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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뼈가 살아나는 이야기와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

 

에제키엘 37장의 마른 뼈가 살아나는 이야기는 뼈들이 스스로 살아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생명은 언제나 밖에서, 위에서, 관계를 통하여 불어옵니다. 마른 뼈는 단순히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자기 힘으로 자신을 회복시킬 수 없는 인간의 자리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곳이 하느님의 창조가 다시 시작되는 자리가 됩니다. 창세기의 첫 인간에게 숨을 불어넣으셨던 그 숨결이, 모든 것이 끝났다고 여겨지는 골짜기에서 다시 불어옵니다. 성경의 하느님은 폐허를 피해 다른 곳에서 시작하시는 분이 아니라, 바로 폐허 한가운데에서 새 창조를 시작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묵상을 프란치스칸적으로 읽으면 더욱 깊어집니다. 프란치스코가 말한 주님의 영과 그 영의 거룩한 활동을 지니는 것은 결국 내 힘으로 살아내려는 삶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숨이 나를 통하여 숨 쉬도록 자신을 내어드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강해져서 다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해진 나의 빈자리로 그분의 숨이 들어와 나를 다시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숨은 한 사람만 살리지 않습니다. 흩어졌던 뼈들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몸을 이루듯, 관계를 회복시키는 숨입니다. 하느님의 영이 임하는 곳에서는 나만 살아나는 기적이 아니라, 흩어진 우리가 다시 서로의 형제와 자매가 되는 기적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이 글의 중심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내가 다시 살아나는 것은 내가 강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가장 가난해진 나의 자리에서 하느님께서 다시 숨 쉬기 시작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숨결이 마침내 우리 안에서만 머물지 않고 다른 이에게 흘러갈 때, 우리는 생기를 받은 사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누군가의 메마른 골짜기에 하느님의 숨결이 지나가도록 자신을 내어드리는 도구적 존재가 됩니다. 어쩌면 이것이 기도하는 사람을 넘어 기도가 된 사람의 모습일 것입니다.

 

에제키엘 37장의 마른 뼈의 이야기와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에 비추어 보면, 두 계명은 단순히 우리가 지켜야 할 윤리적 명령이 아니라 하느님의 생명을 받아 그 생명을 이웃에게 흘려보내는 하나의 생명의 순환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첫째 계명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여라.”라고 하시고, 둘째 계명을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라고 하십니다(마태 22,37-39). 그리고 이 두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고 하십니다(마르 12,31).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두 사랑을 따로 떼어놓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로 향하는 사랑과 이웃에게로 향하는 사랑은 하나의 숨결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숨을 들이마시는 사랑, 숨을 내쉬는 사랑, 에제키엘의 골짜기에 흩어진 마른 뼈들은 스스로 살아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살아야 한다고 명령해도 뼈는 스스로 생명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바람이 불어와야 하고, 창조 때의 숨이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첫째 계명은 생명의 숨을 받아들이는 사랑입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여라는 말씀은 내 힘을 짜내어 하느님께 사랑을 증명하라는 명령이라기보다, 먼저 나를 사랑하시고 나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는 하느님께 마음을 열라는 초대입니다. 내가 사랑의 근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사랑하셨기에 우리가 사랑할 수 있다는 진실입니다.

 

그렇다면 둘째 계명은 받은 숨을 다시 내어놓는 사랑입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하느님에게서 받은 생명이 나에게서 멈추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용서받았기에 용서하고, 받아들여졌기에 받아들이며, 기다림을 받았기에 기다려 주고, 자비를 입었기에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 사이에는 하나의 거룩한 호흡이 있습니다. 하느님에게서 숨을 받아들이는 것이 첫째 계명이라면, 그 숨을 형제에게 내어주는 것이 둘째 계명입니다. 들이쉬기만 하고 내쉬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듯이, 하느님 사랑만을 말하면서 이웃에게 그 사랑이 흘러가지 않는다면 신앙은 숨을 잃습니다. 반대로 하느님의 사랑에서 생명을 공급받지 않은 채 자신의 힘만으로 이웃을 사랑하려 한다면 언젠가는 지치고 메말라 버립니다.

 

마른 뼈가 한 몸이 되는 기적

에제키엘의 환상에서 더욱 의미 깊은 것은 마른 뼈 하나하나가 따로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뼈와 뼈가 서로 맞붙고”, 힘줄과 살이 생기며, 마침내 하나의 큰 공동체가 일어섭니다. 이것이 둘째 계명의 아름다움입니다. 성령께서는 단순히 나를 살리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다시 연결하시는 분입니다. 내가 살아나는 것만으로는 하느님의 구원이 완성되지 않습니다. 나와 너 사이에 끊어진 관계가 다시 이어지고, 내가 외면했던 사람이 다시 형제가 되며, 판단했던 사람을 다시 바라보고, 상처를 주고받아 멀어진 사람들이 조금씩 서로에게 다가설 때 마른 뼈들이 맞붙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둘째 계명의 이웃을 사랑하여라는 말씀은 단순히 착하게 살라는 도덕적 요청이 아닙니다. “네가 받은 나의 숨을 그 사람에게도 흘려보내라.” 라는 하느님의 초대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프란치스칸 영성의 가난이 중요해집니다. 내가 사랑의 주인이 되려고 하면 사랑마저 소유하게 됩니다. “내가 너를 사랑해 주었다”, “내가 용서했다”, “내가 희생했다는 의식이 커지면서 사랑 속에 자아가 다시 들어섭니다. 그러나 내적 가난은 고백입니다. “이 사랑은 내 것이 아닙니다. 나 역시 받은 사람입니다.” 내가 용서할 수 있었다면 먼저 용서받았기 때문이고, 누군가를 품을 수 있었다면 내가 먼저 품어졌기 때문이며, 누군가에게 생명의 숨이 되어줄 수 있었다면 먼저 하느님께서 마른 뼈와 같았던 나에게 숨을 불어넣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은 사랑의 소유자가 아니라 사랑의 도구요 통로가 됩니다. 하느님 형제 다시 공동체로 흐르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도구적 존재의 의미도 선명해집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생명이 나를 지나 그 사람에게 흘러가도록 허용하는 것, 이것이 도구적 존재의 사랑입니다.

 

결국 에제키엘의 마른 뼈와 두 계명은 하나의 영적 여정으로 이어집니다. 마른 뼈였던 내가 하느님의 숨을 받아 살아나는 것이 첫째 계명의 은총이고, 내가 받은 그 숨을 이웃에게 내어주어 함께 살아나는 것이 둘째 계명의 완성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나와 너 사이에 하느님의 숨이 자유롭게 오갈 때, 흩어진 뼈들은 다시 하나의 몸이 되고 우리는 서로에게 생명의 자리가 됩니다.

 

주님, 당신의 숨을 깊이 받아들이게 하시고, 제가 만나는 모든 이에게 그 숨을 다시 내어놓게 하소서. 제가 사랑의 주인이 아니라 당신 사랑이 지나가는 길이 되게 하시고, 마른 뼈와 같은 우리 관계들 사이로 당신의 영이 불어와 나만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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