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답게 피는 육화의 꽃
프란치스칸 영성의 핵심은 기도가 단순히 마음을 위로하는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육화의 신비가 오늘 우리의 삶 안에서 계속 일어나도록 허용하는 존재 방식이라는 데 있습니다. 그 기도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시키고,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보이는 형태를 갖도록 만듭니다.
프란치스칸 기도를 충만히 살아간다는 것은 단지 오래 무릎을 꿇거나 많은 기도문을 암송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 존재 안에서 육화의 신비를 다시 이루시도록 우리 자신을 온전히 내어드리는 삶입니다. 기도는 우리를 하느님께 데려가는 사다리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서 당신의 생명을 살아내시는 자리이며,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의 몸과 마음과 관계 안에서 다시 육체를 입는 신비로운 사건입니다.
참된 기도는 반드시 사람의 마음을 뜨겁게 만듭니다. 그것은 감정의 흥분이 아니라 사랑의 불입니다. 이 불은 자신의 성공과 실패만을 계산하던 마음을 형제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살아가는 마음으로 변화시키고, 자신의 안전만을 지키던 손을 누군가를 붙들어 일으키는 손으로 바꾸며, 판단하고 단죄하던 눈을 상처 입은 존재의 아픔을 먼저 바라보는 눈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기도는 사람을 착하게 만드는 정도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기도는 사람을 사랑 자체가 되게 합니다.
이렇게 변화된 사람의 몸은 더 이상 자기만을 위한 몸이 아닙니다. 그 몸은 그리스도의 몸이 됩니다. 그의 발걸음은 평화를 심는 발걸음이 되고, 그의 손은 용서를 건네는 손이 되며, 그의 입술은 생명을 살리는 언어가 되고, 그의 눈물은 다른 이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는 자비의 샘이 됩니다. 그의 삶 전체가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살아 있는 성사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프란치스칸 기도의 불길이 시작됩니다. 그것은 세상을 태워 없애는 불이 아니라, 얼어붙은 인간의 마음을 녹이는 불이며, 미움과 폭력을 평화로 변화시키는 불이고, 차별을 형제애로 바꾸는 불이며, 절망을 희망으로 밝히는 빛입니다. 이 불은 정의를 외치는 목소리가 되고,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가 되며, 갈라진 공동체를 다시 이어 주는 화해의 능력이 됩니다. 성 프란치스코가 평화의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 불이 그의 심장을 먼저 태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고통받는 인간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그는 상처를 보면 이유를 묻기보다 먼저 다가가고, 눈물을 보면 해결책보다 먼저 함께 울며, 외로운 이를 보면 충고하기보다 곁에 머무르는 법을 배웁니다. 그에게 연민은 감정이 아니라 존재 방식입니다. 그는 사람을 고쳐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함께 사랑받는 형제자매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그의 사랑은 계산하지 않고, 기다려 주며, 끝까지 희망하기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프란치스칸 기도는 또한 모든 피조물을 새롭게 바라보게 합니다. 새들의 노래는 창조주의 찬미가 되고, 이름 없는 들꽃은 하느님의 미소가 되며, 작은 벌레 하나도 생명의 신비를 노래하는 형제가 됩니다. 산과 강과 바람과 햇빛은 더 이상 인간이 소비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하느님을 찬양하는 형제요 자매입니다. 피조물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을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감상이 아니라, 모든 존재 안에 흘러가는 창조주의 선하심을 알아보는 영적인 시선입니다.
이 모든 것은 육화의 신비에서 시작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셨기에 인간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무한하신 분이 유한한 존재 안으로 들어오셨고, 영원하신 분이 시간 안으로 걸어 들어오셨으며, 전능하신 분이 가장 작은 아기의 연약함을 선택하셨습니다. 프란치스칸 영성은 바로 이 내려오심을 가장 깊은 하느님의 자기 계시로 이해합니다. 그러므로 기도란 하느님의 이 겸손한 내려오심을 오늘 우리의 삶 안에서 계속 살아내는 일입니다.
인간이 되신 신비는 결국 갈망의 신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먼저 인간을 갈망하셨고, 그 갈망 때문에 인간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는 그 갈망에 응답하도록 창조된 깊은 목마름이 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것들을 원하지만, 그 모든 갈망의 가장 깊은 뿌리에는 하느님을 향한 갈망이 숨 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성공을 통해, 소유를 통해, 인정과 권력을 통해 그 갈망을 채우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허기를 채워 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은 하느님으로부터 왔으며, 다시 하느님 안에서만 안식을 얻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바로 그 갈망을 가장 순수하게 하느님께 돌려드리는 행위입니다. 기도할수록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를 조금씩 알게 됩니다. 세상이 붙여 준 이름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처음부터 불러 주신 이름을 듣게 되고, 내가 무엇을 소유했는가보다 누구를 사랑하도록 창조되었는가를 배우게 됩니다. 우리의 참된 정체성은 경쟁에서 이긴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흘려보내는 사람이며, 자신의 왕국을 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가 오도록 자신을 내어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행복은 어떤 조건이 완성될 때 찾아오는 결과가 아닙니다. 행복은 하느님 안에서 자신의 참된 존재를 발견하는 순간 이미 시작됩니다. 하느님 안에서 우리는 사랑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으며, 용서받았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고,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다른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이때 우리의 삶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투쟁이 아니라, 이미 받은 사랑을 세상으로 흘려보내는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프란치스칸 기도의 완성은 여기에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기도하는 사람 안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 우리의 손은 그리스도의 손이 되며, 우리의 눈은 그리스도의 자비가 되고, 우리의 발은 평화를 전하는 발걸음이 됩니다. 그리하여 세상은 한 사람의 기도를 통하여 다시 육화하시는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것이 프란치스칸 기도가 품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혁명이며, 오늘도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계속 이루고 계시는 살아 있는 복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