 않고 평안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한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 인해 괴롭고 그래서 죄를 짓지만
그 다른 사람은 자기가 괴롭힌 줄, 죄짓게 한 줄도 모르고 천하태평입니다.
옛날에는 죄 고백을 이런 말로 끝맺었습니다.
“이 밖에 나 성찰치 못한 죄와
남이 나로 인해 지은 죄 있을 터이니
신부는 도무지 저를 벌하고 사하소서.”
요즘 우리의 삶은 무관하게 살려고 하나 무관하지 않습니다.
덕분에 사랑만 단절되고 고통은 여전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 말씀을 묵상하며 옛날이 숫제 더 낫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랑하려고 했지만 사랑에 실패하여 싸우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고,
나로 인해 네가 아프고 죄지을까봐 마음도 쓰지만
사랑의 고통이 오늘날 단절의 불행보다 낫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의 고통이 단절의 불행보다 낫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공동체들이 사랑의 고통보다
단절의 불행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깊이 돌아보게 되는 오늘입니다.
어디 선가 읽은 기억이 나네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고통도 많을 것이고
적게 사랑하는 사람은 고통도 적을 것이다"라는 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죽으려고 오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사랑의 삶을 살다보니 죽음으로 까지 갈 수 밖에 없었지 않았나 싶어요.
진정한 사랑은 고통과 함께 갈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인연을 맺고 산다는 것이 그렇게 낭만적인 기쁨만은 아니라는 걸
조금씩 철이 들면서 관계를 통해서 배우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고통이 오늘날 단절의 불행보다 낫습니다"라는 말씀은
진정한 사랑의 맛을 안 사람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밖에 없다는 말씀으로 알아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