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육화된 얼굴에 피는 꽃
육화는 하느님께서 하늘 높은 곳에만 머무르지 않으시고 사람의 몸을 입어 우리 가운데로 걸어 들어오신 사랑의 사건입니다. 그 순간부터 세상은 더 이상 하느님이 부재한 공간이 아니라, 그분의 현존이 숨 쉬는 거룩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가난한 이의 얼굴에서도, 병든 이의 신음에서도, 어린아이의 웃음에서도, 형제의 눈물에서도, 들꽃과 새와 바람과 햇살에서도 하느님은 당신 자신을 조용히 드러내십니다. 프란치스칸의 복음적 삶은 바로 그 숨어 계시는 하느님을 일상의 가장 평범한 자리에서 발견하는 삶이며, 모든 피조물을 형제자매로 맞아들이는 사랑의 눈을 회복하는 삶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께 무엇을 청하는 시간 이전에, 사랑하는 분을 오래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오래 바라보는 것을 닮아갑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시간이 깊어질수록 우리의 눈은 그분의 눈을 닮고, 우리의 마음은 그분의 자비를 닮으며, 우리의 손은 그분의 손길을 닮아 갑니다. 기도는 하느님을 변화시키는 힘이 아니라 우리를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빚어 가시는 성령의 가장 조용한 역사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언제나 복음을 살아낼 수 있는 생명의 에너지가 됩니다.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삶을 기억하는 데 머무르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 움직이시도록 자신을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나의 말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위로가 흘러가고, 나의 손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자비가 전해지며, 나의 발걸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평화가 세상 속으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말씀이 다시 우리의 삶을 입고 세상 안에 육화되는 것, 바로 그것이 복음적 삶의 가장 깊은 의미입니다.
성녀 글라라는 "바라보고, 깊이 생각하고, 관상하고, 본받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바라본다는 것은 사랑의 눈을 배우는 일입니다.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모든 사건을 복음의 빛으로 다시 읽는 일입니다. 관상한다는 것은 사랑 안에 오래 머무르며 하느님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그리고 본받는다는 것은 결국 형제를 향하여 걸어가는 것입니다. 기도는 언제나 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기도는 인간의 갈망이면서 동시에 하느님의 갈망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찾기 전에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고, 우리가 사랑하기 전에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으며, 우리가 문을 두드리기 전에 이미 우리 마음의 문 앞에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멀리 계신 하느님께 올라가는 길이 아니라,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중심에서 이미 숨 쉬고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알아차리는 깨어 있음입니다. 기도는 언제나 먼저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초대에 응답하는 자유로운 사랑의 행위입니다.
하느님은 결코 사랑을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서로를 온전히 내어주시면서도 서로를 지배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끝까지 자유롭게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칸의 내적 가난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삶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머무르실 자리를 마련하기 위하여 자신의 욕심과 고집과 자기 의지를 비우는 삶입니다. 자신을 비울수록 하느님의 생명은 더 넓게 흐르고, 자신의 손을 펼칠수록 하느님의 사랑은 더 멀리 흘러갑니다.
영적 갈망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욕망이 아닙니다. 하느님과 더 깊이 하나 되고 싶은 사랑의 목마름입니다. 더 높이 오르려는 열망이 아니라 더 깊이 내려가 그리스도를 만나려는 갈망입니다. 더 많은 일을 이루려는 열심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이 나를 통하여 한 사람에게라도 흘러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러한 갈망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 심어 주시는 생명의 불꽃이며, 우리의 삶을 끊임없이 복음으로 이끌어 가는 힘입니다.
기도는 관계를 변화시키는 힘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사람과의 관계도 새로워집니다. 용서하지 못하던 사람이 용서를 배우고, 기다리지 못하던 사람이 기다림을 배우며, 비교하던 사람이 함께 기뻐하는 법을 배우고, 경쟁하던 사람이 형제가 되는 기쁨을 배웁니다. 하느님과의 관계는 언제나 사람과 피조물과의 관계 안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그것이 육화의 영성이며 프란치스칸 기도의 가장 아름다운 결실입니다.
복음적 삶은 특별한 사람만이 살아가는 삶이 아닙니다. 오늘 한 사람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일, 상처 입은 이를 기다려 주는 일, 먼저 손을 내미는 일, 이름 없이 선을 행하는 일, 피조물을 존중하며 감사하는 일, 하루를 사랑으로 살아 내는 일 속에서 복음은 다시 육화됩니다. 그렇게 우리의 일상은 하느님의 현존이 머무는 성전이 되고, 우리의 삶은 세상 속을 걸어가시는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몸이 됩니다.
프란치스칸에게 기도는 삶을 떠나는 시간이 아니라 삶을 더욱 깊이 살아가는 시간입니다. 기도 안에서 받은 사랑은 삶 안에서 형제애가 되고, 관상 안에서 받은 평화는 세상 안에서 화해가 되며, 하느님께 대한 갈망은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흘러갑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존재는 날마다 조금씩 그리스도를 닮아 가고, 우리의 삶은 복음을 설명하는 말이 아니라 복음을 살아내는 증언이 됩니다. 이것이 육화의 신비에 참여하는 복음적 삶이며, 하느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통하여 세상 안을 걸어가시는 가장 아름다운 기적입니다. 기도는 육화된 얼굴에 피는 가장 아름다운 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