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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추락과 비움의 신비

 

우리는 상실을 두려워합니다.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은 곧 나 자신이 줄어드는 일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손에서 빠져나가는 것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그것을 실패라 부르고, 우리의 삶이 어딘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삶은 때때로 우리에게 전혀 다른 언어로 말을 겁니다. 쥐고 있는 작은 것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더 큰 것을 받을 수 없다는 단순하고도 잔인한 진실, 그 진실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멈춰 서게 됩니다. 상실은 빼앗김이 아니라 더 큰 실제와 하나 되기 위한 통로입니다. 손 안의 구슬을 놓지 못하는 동안 우리는 결코 보석을 만질 수 없습니다.

 

어떤 순간, 삶은 우리를 벼랑 끝으로 밀어냅니다. 그것은 파괴가 아니라 초대입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붙잡고 있던 이름과 관계, 확신과 신념, 심지어 신앙의 형식까지도 조용히 흔들어 놓으며 묻습니다. 이것 없이도 너는 존재할 수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죽음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 죽음은 끝이 아니라 적극적인 죽음, 곧 스스로 내려놓는 용기이며 자신이 쌓아 올린 세계로부터의 탈출입니다. 어쩔 수 없이 당하는 상실이 아니라 더 깊은 생명을 향해 기꺼이 선택하는 비움입니다. 하지만 이 길은 이해로는 닿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늘 미리 알고 싶어 합니다. 고통의 의미를, 상실의 이유를,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를. 그러나 영혼의 진리는 설명으로 전달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사건입니다. 밀알이 땅속으로 떨어져 어둠과 습기를 견디지 않고서는 결코 싹을 틔우지 못하듯, 우리 역시 삶의 깊은 어둠 속으로 밀려 들어가야만 알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당신이 몸소 그것을 통과해야 한다는 이 말은 위로가 아니라 존재 전체를 향한 초대입니다.

 

그때 가장 강하게 저항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에고입니다. 에고는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내가 통제할 수 있어야 안전하다, 내 계획대로 되어야 행복하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삶은 통제되지 않으며, 바로 그 불확실성 속에서 가장 깊은 진리가 드러난다는 것을. 에고는 붙잡고, 밀어내고, 판단하며 어떻게든 자신이 중심에 서 있으려 하지만, 그 모든 긴장은 우리를 더 좁은 감옥으로 몰아넣을 뿐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두 갈래의 길 앞에 서게 됩니다. 하나는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며 집착의 뿌리를 끊어내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을 향해 자신을 비워내며 사랑 속으로 흘러드는 길입니다. 서로 달라 보이지만 이 두 길은 결국 하나의 자리로 수렴합니다. ‘라는 좁은 중심에서 벗어나 전체와 하나 되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십자가가 서 있습니다. 십자가는 단순한 고통의 상징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딜레마를 드러내는 거울이며 동시에 그 딜레마를 넘어서는 길입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고통을 피하려 하지만, 십자가는 우리를 정반대의 방향으로 이끕니다. 도망치는 대신 그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고, 거부하는 대신 그것과 하나가 되라고. 그때 고통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이의 것이 되며, 나는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연결된 존재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고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 하나의 고통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나누어 지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이 깨달음이 찾아오는 순간 고통은 더 이상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연대의 문이 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여정의 끝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저항하지 않는 힘입니다. 이것은 패배가 아니라 현실을 밀어내지 않고 판단하지 않으며 그 자리에서 머무르는 용기, 곧 가장 깊은 자유입니다. 그리고 그 바다는 두려움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것들, 부서졌다고 여겼던 관계들,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다고 느끼는 시간들까지도 그 깊은 바다 안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시 살아납니다. 우리는 그제야 알게 됩니다.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보지 못했던 것들, 소유하려 했기 때문에 느끼지 못했던 것들, 지켜내려 했기 때문에 오히려 잃어버렸던 것들을. 비워진 자리에서 비로소 그것들이 다가옵니다. 억지로 붙잡지 않아도 흘러들어오는 것들로, 노력하지 않아도 이미 주어져 있었던 것들로 다가옵니다.

 

상실은 끝이 아니라 관계의 방식이 바뀌는 순간이 됩니다. 소유에서 존재로, 통제에서 신뢰로, 분리에서 연결로. 그 전환의 문턱에서 우리는 마지막까지 망설입니다. 여전히 손에 쥐고 싶은 마음과 나를 지키고 싶은 본능, 설명할 수 있는 세계 안에 머물고 싶은 욕망이 우리를 붙잡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문을 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이전의 방식으로 살 수 없게 됩니다. 계산하며 사랑할 수 없고, 조건을 붙이며 관계할 수 없으며, 나를 중심에 두고 세상을 해석할 수 없게 됩니다. 그 대신 우리는 다른 질서 안으로 들어갑니다. 받기 전에 먼저 내어주는 질서, 이해하기 전에 먼저 머무르는 질서, 안전하기 전에 먼저 신뢰하는 질서. 그 질서 안에서 고통은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통과해야 할 통로가 되고, 상실은 실패가 아니라 확장되는 존재의 징표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가를 묻지 않고, 이 일이 나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지를 조용히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그 시선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점점 더 단순해집니다. 설명하려는 마음이 줄어들고, 판단하려는 힘이 약해지며, 붙잡으려는 손이 풀어집니다. 그 자리에 남는 것은 흐름에 자신을 맡기는 용기입니다. 그것은 무력함이 아니라 가장 능동적인 신뢰이며, 포기가 아니라 가장 깊은 참여입니다.

 

우리는 마침내 고백하게 됩니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살지 않습니다. 나는 나를 통하여 흐르는 것을 위해 살아갑니다. 그 흐름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든 그것을 거부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나는 알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리는 순간마다 나는 더 넓어지고 있었고, 무너지는 순간마다 나는 더 깊어지고 있었으며, 내려놓는 순간마다 나는 비로소 살아나고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조용히 손을 엽니다. 그리고 그 열린 손 위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사실은 모든 것이 시작되는 자리임을 받아들입니다. 빈손이 주는 자유, 가난이 주는 평화, 고통이 주는 생명, 아버지의 품에서 누리는 기쁨을 복음은 역설로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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