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9 추천 수 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슬프도록 아름다운 은총과 고독의 이야기.

 

고독이 불러온 선율

백야처럼 잠들지 못하는 마음의 가장자리에서 고독은 아주 천천히 한 사람의 영혼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처음에는 그것이 슬픔인 줄만 알았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침묵, 아무리 가까운 사람 곁에서도 끝내 남겨지는 외로움, 붙잡을수록 멀어지는 시간들, 사랑했기에 더 깊어지는 상실의 그림자들, 그러나 오래 고독 안에 머물다 보면 슬픔은 어느 순간 낯선 아름다움의 얼굴로 변하기 시작한다. 마치 오래된 수도원의 새벽 종소리처럼 낮고 느린 단조의 선율 하나가 영혼의 가장 깊은 우물에서부터 조용히 울려 나온다. 그 선율은 세상의 환호처럼 시끄럽지 않다. 무언가를 이루었다고 자랑하지도 않는다. 다만 아주 오래전 잃어버린 원천의 기억을 흔들어 깨운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왜 이토록 사랑을 갈망하는가? 왜 사람의 마음은 끝없이 누군가를 그리워하도록 만들어졌는가? 고독은 그 질문들을 피해 가지 못하게 만든다. 낮에는 분주함 속에 숨어 있던 영혼이 밤이 되면 자기 존재의 빈 방 하나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빈자리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나는 안다. 세상에는 끝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이 있다는 것을, 너무 사랑했기에 더 외로워지는 밤, 너무 깊이 이해했기에 끝내 붙잡지 못하는 관계들, 마음은 가까워질수록 더 아프게 떨리는 현악기 같다는 것을

 

나는 문득 슬픔에도 향기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너무 깊은 슬픔은 오히려 사람을 맑게 만든다.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하고 사라지는 것들을 더 따뜻하게 바라보게 한다. 백야의 끝없는 여명 속에서 나는 오래된 상실들을 하나씩 꺼내어 가만히 가슴 위에 올려놓는다. 떠나간 사람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들, 붙잡으려 할수록 더 멀어지던 젊음과 사랑과 순간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상실들 덕분에 나는 조금 더 깊은 사람이 되어 간다.

 

슬픔은 사람을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더 넓은 침묵으로 데려간다.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안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지나가며 남기는 빛이라는 것을, 인생은 붙드는 일이 아니라 흐르는 강물 곁에 오래 앉아 있는 일이라는 것을, 인간의 슬픔 가장 깊은 곳에는 사실 하느님에 대한 그리움이 숨어 있다는 것을, 세상의 어떤 사랑도 완전히 채워 주지 못했던 허기, 아무리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던 외로움, 끝없이 무언가를 찾으며 떠돌게 하던 목마름, 그 모든 것의 밑바닥에는 원천을 잃어버린 영혼의 귀향 본능이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어떤 고독은 단순한 우울이 아니라 영혼이 자기 근원을 향해 돌아가는 길목이 된다. 기도는 바로 거기에서 시작된다. 말이 많아서 기도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무릎을 오래 꿇어서 기도가 되는 것도 아니다. 어느 날 문득 내 힘으로는 더 이상 채울 수 없는 빈자리 앞에 서게 될 때 사람은 비로소 하늘을 향해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나는 없습니다. 당신만이 계십니다.” 그 기도는 체념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깊은 자유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어야 한다는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 존재 전체를 사랑의 원천께 맡기는 순간, 영혼은 비로소 숨을 쉬기 시작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주 반대로 살아간다. “나만 있고 그분은 없습니다.” 그때 삶은 점점 메말라 간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채워지지 않고, 아무리 사랑받아도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만으로는 영혼의 무한한 깊이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분 없이 살아가는 영혼은 마치 샘을 잃어버린 강처럼 겉으로는 흐르는 것 같아도 안쪽에서는 조금씩 말라 간다. 그래서 고독은 은총이다. 고독이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거짓으로 채워진 것들을 하나씩 벗겨 내기 때문이다. 사람은 홀로 남겨졌을 때 비로소 자기 영혼의 진짜 목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그 깊은 침묵 속에서

슬프도록 아름다운 선율 하나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 선율은 나에게 돌아오너라하고 부르는 원천의 목소리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 실은 그분의 흔적이었음을, 모든 사랑이 그분 사랑의 작은 그림자였음을, 모든 그리움이 결국 그분께로 향하는 길이었다는 것을, 영혼은 그제야 조금씩 알아듣기 시작한다. 백야의 끝없는 푸른빛 아래 나는 오늘도 고독 속에 앉아 아무도 들을 수 없는 단조의 선율을 듣는다. 슬픔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슬픔 안에서 나는 이전보다 더 깊이 살아 있다. 왜냐하면 이제 고독은 나를 닫아 두는 어둠이 아니라 원천을 향해 열려 있는 기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깊은 기도의 끝에서 나는 조용히 알게 된다. 참된 평화는 내가 사라질 때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분이 머무를 공간이 열릴 때 찾아온다는 것을.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자유나눔 게시판

자유롭게 글을 남겨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슬프도록 아름다운 은총과 고독의 이야기. 슬프도록 아름다운 은총과 고독의 이야기.   고독이 불러온 선율 백야처럼 잠들지 못하는 마음의 가장자리에서 고독은 아주 천천히 한 사람의 영혼 안으로 걸어 ... new 이마르첼리노M 2026.05.28 9
1857 썩지 않는 씨앗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썩지 않는 씨앗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프란치스칸 내적 가난과 형제성의 신비 안에서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이들의 ... 이마르첼리노M 2026.05.27 19
1856 성사적 삶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자유 성사적 삶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자유   신앙은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과거를 완벽하게 이해한 뒤에야 오시는 분도 아니고, 죽음 이후의 어느... 이마르첼리노M 2026.05.26 38
1855 성령의 열매로 드러나는 하느님 나라의 현재성 성령의 열매로 드러나는 하느님 나라의 현재성   붙잡는 종교에서 놓아버리는 복음으로 예수님의 복음은 본래 죽은 뒤에야 효력을 발휘하는 내세 보험이 아니었... 이마르첼리노M 2026.05.25 31
1854 숨을 불어넣으시는 분 숨을 불어넣으시는 분   기억의 치유와 용서의 숨결 닫혀진 문 안에 제자들은 숨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맹세했던 사람들은 흩어졌고, 십자가 아래... 이마르첼리노M 2026.05.24 81
1853 기억의 치유, "너는 나를 따라라" 기억의 치유, &quot;너는 나를 따라라&quot;   기억의 치유, 비교의 언덕에서 내려와 자기 몫의 삶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여정 사람은 현재를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 이마르첼리노M 2026.05.23 92
1852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를 따르라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를 따르라   티베리아스 호숫가의 숯불 앞에서 새벽 물안개가 호수 위를 천천히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아무것도 ... 이마르첼리노M 2026.05.21 87
1851 상호 간에 내어주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선에 참여하는 믿음 상호 간에 내어주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선에 참여하는 믿음   요한복음 17장의 예수님 기도는 우리 신앙의 가장 깊은 중심을 열어 보입니다. 그 중심에는 “하... 이마르첼리노M 2026.05.21 76
1850 진리로 거룩해지는 삶 진리로 거룩해지는 삶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 이마르첼리노M 2026.05.20 70
1849 영원한 생명은 관계로 들어가는 앎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관계로 들어가는 앎입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요한 17,3) ... 이마르첼리노M 2026.05.19 85
1848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실재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실재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한 16,33) 우리 일상의 관계 안에서 이 말씀은 거창한 종교적 승리 선언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 1 이마르첼리노M 2026.05.18 97
1847 예수 승천 대축일 묵상 예수 승천 대축일 묵상   땅끝까지 흐르는 사랑의 증언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끝에 이르기... 이마르첼리노M 2026.05.17 133
1846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기도는 우리가 바라는 대로 하느님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우리와 우리 삶이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주 ... 이마르첼리노M 2026.05.16 126
1845 프란치스칸 영성 안에서 회개와 형제성의 핵심 요약 프란치스칸 영성 안에서 회개와 형제성의 핵심 요약   1. 회개 1) 회개는 단순한 반성이 아니라 ‘존재의 변화’입니다. 프란치스코에게 회개(poentitentia)는 단... 1 이마르첼리노M 2026.05.15 120
1844 떠남으로 오시는 분 떠남으로 오시는 분   부활 시기의 새벽에 배우는 성령의 숨결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남기신 마지막 약속은 참으로 역설적입니다. “내가 떠나는 것이 너... 1 이마르첼리노M 2026.05.12 173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 124 Next ›
/ 124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