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불의한 집사와 영리한 집사.
오늘 비유에 나오는 집사는 영리한 집사가 아니라 영악한 집사가 아닐까요?
불의하다면 사악한 사람이라고 하거나
적어도 영악한 사람이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주님께서는 불의한 집사를 어찌 영리하다고 하시는 것일까요?
아니 어째서 불의한 집사를 영리한 것 때문에 칭찬하시는 것일까요?
칭찬하다는 것은 권장한다는 뜻이 아닙니까?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이 비유를 당신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이 이 집사처럼 하라는 말씀이잖습니까?
그리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이니 우리에게도 그리 하라는 말씀이고요.
정말 우리가 그래도 되는 것입니까?
물론 주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그래도 됩니다.
아니 그래야 합니다.
하느님의 것은 내 것이 아니니까 맘껏 선심善心을 써도 됩니다.
내 것으로 삼지만 않으면 됩니다.
그러면 착복이 되어 진짜 불의한 것이 되지만
하느님의 것은 당신 자녀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이니 맘껏 선심 써도 됩니다.
사실 집사가 불의했던 것은 자기 마음대로 빚을 탕감해준 것이 아니라
주인의 재산을 자기 마음대로 낭비할 때였습니다.
낭비란 무엇입니까?
무가치하게 없애버리는 것이 낭비가 아닙니까?
예를 들어, 돈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랑을 위해 쓰지 않고
술이나 퍼먹고 오입질을 하는 데나 쓰는 것이 낭비입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신 뜻은
하느님의 집사들인 제자들이 자기에게 맡겨진 하느님의 은총을
쓸 데 없이 낭비하거나 함부로 낭비하지 말고
이웃 사랑이 되고, 사랑의 봉사가 되는 쪽으로 쓰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집사인 우리에게도 맡겨진 하느님의 은총이 많습니다.
나에게 돈이 많지 않다고 하느님의 은총이 적은 것이 아닙니다.
장애를 가진 분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육신이 건강한 것 하나만으로도 은총이 넘칩니다.
그런데 안 좋은 음식과 안 좋은 일에 자기 몸을 함부로 굴려
그 몸으로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은총을 낭비할 수도 있습니다.
건강하면 좋은 일 많이 할 텐데 하고 장애를 가진 분들이 부러워하는
건강을 우리는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 은총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시간은 또 어떻습니까?
일과 살림을 둘 다 하느라 조금의 짬도 없는 분들을 생각하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은 엄청난 은총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남아돌아도 기도나 좋은 일을 하는데 쓰지 않고
잠이나 자고 티브이 보는데 시간을 쓴다면 이 또한 은총의 낭비입니다.
이렇게 우리 삶의 구석구석을 보면 우리 또한
주님의 질책을 받아 마땅한 은총의 낭비자들일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나는 은총을 잘 쓰고 있는지,
아니면 어떤 은총을 낭비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하루가 되어야겠습니다.
곡간의 열쇠는 마음에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이겠지요.
사심이 없는 마음으로
" 하느님의 것은 내 것이 아니니까 맘껏 선심善心을"쓰는 하루가 되도록 마음을 쓰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