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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의 우정 3 그리스도가 다시 태어나는 자리

 

프란치스코가 말하는 원수 사랑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나에게 가해진 상처만 바라보는 데서 그 죄가 상대 자신에게 가져온 상처까지 바라볼 수 있는 시선입니다. “저 사람이 나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가?”에서 “저 사람은 자기 안의 어둠으로 얼마나 가난해져 있는가?”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죄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죄와 사람을 구별하는 자비의 눈입니다. 십자가의 예수님께서는 죄를 선이라고 하지 않으셨지만 죄인을 포기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보답할 수 없는 사람 앞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건강하고 유능하며 나에게 친절한 사람을 사랑하기는 비교적 쉽습니다. 그러나 병들고 늙고 반복해서 도움을 필요로 하며, 내가 베푼 사랑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감사조차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 앞에서 사랑은 다른 차원으로 들어갑니다. 그때 우리는 질문받습니다. “나는 이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해주기 때문에 사랑하는가, 아니면 그가 존재하기 때문에 사랑하는가?”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유용하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생산적이거나 성공했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존재 자체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돌려줄 수 없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 방식에 가장 가까이 가는 길입니다. 여기에서 사람을 기능과 효율로 바라보는 도구적 시선이 죽고, 한 사람의 고유한 존재 자체를 기뻐하는 형제성이 태어납니다.

 

이 모든 관계의 현장은 결국 우리를 작은 순교로 초대합니다. 프란치스코가 말한 순교의 정신은 반드시 피를 흘리는 죽음으로만 이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 때문에 자기중심성이 죽는 매 순간이 일상의 작은 순교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먼저 사과하는 것, 말할 수 있지만 사랑 때문에 잠시 침묵하는 것, 지쳤지만 아픈 형제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주는 것, 내가 인정받고 싶지만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 상처받았지만 복수를 선택하지 않는 것, 상대가 당장 변하지 않아도 기다리는 것,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욕망을 내려놓는 것, 이런 작은 죽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우리의 일상을 연결합니다.

 

여기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고통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교적 사랑은 부당한 폭력과 학대를 무조건 견디라고 요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십자가는 고통을 찾아가는 일이 아니라 사랑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때로 감당하게 되는 사랑의 대가입니다. 예수님께서 고통 자체를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사랑하고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 사랑에서 도망치지 않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작은 순교 역시 자기 파괴가 아니라 자기중심성의 죽음이며, 거짓 자아에서 자유로워져 더 깊이 사랑할 수 있게 되는 파스카의 길입니다.

 

작은 죽음 뒤에는 작은 부활이 따라옵니다. 내가 옳음을 내려놓았더니 관계가 조금 살아나고, 인정받으려는 욕망을 놓았더니 마음이 자유로워지며, 상대를 통제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았더니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용서했더니 과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가 더 이상 나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내가 조금 죽었는데 오히려 더 넓은 내가 살아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는 신비입니다. 프란치스코에게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마음과 몸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거룩한 행실로 그분을 세상에 낳는 것입니다. 말씀이 마리아의 몸 안에서 육화하셨듯이 이제 그 말씀은 우리의 몸과 관계 안에서 다시 육화되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관계 안에서 다시 태어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내가 형제를 용서할 때 그리스도가 태어납니다. 나보다 다른 사람이 빛나는 것을 기뻐할 때 그리스도가 태어납니다. 나에게 아무것도 돌려줄 수 없는 사람 곁에 머물 때 그리스도가 태어납니다. 공동체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조용히 할 때 그리스도가 태어납니다. 판단하기 전에 한 번 더 들을 때, 내 계획보다 형제의 필요를 먼저 바라볼 때, 서운하면서도 관계의 문을 완전히 닫지 않을 때,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하느님의 자비에 맡겨드릴 때 그리스도가 태어납니다.

 

반대로 내가 내 자존심과 옳음과 인정 욕구로 가득 차 있을 때에는 그리스도가 태어날 공간이 좁아집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가난이 필요합니다. 프란치스칸의 가난은 단지 가진 물건이 적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반드시 옳아야 한다”는 소유,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야 한다”는 소유, “모든 것이 내 계획대로 되어야 한다”는 소유, 심지어 “저 사람은 반드시 변해야 한다”는 요구까지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 비워진 자리가 그리스도의 탄생 자리가 됩니다.

 

프란치스칸 기도에서 관상과 형제성은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깊이 바라볼수록 사람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에게 더 가까이 가게 됩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깊이 경험할수록 형제의 약함에 조금 더 자비로워지고, 십자가의 가난을 바라볼수록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는 욕망에서 자유로워지며, 그리스도의 자기 내어줌을 관상할수록 나의 관계 안에서도 나 자신을 조금 더 내어줄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프란치스코가 술탄을 만나러 갔던 사건도 그리스도와의 우정이 관계로 확장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신과 다른 사람, 심지어 당시의 적대적 경계 너머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다가가 그의 삶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프란치스코가 십자가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넘어서는 사랑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의 결합이 깊어질수록 관계의 경계는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 넓어집니다. 하느님을 더 사랑하게 될수록 “우리”의 범위가 더 넓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직도 관상의 결과로 뒤늦게 따라오는 별개의 일이 아닙니다. 형제에게 다가가고, 상처 입은 사람 곁에 머물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서로 다른 사람 사이에 평화를 만들며, 피조물을 형제자매로 받아들이는 바로 그 행위가 관상의 계속입니다. 같은 성령께서 우리를 성부와 성자에게 결합시키시고, 그 사랑의 성령께서 다시 우리를 형제와 세상과 피조물에게 결합시키시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칸 기도의 여정은 결국 하나의 단순한 흐름으로 모입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그리스도와 결합하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마침내 우리가 사랑하는 그리스도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정배로서 우리는 사랑을 받아들입니다. 형제로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아버지의 뜻을 살아갑니다. 어머니로서 우리는 그 사랑을 우리의 몸과 행실과 관계 안에서 세상에 낳습니다. 이 길은 길에서 길을 만나 길이 되어가는 여정이며 마침내 나에게서 내가 해방되는 자유의 길입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은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주님의 영이십니다. 우리가 자신의 힘만으로 원수를 사랑하고, 인정 욕구를 내려놓고, 다른 사람이 빛나는 것을 기뻐하며, 상처를 통과하여 용서하고, 보답할 수 없는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주님의 영과 그 영의 거룩한 활동”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의 우정은 우리의 의지력으로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일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화시키시도록 자신을 내어드리는 일입니다.

 

순종은 억지로 나를 꺾는 일이 아니라 사랑이 나를 움직이도록 허용하는 일이 됩니다. 가난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위하여 아무것도 자기 것으로 움켜쥐지 않는 자유가 됩니다. 겸손은 자신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자유가 됩니다. 형제성은 좋은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 나에게 아무것도 돌려줄 수 없는 사람 안에서도 하느님의 형상을 발견하는 눈이 됩니다. 그리고 기도는 삶에서 벗어나 하느님께 올라가는 시간이 아니라 바로 그 관계 안에서 그리스도가 육화되도록 나 자신을 내어드리는 시간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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