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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할 수 없는 두 나라에서 (2026, 6, 11 복음 묵상)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태 10,8)

이 말씀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은총, 사랑, 그리고 치유의 능력은 인간이 노력해서 대가로 얻은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타인을 도울 때나 복음을 전할 때 어떠한 보상이나 대가도 바라지 말고, 순수한 사랑과 자비의 마음으로 아낌없이 나누라는 뜻입니다. 복음은 말합니다. "네가 받은 것이 모두 선물이라면, 너도 선물처럼 살아라." 프란치스칸의 내적 가난은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 나는 소유자가 아니라 관리인이고, 주인이 아니라 전달자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건네는 친절과 관심과 사랑은 사실 내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잠시 맡겨 두신 선물입니다. 우리가 거저 줄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조용히 들어 주는 귀, 기다려 주는 견딤, 실수한 사람을 향한 용서, 외로운 이를 향한 따뜻한 눈빛, 병든 이를 위한 기도. 이것들은 돈으로 살 수 없지만 세상을 살리는 가장 귀한 선물들입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우리는 흔히 자신이 가진 것을 자신의 노력과 능력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의 삶은 온통 선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생명도 거저 받았습니다. 햇빛도 거저 받았습니다. 숨 쉬는 공기도 거저 받았습니다. 누군가의 미소와 위로도 거저 받았습니다. 용서받은 경험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기회도, 상처를 견딜 힘도 거저 받았습니다.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마태 10,9)

이 말씀 또한 선교의 길을 떠날 때 물질적인 것에 의지하지 말라는 강력한 무소유의 권고입니다. 여정의 안전을 돈이나 식량에 의탁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느님의 섭리와 이웃의 환대에 의탁하라는 신뢰의 요청이기도 합니다.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예수님께서 돈 자체를 미워하신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 의지하는 마음입니다. 사람은 언제나 무언가를 붙잡고 살고 싶어 합니다. 재산을 붙잡고, 명예를 붙잡고, 관계를 붙잡고, 자신의 생각과 계획까지 붙잡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는 붙잡음이 아니라 맡김에서 시작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가진 것을 내려놓음으로써 비로소 세상이 하느님의 선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내적 가난은 아무것도 갖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아무것에도 사로잡히지 않는 자유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은 적게 가진 사람이 아니라, 많이 소유해도 그것에 묶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도 이 말씀은 매우 구체적으로 다가옵니다. 내 계획이 무너질 때도, 내가 기대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도,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 주지 않을 때도, "주님, 저는 여전히 당신을 신뢰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복음의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 집에 들어가면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마태 10,12)

예수 께서는 이 말씀으로 제자들이 세상에 전해야 할 가장 큰 선물이 바로 '평화'임을 알려주십니다. 그리스도인이 가는 곳에는 갈등이나 분열이 아니라, 하느님이 주시는 참된 평화와 안녕이 깃들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만약 그 집이 평화를 받을 자격이 없다면, 그 평화는 다시 전한 이에게로 돌아올 것이라고 성경은 덧붙입니다. 그 집에 들어가면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첫 번째 선교 도구는 설교가 아니었습니다. 평화였습니다. 평화는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평화는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깊은 신뢰에서 오는 내적 안정입니다. 그래서 평화로운 사람은 어디를 가든 평화를 가져갑니다. 가정에서는 다투는 사람들 사이에 다리가 되고, 공동체에서는 소외된 사람을 품어 주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상처를 치유하는 말을 건네고, 낯선 이를 만나도 먼저 미소를 건넵니다. 평화는 존재의 향기입니다. 성 프란치스코가 늘 인사했던 말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그는 평화를 말하기 전에 먼저 평화로운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우리의 말을 듣기 전에 우리의 마음을 읽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들은 단순히 선교 여행의 지침이 아니라, 프란치스칸 영성의 핵심을 이루는 세 가지 길을 보여 줍니다. 그것은 거저 받음의 길, 비움의 길, 평화의 길입니다. 공존할 수 없는 두 나라, 곧 말씀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하느님 나라와 내가 통치하는 내왕국 보여주신 말씀은 신앙의 가장 깊은 본질이자, 매일의 삶 속에서 마주하는 치열한 내면의 영적 전투를 꿰뚫어 보는 고백입니다. "하느님 나라""내 왕국"은 결코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갈 수 없는, 본질적으로 대립하는 두 세계관입니다.

 

내가 통치하는 내 왕국 이 왕국의 왕좌에는 '나 자신'이 앉아 있습니다. 그 나라에서는 나의 계획, 나의 욕심, 나의 판단이 기준이 됩니다. 성경의 표현을 빌리자면, 복음을 전하면서도 "전대에 금과 은"을 채워 넣고 싶어 하고, 내 힘과 물질을 신뢰하며 안전을 보장받으려는 마음이 지배하는 곳입니다. 그 결과는 내가 주인 노릇을 하려다 보니 늘 미래가 불안하고, 주변 사람이나 환경을 내 뜻대로 통제하려다 갈등과 집착이 생겨납니다. 외적으로는 평화를 말할지라도 내면은 늘 소란스럽습니다.

 

말씀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하느님 나라 이 나라의 왕좌에는 '하느님의 말씀'이 자리합니다. 이 나라의 특징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고, 전대에 아무것도 지니지 않으며, 만나는 이에게 평화를 비는 삶"이 실제로 일어나는 공간입니다. 내 계산과 방어벽을 내려놓고, 온전히 그분의 인도하심과 채워주심(섭리)에 나를 맡기는 자리입니다. 그 결과 내 손에 쥔 것이 없어도 하느님이 채우실 것을 믿기에 진정한 자유와 자족이 있습니다. 내 조건이 아니라 말씀이 내 안을 다스리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참된 평화가 흘러나옵니다. 두 왕국의 갈림길, '내려놓음' "거저 주라"는 말씀도,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는 말씀도, 결국 내 왕국의 영토를 넓히려는 움켜짐을 멈추고 하느님 나라의 통치 안으로 걸어 들어오라는 초대입니다. 내 왕국이 무너진 그 빈자리에만 비로소 하느님의 나라가 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내 안에서 끊임없이 고개를 드는 '내 왕국'의 욕심을 내려놓고, 잔잔히 들려오는 말씀의 통치에 기꺼이 순종하며 참된 평화의 길을 걷기를 응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는 단순히 죽은 뒤에 가는 장소가 아니라, 누가 내 삶의 왕좌에 앉아 있는가에 관한 문제입니다. 사실 하느님 나라와 내 왕국의 싸움은 거창한 곳에서 벌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가장 평범한 관계와 일상 속에서 매일 일어납니다. 아침에 계획이 틀어졌을 때, 누군가 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억울한 말을 들었을 때, 인정받지 못했을 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이 무시되었을 때, 그 순간 내 왕국의 왕이었던 자아가 고개를 듭니다. "왜 내 뜻대로 되지 않는가?" "왜 나를 존중하지 않는가?" "왜 내가 손해를 봐야 하는가?" 내 왕국은 끊임없이 자신을 중심에 놓으려 합니다. 그래서 늘 비교하고, 경쟁하고, 계산하고, 방어합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만나기보다 내 욕구를 채워 줄 존재로, 이용의 대상으로 바라봅니다. 그 결과 관계는 사랑의 공간이 아니라 힘겨루기의 공간이 됩니다.

 

반대로 하느님 나라는 말씀의 통치가 시작되는 곳입니다. "원수를 사랑하여라." "용서하여라." "남을 너 자신보다 낫게 여겨라." "첫째가 되려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라."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이 말씀들은 내 왕국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법입니다. 내 왕국은 움켜쥐라고 말하지만, 하느님 나라는 내어주라고 말합니다. 내 왕국은 높아지라고 말하지만, 하느님 나라는 내려가라고 말합니다. 내 왕국은 이기라고 말하지만, 하느님 나라는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프란치스칸 영성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빛납니다. 성 프란치스코에게 가난은 단순히 돈이 없는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 왕국을 포기하는 일이었습니다. 겸손도 자신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왕좌에서 내려오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칸 내적 가난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내 생각이 반드시 옳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내 계획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내가 인정받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하느님께서 더 좋은 길을 알고 계십니다." 이것은 패배가 아니라 자유입니다. 내 왕국을 지키려는 사람은 끊임없이 긴장하지만, 하느님 나라 안에 사는 사람은 맡길 수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와 내 왕국은 마치 한 마음 안에 자라는 두 나무와 같습니다. 하나는 자기중심성의 나무입니다. 비교와 경쟁과 두려움을 먹고 자랍니다. 다른 하나는 하느님 나라의 나무입니다. 신뢰와 감사와 사랑을 먹고 자랍니다. 우리가 무엇에 귀 기울이고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어느 나무는 자라고 어느 나무는 시들어 갑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한 윤리적 권고가 아니라 매일의 선택입니다. 누군가를 용서하고, 내 주장을 조금 내려놓고,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어 주고, 결과를 통제하려는 집착을 놓아버릴 때마다 내 왕국은 조금씩 작아지고 하느님 나라는 조금씩 넓어집니다. 결국 하느님 나라는 세상을 떠난 뒤에야 만나는 현실이 아니라, 내 안의 왕좌에서 내가 내려오고 말씀이 앉으시는 그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마음 깊은 곳에서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평화가 흘러나옵니다. 그 평화는 내가 모든 것을 가졌기 때문에 오는 평화가 아니라, 더 이상 내가 왕이 되려 하지 않을 때 찾아오는 평화입니다. 그것이 "전대에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는 말씀의 깊은 뜻이며, 프란치스코가 평생 걸어갔던 작음과 가난의 길이기도 합니다. 그 길 끝에서 우리는 마침내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주님, 이제는 제가 사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말씀이 제 안에서 살아갑니다. 제 왕국이 아니라 당신의 나라가 오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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