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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칸 관점에서 읽는 부자와 라자로 이야기

 

부자와 라자로의 복음 이야기는 단순한 '권선징악'을 넘어, 우리 일상의 '관계적 단절'이 영원한 운명을 어떻게 결정짓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를 성 프란치스코의 영적 권고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아무것도 자랑하지 말 것"이라는 통찰과 연결해 보았습니다.

 

1. 일상에서의 관계 '보지 못함과 보지 않음'이라는 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복음서에서 부자가 지옥에 간 결정적인 이유는 그가 라자로를 괴롭혔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문 앞에 누워 있는 라자로를 '보지 못하고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관심의 장벽에 갇혀 사는 우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부자는 매일 호화로운 잔치를 벌이며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었습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둔 라자로는 그의 일상에서 '배경'일 뿐 '인격'이 아니었습니다. 부자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단지 바빴습니다. 자신의 삶을 꾸미느라, 자신의 옷을 자랑하느라, 자신의 식탁을 지키느라, 자신의 세계를 넓히느라 너무 바빴습니다. 그래서 문 앞에 누운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보았지만 보지 않기로 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마음이 가득 차면 눈이 닫히기 때문입니다. 관계의 부재가 불러온 결과, 부자에게 라자로는 이름조차 불러본 적 없는 존재였지만, 하느님은 라자로의 이름을 알고 계셨습니다. 일상에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하느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있음을 상징합니다.

 

2. 성 프란치스코의 통찰 : 무엇을 자랑하는가?

성 프란치스코는 영적 권고5장에서 "우리가 자랑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연약함과 주님의 거룩한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을 자랑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 이야기는 지식과 부의 함정에 빠져 우월감의 극치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경고하는 이야기입니다. 부자는 자신의 재산, 지위, 화려한 옷을 '자랑'으로 삼았습니다. 이는 자기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두는 교만과 자만심이 얼마나 심각한 관계의 단절을 가져오는 지를 보여줍니다. 반면, 프란치스코는 인간이 가진 지혜, 능력, 재물조차 본래 자신의 것이 아니며, 오직 '연약함'만이 진정으로 우리가 하느님 앞에 내놓을 수 있는 것이라 보았습니다. 십자가를 자랑한다는 의미는 자기 비움이라는 내적 가난의 실재를 관계 안에서 찾으라는 말입니다. 십자가를 자랑한다는 것은 나의 잘남을 가리고, 내 안의 빈자리에 하느님의 자비가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세상에서 버림받은 이들의 고통을 상징합니다. 라자로의 상처와 종기를 핥던 개들처럼, 가장 낮은 곳에 계신 그리스도를 알아보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신비입니다.

 

3. 부자와 라자로의 이야기와 프란치스코의 권고 5, “주님의 십자가만을 자랑 할 것입니다.” 를 바탕으로 이 비유를 재해석하면, '부자'는 외적인 소유에 취해 십자가를 거부한 상태이고, '라자로'는 비록 비참하나 하느님께 의탁하며 십자가의 길을 걷는 상태입니다. 부자의 태도는 세속적 자랑을 통해 보상 받으려는 마음이 보입니다. 타인을 쓰고 버리는 소모품처럼 혹은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배경으로 인식합니다. 자신의 풍요를 당연시하고 관계의 방향을 탐욕적이고 이기적인 자기 자기 중심 에만 두기에 타인을 지배와 이용의 대상으로만 봅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의 권고는 십자가만을 자랑하라고 합니다. 고통받는 이웃을 그리스도의 현존으로 인식합니다. 이를 토대로 자아 성찰과 자신의 무력함과 죄를 봅니다. "오직 주님의 십자가만을 자랑하십시오."이 말씀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오늘 우리의 대문 앞에 누워 있는 '라자로'는 누구입니까? 내가 가진 배경과 소유를 자랑하느라, 정작 그 십자가를 지고 있는 이웃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결국 천국과 지옥은 사후의 장소라기 보다 오늘 우리가 맺는 관계의 깊이와 시선에 달려 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가 말하는 온유함은 단순히 성격이 부드럽거나 화를 내지 않는 소극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와 연결했을 때, 프란치스코의 온유함은 '자기 권리의 포기''타인에 대한 완전한 개방'이라는 강력한 영적 에너지를 담고 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의 종이 평화로울 때에 얼마나 많은 인내와 온유를 가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뜻을 받들어야 할 그 사람이 자기의 뜻을 거스를 때, 그때 보여주는 인내와 온유만큼만 그가 가진 것입니다." 부자의 경우를 보면 부자는 자신의 안락함이 방해받지 않을 때만 평화로웠습니다. 그의 '온유함'은 자신의 재산과 지위가 보장될 때만 유지되는 가짜 평화였습니다. 만약 라자로가 집 안으로 들어오려 했다면, 그는 즉시 불같이 화를 냈을 것입니다. 하지만 라자로에게 있어 온유함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비참함 속에서도 타인을 원망하거나 부자의 상을 뒤엎지 않는 '견딤의 온유'였습니다. 그는 십자가 위에서 침묵하신 그리스도를 닮아 있습니다.

 

라자오에게 있어 온유함은 '나의 것'이 없을 때 피어나는 꽃이며 프란치스코에게 온유함은 '마음의 가난'에서 피는 꽃입니다. 내가 나 자신을 소유하려 할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공격적이 됩니다. 우리가 화를 내는 이유는 나의 자존심, 나의 재산, 나의 의견이 침해받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오직 주님의 십자가만을 자랑할 것"을 권고하며,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여겼습니다. 지킬 '자존심'이나 '소유'가 없으니, 타인이 나를 모욕하거나 무시해도 내면의 평화가 깨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내적 가난의 신비에서 나오는 온유함입니다.

 

일상 속의 관계에서의 온유함은 '공간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부자와 라자로의 관계에서 결정적으로 결여된 것이 바로 이 온유함에서 비롯된 '공간'입니다. 자기 자랑과 과시로 가득 찬 마음에는 타인이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이는 타인에 대한 영적인 폭력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마음속에 빈자리를 만듭니다. 라자로의 고통이 머물 수 있는 자리, 그가 비참한 모습 그대로 쉴 수 있는 자리를 내어줍니다. 십자가를 자랑하는 이들은 자신의 상처를 통해 타인의 상처를 받아들입니다.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온유함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올라오는 화는 '내가 주인이다'라는 신호입니다. 이때 십자가를 바라보며 하느님께 주권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부자는 라자로를 '' 또는 '그것'으로 보았지만, 온유한 마음은 상대의 고유한 존재감을 인정합니다. 나의 빈틈과 부족함을 인정할 때, 타인을 판단하는 날카로운 시선이 부드러워집니다.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에서 보듯, 사후의 갈라진 심연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온유함으로 타인을 대하지 않아 생긴 '마음의 심연'이 그대로 굳어진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문 앞에 누워 있는 라자로

어느 날 복음은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고 우리 집 대문 앞의 이야기로 다가옵니다. 부자의 집 문 앞에는 늘 한 사람이 누워 있었습니다. 이름은 라자로. 그러나 부자는 그 이름을 단 한 번도 불러 본 적이 없습니다. 부자가 그를 미워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를 쫓아냈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저 보지 않았을 뿐입니다. 문 앞에 누워 있었지만 그는 부자의 세계 안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부자의 집에는 향기로운 음식 냄새가 가득했고 웃음과 음악이 넘쳐났습니다. 그러나 그 집에는 단 하나가 없었습니다. 관계의 자리. 라자로가 머물 수 있는 단 한 평의 마음의 자리도 그 집에는 없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가 이 비유를 들었다면 아마 조용히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형제들이여, 우리가 자랑할 것은 우리의 지혜도 아니고 재산도 아니며 능력도 아닙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입니다.” 십자가는 세상의 눈에는 패배의 자리입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그 십자가 안에서 세상의 중심이 완전히 뒤집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십자가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깊은 관계가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부자는 자기 옷을 자랑했습니다. 자기 잔치를 자랑했습니다. 자기 성공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자랑하지 않는 삶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중심에 두는 삶이 됩니다. 그 삶의 중심에는 자리가 없습니다.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자존심으로 가득 차 있고, 소유로 가득 차 있고, 자기 확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가득 찬 마음에는 타인이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그래서 부자의 집 문 앞에는 라자로가 누워 있었지만 부자의 마음 문 앞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라자로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재산도 없었고, 명예도 없었고, 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장 깊은 비밀 하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 의탁하는 마음. 아무것도 없을 때 인간은 비로소 자기를 내려놓습니다. 프란치스코가 말한 마음의 가난이 바로 그 자리입니다.

 

가난한 마음은 비어 있는 마음입니다. 비어 있는 마음이 있을 때에만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비어 있는 마음은 하느님이 머무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라자로의 이름을 부자가 몰랐지만 하느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복음은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우리 집 문 앞에 누워 있습니다우리 가정에 있고 우리의 관계 안에 있습니다말과 태도 사이에 숨어 있는 마음이 라자로를 만듭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밀어내려고 일부러 상처를 라자로는 주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상처는 의식 없이 흘러나온 말에서 시작됩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건넨 짧은 말, 생각 없이 던진 농담, 대수롭지 않게 지나친 한숨. 겉으로 보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 말의 뒤에는 보이지 않는 외면이 숨어 있습니다. 사람은 미움보다 먼저 무관심 속에서 소외됩니다. 존재가 보이지 않을 때 사람은 가장 깊이 외로워집니다.

 

온유한 사람은 마음속에 공간을 만듭니다. 타인이 머물 수 있는 자리. 상처 입은 사람이 숨 쉴 수 있는 자리. 부자가 잃어버린 것은 바로 이 공간이었습니다. 자기 자랑으로 가득 찬 마음에는 라자로가 들어올 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자와 라자로 사이에 생긴 그 작은 문턱은 결국 영원한 심연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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