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2962 추천 수 0 댓글 0
매일미사 말씀 보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오늘 복음을 몇 백 번을 읽었음에도 “내 형제”라는 표현을

오늘 처음 본 듯하여 새삼스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표현을 한 경우가 몇 번이나 되는지 찾아봤습니다.

 

복음서 전체를 놓고 볼 때 3번입니다.

어머니 마리아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왔을 때

둘러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이들이 내 형제라고 한 것이 첫 번째이고,

최후심판의 비유에서 보잘것없는 이들이 내 형제라고 할 때가 두 번째이며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을 일컬어 내 형제라고 한 것이 세 번째입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이 표현을 부활 후 처음 쓰신 것이 아니고

제자들만 당신의 형제라고 하신 것이 아닌데

그럼에도 왜 남다르게 느낌이 왔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생각해보니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앞의 두 경우는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을 내 형제라고 한 것인데 반해

제자들의 경우는 특별한 친밀감의 표시로 내 형제라고 한 것이고,

그것도 이제는 더 이상 스승과 제자가 아니라 형제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내 제자들’에게 가라고 한 것보다 ‘내 형제들’에게 가라고 한 것이

좀 더 특별한 애정의 표현, 존중의 표현으로 느껴지지 않으신가요?

 

부활 이후의 제자는 이제 당신과 마찬가지로 부활을 살아갈 사람이고,

당신과 마찬가지로 이제 죽음과 부활의 선포자가 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 형제라는 표현이 남다르게 다가온 것은

사실은 두 번째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내 형제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을

제자들이 나중에 여인들을 통해 들었다고 생각을 해 봅시다.

 

 

주님을 배반하고 도망쳤던 제자들,

그래서 배반의 죄책감에 빠져 있을 제자들인데

그런 배반자들을 오히려 당신의 형제라고 하시니

제자들은 한 편으로 정말 몸 둘 바를 몰랐을 것이고

다른 한 편으로 그 사랑에 정말 감격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배반자를 주님께서 내 형제라고 하시는 것은

한 편으로 배반자를 용서하시는 것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더 이상 배반자가 아니라 동반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수많은 죄로 주님을 배반한 사람들인데,

우리가 만일 수난과 부활을 체험한 사람들이라면

우리도 더 이상 배반자가 아니라 동반자가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제자들처럼 주님으로부터 “내 형제”라고 불리고,

제자들처럼 주님의 수난과 부활을 선포하는 동반자가 되기를 갈망해봅시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27Nov

    연중 34주 목요일-신앙인이라면

      일사후퇴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의 난리가 그만큼 대단하다는 표현입니다. 같은 식으로 말하면 일사후퇴 때 난리는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예루살렘의 난리에 비하면 난리도 아닙니다.   그런데 일사후퇴 때 난리는 난리...
    Date2014.11.2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873
    Read More
  2. No Image 26Nov

    연중 34주 수요일-명심하는 오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주겠다.”   주님의 이 말씀이 저에게는 이렇게 나뉘어 들립니다. “너희는 명심하여라.” “너희는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
    Date2014.11.26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713
    Read More
  3. No Image 25Nov

    연중 34주 화요일-매이지 마라, 속지 마라.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이 아름다운 성전에 대해 찬탄을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에 대해 초를 치듯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그러자 사람들은 놀...
    Date2014.11.25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701
    Read More
  4. No Image 24Nov

    연중 34주 월요일-다 바쳐서 다 받는 자의 행복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다.”   오늘 복음을 삐딱한 시선으로 보면 주님께서 과부를 칭찬하시는 것을 삐딱하게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과부의 봉헌이 그리 대단한 게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부자...
    Date2014.11.24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544
    Read More
  5. No Image 23Nov

    그리스도 왕 대축일-우리를 형제라 하시는 주님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내게 해 준 것이다.’”     오늘 이 축일을 지내는 것의 의미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리의 주님을 임금이시라고 하는 것을 어떻...
    Date2014.11.23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644
    Read More
  6. No Image 22Nov

    연중 33주 토요일-영원한 현재를 사는 삶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시간을 사는 네 부류가 있습니다. 과거를 사는 사람. 미래를 사는 사람. 현재를 사는 사람. 영원을 사는 사람.   과거를 사는 것...
    Date2014.11.22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569
    Read More
  7. No Image 21Nov

    성모 자헌 축일-희생을 봉헌하는 사랑

    오늘의 성모 자헌 축일은 두 가지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봉헌 축일과 깊은 관련이 있고, 다른 하나는 성모님의 원죄 없는 잉태 축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마리아의 축일들이 예수님 축일과 병행하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
    Date2014.11.21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2189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900 901 902 903 904 905 906 907 908 909 ... 1317 Next ›
/ 1317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