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깨달으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우리에게 깨달으라고 하시니
오늘은 깨닫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 알아보고자 합니다.
깨닫는 것은 아는 것과 밀접히 관련이 있습니다.
깨달아 안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깨닫는다는 것은 모르던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닫고 난 뒤에 처음 나오는 말은 대개
“아! 바보처럼 왜 내가 그것을 몰랐지?”라는 과거의 무지나
어리석음에 대한 뉘우침이나 아쉬움 같은 것이 동반됩니다.
이것이 그저 아는 것과 깨달음과의 차이입니다.
아는 것이 그저 무엇을 아는 것일 뿐이라면
깨닫는 것은 과거의 무지를 알게 된 것이고
과거의 자기가 얼마나 어리석었음까지 알게 되는 것으로서
거기에 따른 인정과 뉘우침이 있어야 하니
깨닫는 것이 아는 것보다 쉽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는 것이 지적인 작업의 결과이고 지식의 습득이라면
깨달음은 생활적이고 전 존재적인 작업의 결과로 지혜를 얻는 것이니
깨닫는 것이 아는 것보다 쉽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깨닫는 것이 아는 것보다 더 어려운 진짜 이유가 있습니다.
아는 것이 모르던 것을 그저 새로이 아는 것이라면
깨닫는 것은 진리와 삶의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이고,
진리와 삶의 진실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
진리를 따라 살고 삶을 진실하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다시 말해서 진리와 삶의 진실을 깨달은 이상
더 이상 과거처럼 어리석게 거짓을 따라 살지 않고
진리를 따라 진실하게 사는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하기에 어렵습니다.
그것을 다르게 말하면 회개가 이뤄져야 하는 것이기에 어렵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잘못 살았음을 깨달았다면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깨달아야 깨달음이 완성되는 것이고,
이제부터 이렇게 살아야겠다고 결심까지 해야 깨달음이 더욱 완성되겠지요.
헌데 오늘 주님은 당신의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고 하십니다.
다른 말들에서는 아무런 깨달음이 없어도
주님의 말씀에서는 우리가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는 것인데,
주님 자신이 진리이시고 그 말씀도 진리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진리이신 분이 말씀하시길
밖에서 우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럽지 않고
우리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다고 하십니다.
우리 밖에 있는 것, 곧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들은 선입니다.
우리도 어렸을 때는 깨끗하였고 선했습니다.
그러다가 자아의식이 생기면서 우리가 악하게 되었고
악한 우리가 하느님의 선을 악으로 바꾸기 시작하였습니다.
소는 물을 먹어서 젖을 만들지만
뱀은 같은 물을 먹어서 독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소는 무엇을 먹어도 남을 이롭게 하는 젖을 만들어내지만
뱀은 무엇을 먹어도 남을 해치는 독을 만든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자기중심적일 때 탐욕, 교만, 미움, 분노, 시기, 질투 등
온갖 악한 감정들이 우리 안에서 생기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 악의 탓이 종종 밖이나 남에게 있다고 탓을 남에게 돌리는데
그렇지 않고 자기중심성에 있다는 주님 말씀을 오늘 잘 깨달아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