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
오늘 복음은 주님께서 안 계실 때 제자들이 벙어리 영을 쫓아내지 못하자
제자들과 아이 아버지 사이에 실랑이가 일어난 것으로 시작됩니다.
제자들이 실패하자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께 아이를 데려와
“하실 수 있으면” 악령을 쫓아내 주십사고 청합니다.
“하실 수 있으면”이라는 조건을 붙여 청한 것은 아마
제자들이 실패했으니 그 스승도 그렇지 않을까 의구심도 있지만
스승은 그래도 낫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어서 이렇게 청했을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 어정쩡한 믿음을 나무라자 아이의 아버지는
자신의 믿음이 부족함을 겸손하게 인정한 다음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라고 청합니다.
이것을 보면 병의 치유건 악령의 퇴치건 이런 것을 청하기에 앞서
우리는 믿음이 없거나 부족한 나를 고쳐달라고 청해야 합니다.
병의 치유에 앞서 불신의 치유가 이뤄져야 한다는 거지요.
사실 불신이 치유되면 다른 것은 저절로 되는 겁니다.
이렇게 아이 아버지의 믿음을 강화하신 주님께서는
아이에게서 벙어리 영을 쫓아내주십니다.
이것을 본 제자들은 무척이나 머쓱해졌겠지요.
그러면서 다른 한 편 생각하게 되었겠지요.
무엇이 부족해 악령을 쫓아내지 못했을까?
그래서 따로 주님께 그 이유를 여쭙자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님께서는 대답하십니다.
사실 어떤 일이건 기도하지 않고 하면
그 일은 인간적인 일이 되고 인간적인 결말이 나고 말 겁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일, 성사聖事가 되지 못한다는 말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하건 기도를 하고 해야 합니다.
그 일에 하느님께서 함께 계셔주시기를 기도하고,
그 일이 하느님 뜻에 맞는 일이 되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뜻을 담은 가장 짧은 기도가 성호경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밥을 먹을 때도 성호경과 함께,
집을 나설 때도 성호경과 함께,
운동 경기를 시작할 때도 성호경과 함께 합니다.
그런데 이런 작은 일을 할 때도 기도와 함께 해야 하는데
치유나 악령퇴치와 같은 일을 할 때는 얼마나 더 기도해야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이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믿지 않으면 환자는 치유되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면 의사는 치유할 수 없습니다.
무당조차도 이런 형식을 밟습니다.
단골이 찾아와 무당에게 뭔가를 청하면
접신을 하지 않고는 무당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무당도 접신을 하지 않으면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 접신을 위해 무당이 하는 것이 굿이며,
무당은 접신을 통해 자기의 신으로부터 치유의 능력을 받게 되고,
단골은 무당을 믿어야 무당을 통해 그 치유의 힘을 전해 받습니다.
어제는 서울에서 젊은이들이 저를 만나러 왔다 갔습니다.
인사를 온다기에 이왕이면 와서 주일 미사를 봉헌하라고 했지요.
그런데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라 보통 12시나 되어야 일어나는데
주일 수도원 미사는 9시이니 이 초대가 그리 달가운 것은 아니었지요.
아무튼 미사를 같이 하고 돌아갈 때 그들은 Healing을 받고 간다는 거예요.
요즘 Healing이라는 말이 유행이고, 여기저기서 Healing을 한다고 합니다.
너도나도 이렇게 Healing을 한다는데 우리는 영적인 치유를 해야겠지요.
그리고 그 영적치유가 일어나기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 기도를 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