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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너머로 흐르는 은총의 발소리 (사렙타의 과부와 시리아의 나아만)

 

사렙타와 시리아로 파견된 예언자, 엘리아와 엘리사 시대의 예언적 소명은 이제 우리가 살아야 할 소명으로 받아들일 때가 되었습니다. 삼 년 육 개월, 하늘이 구리 빛으로 굳어버린 지독한 갈증의 시대에 사람들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비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하늘보다 더 먼저 굳어버린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사렙타의 과부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시리아의 나아만 장군이 있습니다. 우리가 낯설어하는 사람들, 우리가 경계를 긋는 사람들, 우리가 쉽게 판단하는 사람들 속에 하느님은 이미 은총을 준비하고 계십니다.우리는 우리가 가진 선택된 이름의 창고만을 뒤적이며 하느님의 은총이 반드시 우리 울타리 안에서만 흘러야 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골짜기마다 굶주린 과부들이 넘쳐났지만 예언자의 발길은 익숙한 성문의 빗장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는 낯선 이방의 땅, 시돈의 사렙타로 먼지를 일으키며 떠나갔습니다. 그 길은 사람들의 기대를 거스르는 길이었습니다. 자기 민족의 울음보다 먼 나라의 눈물을 먼저 찾아가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은 언제나 사람이 그어 놓은 경계보다 훨씬 더 넓은 길을 걸어갑니다.

 

우리는 자주 하느님의 은총을 우리의 울타리 안에 가두려 합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서, 우리 교회 안에서, 우리 신앙의 전통 안에서, 내 믿음 안에서만 하느님의 자비가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사람이 세운 울타리 안에 갇혀 숨쉬지 않으십니다. 성령은 언제나 경계 너머에서 먼저 움직이십니다. 그래서 예언자의 길은 익숙한 자리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그 길은 언제나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떠나는 길입니다. 아씨시의 가난한 프란치스코가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라고 말했을 때 그 말씀은 단지 가진 재물을 내려놓으라는 권고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훨씬 더 깊은 가난을 향한 부르심이었습니다. “나의 하느님” “나의 의로움” “나의 구원이라는 내것으로 여겼던 그 견고한 영적 소유권마저 하느님 앞에 내려놓으라는 초대였습니다. 예언자의 길은 특권을 지키는 길이 아니라특권을 내려놓는 길입니다. 다른 말로하면 도구적 존재로 살아가라는 부르심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그분을 우리의 소유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내가 받을 자격이 있는 선물처럼 여기고, 하느님의 진리를 내가 지키고 있는 성전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은총은 누군가의 소유가 되는 순간 이미 은총이기를 멈춥니다. 은총은 언제나 선의 흐름이 있는 곳에, 빈손에게만 머무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칸의 가난은 단순한 결핍의 삶이 아니라 특권을 내려놓는 영적 자유입니다. 은총을 내 권리로 만들지 않는 가난한 마음입니다. 우리 믿음의 초기부터 우리는 은총을 선물로 받는 마음이 아니라 마치 자격 있는 소유물처럼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오래 신앙생활을 했다. 우리는 올바른 교리를 알고 있다. 우리는 선택받은 공동체에 속해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은총은 조용히 우리의 손을 떠나 다른 곳으로 흐르기 시작합니다. 내가 옳다는 확신, 나는 잘하고 있다는 착각, 내가 하느님께 더 가까이 있다는 자만심, 내가 선택받았다는 은밀한 교만을 하느님 앞에 내려놓는 가난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은총이 흘러가는 방향을 다시 보게 됩니다.

 

우리가 은총의 수혜자임을 자처하며 안락한 성전 안에 머물 때 성령은 오히려 우리가 세운 편견의 담장을 넘어 적대적인 시리아의 나병 환자 나아만의 살결 위로 내려앉으셨습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방식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경계를 세우는 곳에서 하느님은 다른 길을 여십니다. 사람이 거리를 두는 곳에서 하느님은 손을 내미십니다. 사람이 구별하는 곳에서 하느님은 형제를 발견하십니다. 프란치스코는 이 복음의 비밀을 나병 환자를 통해 배웠습니다. 처음 그들을 보았을 때 그의 마음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가갔고 그를 껴안았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에게 쓰디쓴 것처럼 보였던 것이 달콤함으로 변했습니다. 그날 프란치스코는 깨달았습니다. 하느님은 내가 피해 가던 자리에서 이미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는 사실을. 그래서 그는 더 이상 누가 깨끗한지 묻지 않았습니다. 그는 묻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 안에 있는 하느님의 얼굴을 나는 보고 있는가.”

 

오늘 우리 시대의 하늘도 여전히 닫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풍요 속의 기근, 연결 속의 고립이라는 이 기묘한 가뭄 속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기적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언제나 다른 질문을 던지십니다. “너는 어디로 파견될 준비가 되어 있느냐.” 프란치스칸 예언자의 길은 자기 믿음과 업적과 공로를 과시하는 길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의 길을 닮는 것입니다. 물이 산 위에 머물지 않듯 은총도 높은 자리에 머물지 않습니다. 은총은 언제나 낮은 곳을 찾아 흐릅니다. 그래서 예언자의 길은 존경받는 자리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그 길은 언제나 불편한 파견에서 시작됩니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들의 환대를 뒤로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이방인의 문을 두드리는 일, 사람들이 피하는 병자의 곁에 앉는 일, 상처 입은 관계의 자리에서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는 일. 그곳에서 하느님의 은총은 다시 흐르기 시작합니다. 사렙타 과부의 바닥난 밀가루 단지 속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듯 우리가 타자라 부르며 밀어냈던 이들의 궁핍한 눈망울 속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식별해내는 것이 이 시대의 참된 예언입니다.

 

예언은 미래를 맞히는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이 이미 와 계신 자리를 알아보는 눈이기 때문입니다. 내 안의 이스라엘, 내 안의 기득권이라는 성벽이 무너질 때 비로소 나아만의 일곱 번 씻음과 같은 내적 정화의 신비가 시작됩니다. 그때 우리는 깨닫습니다. 치유가 필요한 사람은 타인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그러니 이제 우리의 기도는 바뀝니다. “나를 낫게 하소서가 아니라 내가 그들의 발치에 머물게 하소서.” 닫힌 하늘을 원망하기보다 내 마음의 빗장을 먼저 풀게 하소서. 그리하여 사렙타의 마지막 빵 한 조각이 두 손 사이에서 나뉘는 그 찰나에 하늘은 다시 열리고 보편적 형제애의 단비가 메마른 온 땅을 적시게 하소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과 저녁식사 자리에서 빵을 떼실 때 그분을 알아보았듯이 그때 우리는 조용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은총은 우리 울타리 안에 갇혀 있던 것이 아니라언제나 경계 너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 길 위에서 프란치스칸의 예언자는 더 이상 세상의 중심에 서지 않습니다. 그는 낮은 자리에서 내어주는 몸을 받아 내어주는 몸으로 자신을 쪼갤 때 모든 이의 형제가 됩니다. 나의 시간과 재능과 재물을 측은한 마음으로 너의 요긴한 필요성을 말없이 채울 때 그의 삶은 조용히 하느님의 은총이 흐르는 작은 도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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