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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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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의 강물로 흐르는 목자의 손길

 

신앙이란 무엇인가요? 그것은 내 안을 관통하여 흐르는 거대한 강물을 신뢰하는 능력입니다. 그 강물은 정지해 있는 고인 물이 아니라, 성부와 성자, 성령이 끊임없이 서로를 내어주고 받아들이는 삼위일체적 사랑의 흐름입니다. 이 흐름은 우리가 인위적으로 바꾸거나, 강제하거나, 개선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억지로 빠르게 할 수도 없고, 내 뜻대로 방향을 바꿀 수도 없습니다. 오직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깊고 적극적인 행위는 오직 하나입니다. 그 흐름이 나를 지나가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이 흐름을 잊고 조바심에 사로잡힙니다. 목표에 집착하며 일이 신속하게 진행되기를 바라고, 지금 이 순간의 현존을 상실한 채 머릿속 망상으로 도피하곤 합니다. 마치 내가 강물을 창조해야 하는 것처럼, 혹은 멈춰선 강물을 뒤에서 밀어내야 하는 것처럼 애를 쓰며 살아갑니다. 이러한 조바심의 밑바닥에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에게 명확한 안도감을 선사합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요한 10,27-28)

 

우리가 신뢰해야 할 강물은 단순히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우리를 속속들이 알고 계시는 목자의 손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조종하려 하거나 억압하는 독재자가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가 감히 희망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며, 그분의 손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위대하여 결코 우리를 놓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여정은 무엇을 더 많이 이루는 과정이 아닙니다. 내가 누구의 손 안에 있는지를 다시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흔들릴 때마다, 상처받을 때마다, 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마다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붙잡고 있는가. 아니, 더 깊이 말해 나는 누구에게 붙잡혀 있는가? 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처받고 흔들리는 순간일수록, 하느님의 선하심에 대한 깊은 확신이 필요합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선언처럼, 우리 역시 그 일치된 사랑의 흐름 안에 이미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그 일치의 사랑 안에 우리도 이미 들어와 있습니다. 삼위일체의 사랑은 멀리 있는 교리가 아니라, 오늘 내 안에서 조용히 흐르는 생명의 강입니다. 내가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하지 않아도, 그 사랑은 나를 떠나지 않습니다. 이제 강물을 밀어내려던 손의 힘을 풉니다. 조바심을 내려놓고, 목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내 안을 흐르는 사랑이 나를 데려가도록 허락합니다. 강물을 밀어내려던 손의 힘을 빼고, 나를 관통하여 흐르는 그분의 사랑에 몸을 맡깁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결코 버려지지 않습니다. 아무도 우리를 그분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 사랑의 흐름 안에서 안전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선의 흐름을 거부하게 하는지 두려움의 실재를 깊이 들여다봅시다.

 

선의 흐름을 거부하게 하는 두려움의 실재

삼위일체 하느님의 선의 흐름을 거부하게 만드는 두려움의 실재를 살펴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생명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서로를 온전히 내어주시고, 기쁘게 받아들이시며, 다시 넘쳐흐르게 하시는 완전한 선의 순환입니다. 신앙인은 그 흐름을 밖에서 구경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흐름 안으로 초대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 사랑의 흐름을 쉽게 허용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단순한 악의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두려움의 구조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우리를 닫히게 만들고, 움켜쥐게 하며, 관계보다 방어를 선택하게 만듭니다.

 

1. 상처받을까 두려워 내어주지 못하는 마음

사랑은 자신을 내어주는 일입니다. 시간과 관심과 진심을 건네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상처 때문에 배웁니다. 진심을 주면 이용당할 수 있다. 선의를 베풀면 돌아오는 것은 무관심일 수 있다. 마음을 열면 거절당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은 점점 계산하게 됩니다. 손해 보지 않는 만큼만 주고, 다치지 않을 만큼만 열어 둡니다. 하지만 삼위일체의 사랑은 계산이 아니라 자유로운 증여입니다. 두려움은 이 자유를 막습니다.

 

2. 통제력을 잃을까 두려워 맡기지 못하는 마음

하느님의 흐름을 허용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내가 지배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통제를 놓는 것을 불안해합니다. 내가 직접 관리해야 안심이 된다. 내가 결정해야 실패하지 않는다. 내가 붙잡고 있어야 무너지지 않는다. 이 마음은 겉으로는 책임감처럼 보이지만, 깊이 들어가면 신뢰의 결핍일 수 있습니다. 강물은 흐르는데, 우리는 자꾸 강바닥에 돌을 쌓아 둑을 만듭니다. 모든 것을 관리하려는 집착은 은총의 흐름을 막는 가장 흔한 두려움입니다.

 

3. 가치 없다는 두려움 때문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

어떤 사람은 내어주는 것보다 받아들이는 것을 더 어려워합니다. 나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다. 이렇게 부족한 내가 은총을 받아도 되는가. 도움을 받으면 약한 사람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칭찬도 거절하고, 위로도 밀어내고, 하느님의 자비조차 멀리합니다. 그러나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은 자격시험을 통과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이 아닙니다. 존재 자체가 선물이기에 주어지는 은총입니다. 받아들이지 못함은 겸손이 아니라 때로는 깊은 자기 거부입니다.

 

4. 변화될까 두려워 머무르려는 마음

하느님의 사랑이 들어오면 삶은 변합니다. 우선순위가 달라지고, 관계 맺는 방식이 달라지고, 이전의 자기중심성은 흔들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두려워합니다. 지금 방식이 익숙하다. 변하면 불편하다. 새로워지는 일은 낯설다. 빛을 원하면서도 커튼은 열지 않는 마음입니다. 은총은 위로만 주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요구합니다. 두려움은 익숙한 감옥을 선택하게 만듭니다.

 

5. 타인과 연결될까 두려워 고립을 선택하는 마음

삼위일체의 생명은 본질적으로 관계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흐름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사람들과도 다시 연결되는 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말합니다. 혼자가 편하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없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겠다. 이 고립은 강해 보이지만, 사실은 상처 입은 자아의 갑옷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를 홀로 완성시키지 않고, 서로의 선을 통해 자라게 하십니다.

 

6. 작아질까 두려워 자신을 중심에 두는 마음

삼위일체의 사랑 안에서는 누구도 중심을 독점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서로를 높이며 자신을 내어줍니다. 그러나 인간의 두려움은 속삭입니다. 내가 인정받지 못하면 끝이다. 내가 드러나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이다. 먼저 낮아지면 손해 본다. 그래서 경쟁하고 과시하고 비교합니다. 하지만 복음은 말합니다. 자신을 잃을까 두려워 움켜쥐는 사람은 작아지고, 자신을 내어주는 사람은 오히려 넓어집니다.

 

7. 두려움의 최종 형태: 하느님도 믿지 못하는 마음

가장 깊은 두려움은 이것입니다. 하느님도 결국 나를 실망시키실지 모른다. 내가 스스로 지켜야 한다. 끝내는 혼자 책임져야 한다. 이것이 자만심의 가장 큰 어둠입니다. 이 불신은 말로는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삶으로는 홀로 살아가게 만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내 안에 머물러라.” “아무도 너희를 내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8. 두려움을 넘는 길: 작은 허용의 연습

두려움은 한순간에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두려움이 없어야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조금씩 허용하는 용기입니다.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은 이렇습니다. 도움을 받아들이기, 감사를 표현하기, 용서 한 걸음 내딛기, 통제하지 않고 기다리기, 결과보다 관계를 선택하기, 기도 안에서 맡겨 드리기, 이 작은 허용의 틈으로 삼위일체의 사랑은 다시 흐르기 시작합니다.

 

맺는말

두려움은 우리를 닫히게 하지만, 하느님은 언제나 흐르십니다. 우리가 완전해져서 그 사랑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 열릴 때, 조금 맡길 때, 조금 받아들일 때 이미 그 사랑은 들어옵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생명은 멀리 있는 신학이 아니라, 오늘 내 안에서 내어주고, 받아들이고, 다시 흘려보내는 선의 움직임으로 시작됩니다두려움은 움켜쥐라 말하지만, 은총은 조용히 말합니다. “열어라. 나는 이미 흐르고 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라온다.” (요한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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