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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회복과 내어줌의 신비에 대한 묵상

 

썩지 않는 열매는 선의 흐름 안에 있습니다. 썩지 않는 열매는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선의 흐름 안에 머무르는 존재에서 자연스럽게 맺힙니다. 열매를 맺으려고 애쓸수록 우리는 열매에서 멀어지고, 선의 흐름 안에 머무를수록 열매는 우리 안에서 저절로 익어갑니다. 그 흐름은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높은 곳에 머무르려는 자아의 방향과는 반대로, 선은 낮은 곳을 향하여, 상처 난 자리로, 끊어진 자리로, 멀어져 버린 관계의 가장 차가운 틈으로 조용히 스며듭니다. 그래서 관계를 회복하는 현장은 언제나 내려가는 자리입니다. 먼저 내려가야 합니다. 먼저 내려놓아야 합니다. 먼저 나의 옳음을 내려놓고, 먼저 나의 판단과 권리를 내려놓고, 먼저 나의 상처를 움켜쥔 손을 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허용해야 합니다.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상대의 시간과, 내가 바꿀 수 없는 상대의 마음과,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상대의 침묵까지도 그대로 존재하도록 허용해야 합니다.

 

내려가는 일, 내려놓는 일, 놓아주는 일, 허용하는 일, 받은 사랑을 돌려드리기 위하여 나를 내어주는 일, 이 어느 하나도 쉬운 일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행동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중심을 이동시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자아는 붙잡으려 하고, 선은 흘러가려 합니다. 자아는 소유하려 하고, 선은 나누어지려 합니다. 자아는 증명하려 하고, 선은 살아내려 합니다. 이 두 흐름이 만나는 자리에서 우리는 깊은 내적 긴장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조용하지만 분명한 깨달음이 우리 안에 떠오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통하여 선을 이루고자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선이 나를 통하여 흐르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바뀝니다. 내가 내려놓는 것은 손해가 아니라, 흐름을 막고 있던 장애물을 치우는 일이 됩니다. 내가 내어주는 것은 상실이 아니라, 더 큰 생명에 참여하는 일이 됩니다. 내가 허용하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하느님의 선이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 됩니다. 이때 우리는 알게 됩니다. 나의 자유를 내어드리는 일이 자유를 잃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가 완성되는 일이라는 것을. 왜냐하면 선은 강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은 언제나 자유 안에서만 흐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흐름 안에 들어갈 때, 우리는 이전에 알지 못했던 기쁨을 경험합니다. 선을 공유하는 기쁨, 하느님의 마음을 함께 나누는 기쁨, 하느님의 생명이 나를 통하여 흘러가는 기쁨입니다.

 

손으로 행하는 작은 선 하나, 말없이 건네는 이해 하나, 조용히 머물러 주는 인내 하나, 이 모든 것은 단순한 인간적 행위가 아니라, 주님의 영이 함께 일하시는 자리입니다. 그때 우리의 손은 더 이상 단순한 우리의 손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이 세상 안으로 들어오는 문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놀라움 속에서 깨닫습니다. 비천하고 나약한 나를, 상처 많고 부족한 나를, 주님께서 당신 선의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이 사실은 부담이 아니라, 가슴 벅찬 은총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 존재가 무의미하지 않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선에 참여하는 기쁨은 비교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그 기쁨은 소유에서 오지 않고, 흐름 안에 머무름에서 옵니다. 그 기쁨은 인정에서 오지 않고, 일치에서 옵니다. 그 기쁨은 성취에서 오지 않고, 참여에서 옵니다. 그래서 함께 있을 때 즐거움을 주는 사람, 함께 있을 때 마음이 가벼워지는 사람, 함께 있을 때 평화가 느껴지는 사람은 이미 선의 흐름 안에 사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선을 설명하지 않아도 선을 전하고, 사랑을 말하지 않아도 사랑을 전하며, 하느님을 증명하지 않아도 하느님을 드러냅니다. 그 존재 자체가 이미 그 나라의 공기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썩지 않는 열매는 애써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의 흐름 안에 머무르는 존재에게 이미 주어지는 하느님의 생명의 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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