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안에서 발견하는 하느님의 거처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며 그들의 하느님이 되실 것이다.” (묵시록 21장 3절)
이 말씀은 성경 전체가 향해 가는 가장 깊은 약속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완성은 단순히 인간이 하늘로 올라가는 사건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간 가운데로 내려오셔서 함께 사시는 ‘관계의 완성’입니다. 묵시록의 마지막 환시는 두려운 심판의 그림보다 먼저 “함께 머무르시는 하느님”을 보여줍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멀리서 통치하는 분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고 사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핵심은 어딘가로 도망쳐 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과 관계 안에서 그분의 현존을 배우는 데 있습니다.
누군가의 아픔 곁에 머물러 주는 일, 외로운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일, 상처 입은 관계를 다시 품어 안는 일, 바로 그런 자리에서 하느님의 거처는 조금씩 세워집니다. 프란치스칸 영성은 이것을 아주 아름답게 이해했습니다. 하느님은 크고 화려한 곳보다 가난하고 비어 있는 마음 안에 머무르십니다. 자신을 비우고 낮아진 사람은 타인을 위한 공간이 되고, 그 빈자리 안으로 하느님의 숨결이 들어옵니다. 결국 구원이란 “하느님과 함께 사는 것”이며, 영원한 생명이란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는 죽음 이후에만 시작되는 먼 미래가 아니라, 오늘 우리 가운데 사랑이 다시 시작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이미 조용히 열리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느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 하느님의 거처는 먼 하늘 끝에 있지 않고 사람들 가운데 있습니다. 눈물 흘리는 이의 곁에, 말없이 견디는 이의 하루에, 서로를 위해 밥상을 차리는 손길에, 용서하지 못하면서도 다시 문을 여는 마음에 하느님께서는 조용히 거처하십니다. 그분은 사람을 떠나 홀로 영광받기를 원하지 않으시고, 사람들 사이에 머무르시며 우리의 관계를 당신 집으로 삼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완전한 사람이 된다는 뜻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 안에서도 함께 머물 줄 아는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사신다면, 우리도 서로에게 작은 거처가 되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