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제가 가끔 받는 질문 중에 하나가
세라핌적인 프란치스코가 무슨 뜻인지에 대한 것입니다.
이런 질문을 받은 저는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에 불타는 프란치스코에게
세라핌 천사가 나타나 그의 몸에 오상을 박아줬다고 하여
이렇게 불리게 되었음을 설명해 줍니다.
그리고 그러면 세라핌 천사는 어떤 천사인지 또 질문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또 어쩔 수 없이 중세의 천사론 중 하나를 설명할 수밖에 없지요.
중세 때는 천사를 세라핌(熾品), 케루빔(智品), 좌품(座品), 주품(主品),
역품(力品), 능품(能品), 권품(權品), 대천사, 천사, 이렇게 9 등급으로
나누기도 했는데 세라핌은 여기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는 천사입니다.
그리고 그 한자어 치품熾品에서 알 수 있듯이 불이 활활 타오르는,
다시 말해서 사랑의 불이 활활 타오르는 천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위계적인 천사론은 우리의 믿을 교리가 아닙니다.
꼭 믿어야 할 것은 천사라는 영적인 존재와 세계가 있다는 것뿐이고,
나머지 것은 왜 그런 주장들이 있는지 의미로만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렇다면 천사의 의미랄까, 역할은 무엇입니까?
나에게 천사란 어떤 존재이고, 우리 인간에게 천사란 어떤 존재입니까?
천사란 말 그대로 하느님의 사신 또는 사절입니다.
오늘 다니엘 예언서에서는 하느님을 시중드는 존재,
그래서 하느님 곁을 늘 떠나지 않고 있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의 축일을 맞이하여 천사의 삶을 닮고자 하는 우리도
하느님 곁을 떠나지 않는 삶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천사들이 하느님 곁을 떠나지 않음은 물리적으로 곁에 있음만이 아닙니다.
물리적으로 곁에 있는 존재에는 포로나 인질도 있습니다.
그러나 천사들은 원치 않는데도 붙잡혀있는 포로나 인질이 아닙니다.
포로라면 하느님 사랑의 포로이고 하느님 사랑의 인력 안에 있는 존재이며,
하느님과 사랑의 구심력을 유지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천사들은 또한 하느님과 사랑의 원심력을 유지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느님 사랑의 인력 밖으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심력과 균형을 이루는 원심력으로서
하느님 사랑 안에만 머물지 않고 하느님 사랑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겁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천사란
하느님과 사람의 아들 사이를 오르내리는 존재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오르내리는 존재라는 말씀이기도 하지요.
그렇습니다.
천사란 늘 하느님 곁에 머무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우리도 천사처럼 하느님과 사랑의 구심력과 원심력을 유지한다면
한 편으로는 하느님 사랑 안에 늘 머물고
다른 한 편으로는 하느님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는 천사가 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이라는 동심원을 갖고 천사들과 함께 도는 천사들입니다.
그러나 대천사만큼 사랑의 구심력과 원심력이 크지 않아 동심원도 작습니다.
그럴지라도 나의 사랑 작다고 하여 무시하지 않고
그 사랑을 소중히 여기는 작은 천사가 되면 됩니다.
작은 사랑도 무시하지 않고 소중히 여기는 존재가 천사가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