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도록 아름다운 은총과 고독의 이야기.
고독이 불러온 선율
백야처럼 잠들지 못하는 마음의 가장자리에서 고독은 아주 천천히 한 사람의 영혼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처음에는 그것이 슬픔인 줄만 알았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침묵, 아무리 가까운 사람 곁에서도 끝내 남겨지는 외로움, 붙잡을수록 멀어지는 시간들, 사랑했기에 더 깊어지는 상실의 그림자들, 그러나 오래 고독 안에 머물다 보면 슬픔은 어느 순간 낯선 아름다움의 얼굴로 변하기 시작한다. 마치 오래된 수도원의 새벽 종소리처럼 낮고 느린 단조의 선율 하나가 영혼의 가장 깊은 우물에서부터 조용히 울려 나온다. 그 선율은 세상의 환호처럼 시끄럽지 않다. 무언가를 이루었다고 자랑하지도 않는다. 다만 아주 오래전 잃어버린 원천의 기억을 흔들어 깨운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왜 이토록 사랑을 갈망하는가? 왜 사람의 마음은 끝없이 누군가를 그리워하도록 만들어졌는가? 고독은 그 질문들을 피해 가지 못하게 만든다. 낮에는 분주함 속에 숨어 있던 영혼이 밤이 되면 자기 존재의 빈 방 하나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빈자리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나는 안다. 세상에는 끝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이 있다는 것을, 너무 사랑했기에 더 외로워지는 밤, 너무 깊이 이해했기에 끝내 붙잡지 못하는 관계들, 마음은 가까워질수록 더 아프게 떨리는 현악기 같다는 것을
나는 문득 슬픔에도 향기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너무 깊은 슬픔은 오히려 사람을 맑게 만든다.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하고 사라지는 것들을 더 따뜻하게 바라보게 한다. 백야의 끝없는 여명 속에서 나는 오래된 상실들을 하나씩 꺼내어 가만히 가슴 위에 올려놓는다. 떠나간 사람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들, 붙잡으려 할수록 더 멀어지던 젊음과 사랑과 순간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상실들 덕분에 나는 조금 더 깊은 사람이 되어 간다.
슬픔은 사람을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더 넓은 침묵으로 데려간다.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안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지나가며 남기는 빛이라는 것을, 인생은 붙드는 일이 아니라 흐르는 강물 곁에 오래 앉아 있는 일이라는 것을, 인간의 슬픔 가장 깊은 곳에는 사실 하느님에 대한 그리움이 숨어 있다는 것을, 세상의 어떤 사랑도 완전히 채워 주지 못했던 허기, 아무리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던 외로움, 끝없이 무언가를 찾으며 떠돌게 하던 목마름, 그 모든 것의 밑바닥에는 원천을 잃어버린 영혼의 귀향 본능이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어떤 고독은 단순한 우울이 아니라 영혼이 자기 근원을 향해 돌아가는 길목이 된다. 기도는 바로 거기에서 시작된다. 말이 많아서 기도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무릎을 오래 꿇어서 기도가 되는 것도 아니다. 어느 날 문득 내 힘으로는 더 이상 채울 수 없는 빈자리 앞에 서게 될 때 사람은 비로소 하늘을 향해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나는 없습니다. 당신만이 계십니다.” 그 기도는 체념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깊은 자유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어야 한다는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 존재 전체를 사랑의 원천께 맡기는 순간, 영혼은 비로소 숨을 쉬기 시작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주 반대로 살아간다. “나만 있고 그분은 없습니다.” 그때 삶은 점점 메말라 간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채워지지 않고, 아무리 사랑받아도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만으로는 영혼의 무한한 깊이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분 없이 살아가는 영혼은 마치 샘을 잃어버린 강처럼 겉으로는 흐르는 것 같아도 안쪽에서는 조금씩 말라 간다. 그래서 고독은 은총이다. 고독이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거짓으로 채워진 것들을 하나씩 벗겨 내기 때문이다. 사람은 홀로 남겨졌을 때 비로소 자기 영혼의 진짜 목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그 깊은 침묵 속에서
슬프도록 아름다운 선율 하나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 선율은 “나에게 돌아오너라” 하고 부르는 원천의 목소리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 실은 그분의 흔적이었음을, 모든 사랑이 그분 사랑의 작은 그림자였음을, 모든 그리움이 결국 그분께로 향하는 길이었다는 것을, 영혼은 그제야 조금씩 알아듣기 시작한다. 백야의 끝없는 푸른빛 아래 나는 오늘도 고독 속에 앉아 아무도 들을 수 없는 단조의 선율을 듣는다. 슬픔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슬픔 안에서 나는 이전보다 더 깊이 살아 있다. 왜냐하면 이제 고독은 나를 닫아 두는 어둠이 아니라 원천을 향해 열려 있는 기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깊은 기도의 끝에서 나는 조용히 알게 된다. 참된 평화는 내가 사라질 때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분이 머무를 공간이 열릴 때 찾아온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