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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으로 오시는 분

 

부활 시기의 새벽에 배우는 성령의 숨결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남기신 마지막 약속은 참으로 역설적입니다.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사랑하는 이의 떠남이 어떻게 이로울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붙잡고 싶은 존재 앞에서 늘 머무름을 원하고, 곁에 있어 주기를 바라며, 눈에 보이는 현존 속에서 안심하려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붙잡는 사랑에서 흘러가는 사랑으로 이끄십니다. 육체로 한 장소에 머무시는 예수님은 몇몇 사람과만 함께 계실 수 있었지만, 성령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모든 이의 가난한 마음 안으로 스며드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떠남은 끝이 아니라 더 깊은 방식의 현존이 됩니다. 그분은 사라지신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숨결이 되어 우리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성령은 멀리 있는 위로가 아니라 우리 존재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하느님을 향해 흐르게 만드는 생명의 강물입니다. 보이지 않는 보호자의 방식입니다. 성령께서는 요란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십니다. 봄날 새벽 들판 위에 내려앉는 안개처럼, 말없이 스며들어 굳어 있던 마음을 적십니다. 우리가 미워하던 사람을 조금 덜 미워하게 되는 순간, 상처 속에서도 다시 사랑하고 싶어지는 순간,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누군가의 손을 잡게 되는 순간, 바로 그곳에 보호자 성령께서 계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떼어내어 안전한 곳에 숨겨두시는 분이 아니라, 상처 많은 세상 한가운데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활동은 기적 이전에 관계 안에서 드러납니다.

 

닫힌 마음이 열리고, 굳은 판단이 부드러워지고, 자기중심적 두려움이 타인을 향한 연민으로 바뀌는 곳에서 우리는 이미 성령의 숨결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 의로움, 심판의 새로운 의미,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죄는 단순히 윤리적 실수의 목록이 아닙니다. 죄의 가장 깊은 뿌리는 빛이 오셨는데도 그 빛을 믿지 않으려는 마음입니다. 사람은 종종 자신의 상처와 경험과 계산만을 신뢰합니다. 사랑보다 두려움을, 신뢰보다 통제를 선택합니다. 그렇게 자기 안에 갇혀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령은 닫힌 존재를 열어 하느님의 흐름 안으로 우리를 데려가십니다. 의로움 또한 세상의 기준과 다릅니다. 세상은 강한 사람을 의롭다 말하지만, 하느님은 사랑 안에 머무는 사람을 의롭다 하십니다. 예수님의 의로움은 권력을 차지함이 아니라 끝까지 사랑하심에 있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도 당신 자신을 내어주심으로 하느님의 마음이 어떤 사랑인지를 드러내셨습니다.

 

심판이란 사랑이 결국 승리한다는 선언입니다. 죽음과 미움과 폭력이 세상의 마지막 말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부활은 패배한 사랑의 부활이 아니라 애초부터 패배하지 않았던 사랑의 드러남입니다. 부활은 일상 속으로 스며드는 생명입니다. 우리는 종종 부활을 죽음 후의 먼 이야기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활은 이미 금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절망 속에서도 다시 하루를 살아내는 힘, 눈물 속에서도 누군가를 축복할 수 있는 마음, 깨어진 관계 속에서도 화해를 꿈꾸게 만드는 희망, 그 모든 것이 부활의 작은 흔적들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영원의 문으로 바꾸십니다. 부엌에서 끓는 따뜻한 국 냄새 속에도, 새벽 미사 종소리에도, 황혼 무렵 창가에 기대어 머무는 침묵 속에도, 노을을 바라보며 천천히 해변의 갯벌을 걸을 때에도, 누군가를 위해 조용히 기도하는 마음 안에도 부활은 살아 움직입니다. 그래서 영성체 후 기도의 고백처럼, 우리 삶은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영원을 향해 익어가는 과정입니다. 오늘 하루의 작은 친절 하나가 영원 안에서는 빛나는 사랑의 씨앗이 되고, 누군가를 품어준 침묵 하나가 하느님 나라의 언어가 됩니다.

 

떠나지 않으시는 분

주님은 떠나심으로써 오히려 더 가까이 오셨습니다. 이제 그분은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사랑하는 이의 마음 안에 머무르십니다. 빵을 떼는 손 안에, 눈물 흘리는 이의 어깨 위에, 용서를 결심하는 침묵 안에, 가난하고 작은 이들의 삶 안에 성령으로 살아 계십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보이지 않는 분의 부재를 견디는 일이 아니라, 보이지 않지만 더욱 깊이 현존하시는 분을 매일의 삶 속에서 알아보는 연습입니다. 부활 시기의 햇살처럼 조용히 번져 오는 성령의 숨결이 오늘 우리의 닫힌 마음을 열고, 두려움보다 사랑을 선택하게 하며, 삶의 가장 어두운 자리에서도 다시 희망을 노래하게 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 또한 모든 떠남이 끝나는 곳에서 영원히 오시는 그분의 품 안에 고요히 머물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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